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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언니에게는 못하는 질문

“선배님, 애들이 있으면 그…부부생활은 어떻게 해요?”

몇 년 전, 둘이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함께 마시던 회사 동료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아이들은 재우고 놀이방으로 쓰는 작은 방으로 건너간다고 했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고. 대답을 듣고 그녀는 안도했다. “아~ 아이들을 데리고 자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군요!”
그때의 대화는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그때 그 동료에게 결혼이나 출산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건강한 욕구를 충족하는 데에 있어서 육아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언니가 있었다. 출산 후의 섹스 라이프를 언니에게 물어보는 대신 내게 물어봤다는 점도 복잡한 심경이 들게 한다. 

또 질문에 대답하면서 내가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이를 데리고 자는 습관이 섹스 라이프를 끝장내버릴 정도로 강력한 방해물일 수도 있겠구나, 부부가 아이들과 다른 가족들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작은 방’이란 소중한 거였구나, 그리고 그런 질문은 엄마나 친언니에게 하기는 어렵구나 하는 것들 말이다. 

내 가족의 섹스, 관심 혹은 외면

많은 여성들에게 동성 가족은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가장 어려운 상대인 것 같다. 가족에게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통제를 받고 모순된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면은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다른 면은 마치 없는 셈 은폐된다. 

관심의 대상이 되는 측면은 임신이다. 임신은 가족의 집중적인 관심과 간섭을 받는다. 만약 여성이 정상 가족을 이룰 계획이 없는 상태라면 그녀의 임신은 가족에게 큰 걱정거리이다. 그건 문화와 인구적 특성에 따라 다르긴 하다. 미국의 뷰티 아이콘이자 백만장자인 카일리 제너는 비혼 상태를 유지하며 딸을 낳았다. 그리고 자신의 육아를 자랑스럽게 SNS로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2020년 대한민국에서 동일한 사건은 가족의 우환이기에 임신을 피하도록 통제한다. 

그러다가 여성이 결혼하면 가족은 태세를 바꾼다. 많은 경우 공공연하고 집요하게 임신을 권장한다. 시부모는 며느리에게 야한 잠옷을 사 주고 피임 여부를 점잖게 물어보기까지 한다. 친부모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다 여성이 아이를 한 명 낳고 나면 두 가지 종류 중 하나의 압박을 가한다. 한 명은 외로우니 더 낳으라고 하거나 그만 낳으라며 단산을 위한 조치를 하라고 한다. 

그러나 임신과는 대조적으로, 여성의 성욕, 섹스, 그리고 쾌락은 그 가족으로부터도 철저히 “없는 셈” 쳐진다.  많은 이들이 내 가족에게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기 싫어하거나, 있다 하더라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무엇처럼 대한다. 

엄마에게 토이를 소개해 보았다

작년에 클리토리스 흡입형 토이의 일회용 샘플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미 마음에 드는 토이를 가지고 있고 아주 잘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샘플은 그걸 통해서 삶의 질이 올라갈 만한 사람에게 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친정어머니에게 슬쩍 제안해 봤다. 

엄마는 펄쩍 뛰었다. 자신은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하셨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긴 했다. 나는 엄마를 두 번 난처하게 만들지 않기로 했다. 토이 샘플은 요긴하게 쓸 것 같은 친구에게 우편으로 보내줬다. 친구는 만족스러웠다고 피드백을 주었다. 

엄마도 반짝이는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을 느껴보길 바랐지만 엄마는 딸에게 성생활의 작은 자락도 내보이는 걸 원치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와 친하게 지내왔다. 그러나 엄마와 즐겁고 안전한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는 상대방이 섹스를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완벽하게 시치미를 떼었다. 마치 무성적인 존재인 양 서로를 대해왔다. 내가 결혼을 하고 어서 임신하라고 했던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세대도 가치관도 나와 다른 엄마가 딸과 섹스 이야기를 나누기 싫은 것을 이해한다. 그 화제는 더 꺼내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가족에게 임신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든지 괜찮고 임신에 대한 이야기는 질식할 정도로 넘치는 반면, 훌륭한 토이를 소개하는 일은 금기인 것은 못내 씁쓸하다. 

서로를 성적인 존재로 존중하기

성교육을 받고 온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아빠도 섹스해 봤어?”라고 물어봤더니 아빠가 너무 당황해서 그만 “아직…” 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아시는지? 귀엽긴 하지만 난처한 이야기이다. 여성들만큼 강한 통제를 받지는 않더라도 남자들도 가족들, 특히 자녀에게 섹스를 하는 인간이라고 밝히는 일이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민망해하고 안 하는 셈 치는 건 좋지 않다. 부모가 섹스도 안 해본 무성적인 존재인 체하는 이상, 자녀에게 기초적인 성교육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가족 내에서 자녀에게 성교육을 하지 않고 밖에서 알아서 배워 오기를 바라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가족끼리 사생활을 존중하고 보호하면서도 각자가 성적 쾌락을 향유하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배우자와 서로의 욕구를 알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남편과 나의 경우, 둘 다 자위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존중한다. 각자의 자위에 대한 개입은 합의가 있을 때만 한다. 즉 상대가 옆에서 도와주기를 당사자가 원하고, 상대가 요청에 응하고 싶으면 한다. 그 외에는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준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섹스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가끔 부모에게 그 “작은 방” 같은 분리된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위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한 적은 없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혹은 엄마가 무얼 하는지 호기심을 갖고 집착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사생활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샤워할 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 안 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나 역시 아이들의 성적인 활동에 대해 그 정도의 존중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가장 편안한 온도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 시작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성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사춘기가 되면 피임 도구를, 성년이 되면 토이를 선물할 예정이다.

필자 니나 (결혼 11년차 주부·『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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