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추행’ 이윤택 1심서 징역 6년…‘미투’ 첫 실형

재판부, 장기간 상습추행 혐의 인정
“권력 남용…책임회피로 일관”

상습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국내에서 ‘미투(#MeToo)’ 운동으로 범죄가 드러나 수사를 거쳐 실형이 선고된 첫 사건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는 19일 이 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80시간의 성폭력 프로그램 이수, 10년간 아동청소년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작가 겸 연출자로서 높은 명성과 권위로 연극계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신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는 단원들이나,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상대로 안마를 시키거나 연기 지도를 하면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저질러왔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들은 대부분 별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연극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피고인의 지시에 순응했던 사람들”이라며 “피고인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한 것임과 동시에 각자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피고인의 권력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부터 줄곧 혐의를 부인해온 이 씨의 태도도 비판했다. “스스로 과오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연기지도라거나 피해자들이 거부하지 않아 고통을 몰랐다고 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계 악용 상습성폭력 고발한 피해자들
피해 62건 고소한 23명 중
공소시효 만료로 8명 23건만 다퉈

피해자들의 폭로 내용을 종합하면, 이 씨는 배우 선정·퇴출 등 극단 운영에 절대적 권한을 가졌고, 이를 악용해 지난 1999년부터 2016년 12월까지 여성 단원 23명을 62차례에 걸쳐 추행했다. 그러나 이 씨의 범행이 주로 2013년 성폭력 친고죄 폐지 전에 발생해 현시점에서 처벌 가능한 사건은 많지 않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결국 검찰은 2010년 4월~2016년 12월까지 단원 8명을 23차례 성추행한 혐의만 적용해 기소했고, “피고인은 극단 내에서 왕처럼 군림하면서 장기간 상습적으로 수십명의 여배우를 성추행했고, 반성의 기미가 없으며 피해자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 씨 측은 “추행이 아니라 복식호흡을 유도하기 위한 독특한 연기 지도 방법” “예술, 연극을 하기 위해서는 신체 접촉이 불가피하다”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고집해 질타를 받았다. 

여성·예술단체, 법적 처벌 환영
“피해생존자들 용기·노력 결과지만 
죄질·상습성 비해 징역 6년은 미미”

여성·예술단체 등으로 구성된 이윤택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은 법원이 이 씨의 범죄를 정당하게 처벌하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답한 날”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이 씨가 저지른 범죄의 죄질과 상습성에 비해 1심 형량은 너무도 미미하다”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이날 오후 3시쯤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그 예술은 바뀐다!’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생존자들은 그간 수차례 언론과 경찰에 전화를 걸었지만 사건은 은폐됐으며, 결국 자신의 일상과 활동에 커다란 여파가 미칠 것을 각오한 몇몇 피해생존자들의 미투운동이 이어지고 나서야 법적 처벌이 가능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또 “오늘이 있기까지 17명의 피해생존자가 그간 말하지 못했던 피해의 상처를 되새기며 경찰 조사에 임했고 그 중 8명은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으로 점철된 피고인 변호인의 심문에 온 힘을 다해 대응하며 법정에 섰다”고 지적했다.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이 씨의 모든 범죄가 법의 심판을 받지는 못했다. 고소에 나선 피해자 23명(사건 62건) 중 8명의 사건 23건만이 다뤄졌다. 피해자 15명은 공소시효 만료로 법의 심판을 기대할 수조차 없었다. 공대위는 “우리가 접수한 연극인 탄원서 98부 중에는 아직 말하지 못한 피해가 있음을 알리며 드러난 사건만이라도 충실한 법의 판결을 받기를 탄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라고 밝혔다. 

공대위는 “우리는 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권력을 이용한 상습적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 맞서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피해의 고통을 직면하고 가부장적 사회의 부당한 시선을 견디며 연대하고 싸우는 고소인단의 용기와 힘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서 있는 이 자리가,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당당한 목소리와 정의로운 판결이 메아리치는 공간이자 성평등 사회질서를 구현하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인에겐 연금, 청년에겐 주택…‘연금형 희망나눔 주택’ 추진

‘연금형 희망나눔 주택’ 시범사업 추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 집은 있지만 고정 소득이 없는 은퇴한 고령자의 집을 매입해 대금을 연급 형식으로 지급하고, 해당 주택은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을 통해 저소득층 청년과 고령자들에게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한다.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는 ‘연금형 희망나눔 주택(연금형 매입임대)’ 시범사업을 실시하기 위한 ‘공공주택 업무처리지침’ ‘기존주택 전세임대 업무처리지침’ 개정안을 9월 20일 행정 예고했다. 

‘연금형 희망나눔 주택’은 지난해 11월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발표한 ‘연금형 매입임대’ 사업의 새 이름이다. ‘연금형’이란 주택 매각 대금의 지급 방법을, ‘희망나눔’은 매각된 주택의 향후 쓰임을 뜻한다. 

주택을 매도한 고령자는 매각 대금을 매월 연금방식으로 지급받고 필요할 때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게 된다. 고령자로부터 매입한 도심 내 노후 주택 한 채는 리모델링·재건축 후 저소득층 청년과 고령자 등에게 약 10호의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된다. 

이번 훈령 개정안에는 공공주택사업자가 주택 매입대금을 장기간 분할해 지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연금형 희망나눔 주택’ 사업으로 주택을 매도한 고령자가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을 만족하는 경우 당해 주택을 리모델링·재건축한 주택 또는 인근 지역의 매입·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했다. 

신청자격은 감정평가 기준 9억원 이하의 단독주택 또는 다가구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부부 중 1명이 65세 이상)으로 한정하고, 사업자는 해당 주택의 입지 등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 가능성을 검토해 매입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주택을 매각하는 고령자는 주택 대금의 분할 지급 기간을 10년~30년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공공주택지원과장은  “이번 훈령 개정 작업이 마무리되는 10월 중 ‘연금형 희망나눔 주택’ 사업의 주택 매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연금형 희망나눔 주택’사업을 통해 노년층에게는 노후 생활의 안정을, 청년에게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훈령 일부개정안의 자세한 내용은 국토교통부 홈페이지(http://www.molit.go.kr) “정보마당/법령정보/입법예고”란을 참고하면 된다. 관련 의견이 있는 단체 또는 개인은 국토교통부 공공주택지원과로 10월 9일까지 의견을 제출하면 된다.

외교관 후보자 합격자 10명 중 6명이 여성

2018년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최종 합격자 45명 중 여성이 27명(60.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혁신처는 2018년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최종합격자 45명의 명단을 13일 사이버국가고시센터에 발표했다.

연도별 여성 합격자 비율은 2014년 63.9%, 2015년 64.0%, 2016년 70.7%로 매년 상승했다가 지난해 51.2%로 하락했다. 특히 선발인원이 가장 많은 일반외교는 37명 중 여성이 25명(67.6%)다.

외무고시와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합격자는 2007년부터 올해까지 2009년(48.8%) 한 해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 절반을 넘어섰다. 여성들이 외교부의 유리천장을 깨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독한여자’ 조롱 딛고 여성 장관 ‘30%’ 시대 열다

[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⑧ 내각 여성 비율 30% 달성  

1948년 1호 여성 장관 임영신

참여정부 역대 최다 4명 임명

‘아줌마’ ‘울보장관’ 비하·조롱도

2017년 여성 장관 30% 시대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문재인 정부 첫 내각부터 여성 장관 5명과 장관급 여성 수장 1명이 발탁, 관행적으로 여성 몫으로 돌렸던 여성가족부 외에 국토교통부와 외교부, 고용노동부와 환경부까지 여성 장관이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남녀 동수내각’을 향한 첫 걸음이자 성평등 내각을 위한 본격적인 시동이었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의 여성 장관 비율은 31.6%다. 18부·5처·17청의 장관급 기관장 19자리 가운데 여성은 강경화 외교부, 김은경 환경부, 정현백 여성가족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함께 장관급이 되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까지 6명이다. 세부적으로 따지면 이 비율에 이견이 없진 않다.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국무조정실장, 방송통신위원장 등도 장관급이라는 점에서 이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피 처장을 제외하고 장관으로만 한정해도 27.8%로, 역대 정부의 초대내각과 비교해 가장 높은 비율이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남녀 동수내각을 공언한 바 있어 임기 중 여성 장관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재 문재인 정부 2기 내각도 2명의 여성 장관이 새롭게 지명되면서 장관급 여성 비율 30%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페모크라트의 실험

<여성신문>은 여성정치세력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성 장관 임명 소식과 행보를 심도 깊게 다뤄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관은 1948년 임명된 임영신 상공부 장관이다. 임영신 장관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공부했고 1945년 ‘대한여자국민당’을 창당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상공부 직원들은 “서서 오줌 누는 사람이 어떻게 앉아서 오줌 누는 사람에게 결재를 받느냐”며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임 장관을 비하했다. 이에 맞서 임 장관은 “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서서 오줌 누는 사람 이상으로 활동했다. 내게 결재 받으러 오기 싫은 사람은 사표내라”며 직원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임 장관에 이어 김활란 공보처장(1950년 임명), 박현숙 무임소장관(1952년 임명)으로 ‘홍일점’ 장관이 이어졌다. 그 뒤 박정희 대통령 시절 25년 간 단 한 명의 여성 장관도 나오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첫 내각에 여성 장관 4명(21%)을 동시에 기용했다. 특히 그동안 여성이 임명된 적이 없는 법무부 장관에 40대 강금실씨를 임명해 ‘파격’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여성신문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기용이 “법무부와 검찰 내부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된 것으로 가장 획기적인 인사”라 평했다(2003년3월7일, 716호). 강 장관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여성이어서 일을 제대로 못할 것이란 우려를 이해할 수 없다” “성차별적 법령을 찾아 개선할 생각이다” 등의 주장을 전함으로써 페모크라트(femocrats : 여성주의 관료)의 탄생을 알렸다. “여성장관 4인방, 그들을 믿는다”(2003년3월14일, 717호) 기사에서는 4명의 여성 장관의 경력과 특징을 자세히 분석해 여성 장관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여성이란 이유로 반발하는 수구파의 딴죽에도 아랑곳없이 ‘갈 길을 간다’는 당당함이 눈길을 끈다고 평가,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현장’에서 다진 탁월한 기획력을 지닌 전략가, ‘참여 복지’를 강조한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과 ‘녹색 국가’를 목표로 한 한명숙 환경부 장관 등에 여성계의 당부를 전했다.

여성 장관 향해 열렬한 지지

김영삼 정부가 초대 내각에 장관 16명 중 3명을 여성으로 임명했고, 김대중 대통령 조각 때는 여성 장관은 2명, 장관급 1명이었다. 이명박 정부 첫 내각 때는 15명 중 여성은 2명, 박근혜 정부는 장관 17명 중 여성은 2명으로 1기 내각을 시작했다.

이후 <여성신문> 기사들은 “새 여성 장관들이 일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지원하겠다”는 큰 맥을 따라간다. “여성 장관 4인방, 그들을 믿는다”(2003년3월14일 717호) 기사를 비롯해 “여성 정치인 경호본부 ‘맹활약 중’”(2003년4월18일, 722호), “‘여성 장관 서포터스’ 게시판 우수 서포터스 선정”(2003년5월9일, 725호) 등 일련의 기사들에서 여성 장관들에 대한 섣부른 공격은 꿈도 못 꿀 만큼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담아냈다. 여성 장관에 대한 각별한 지지는 여러 행사들로도 구체화됐다. 2003년 6월 2일 여성계 인사들을 모아 여성신문이 주최한 ‘강금실과 만납시다’, 2005년 1월 26일 여성신문이 주관한 ‘장하진 여성부 장관과 김선욱 법제처장의 취임 축하모임’ 등이 대표적 사례다.

남성 정치 관행과 성차별적 문화에 밀려 낙마하거나 단명하는 여성 장관들의 수난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홀대받는 문민정부의 여성 장관들”(1993년6월4일 227호) 기사를 보면 당시 여성 장관들은 눈물을 흘리면 “울보 장관”이라 조롱 받았고, 울지 않으면 “독한 여자”라는 비아냥을 견뎌야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금도 남아있다. 언론도 여성 장관의 실력보다는 외모와 옷차림을 기사화하며 “얼짱 女장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거나, ‘아저씨 장관’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으면서 여성 장관에게는 ‘아줌마’라는 호칭을 쉽게 붙이기도 한다.

남성 중심 조직에서 여성 장관이 여성의 눈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으려면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여성신문은 여성계 인사의 말을 인용해 “조직과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최소 비율인 30%의 크리티컬 메스(임계질량·critical mass)를 달성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숫자가 다는 아니다”라며 “‘페미니스트 대통령’과 ‘성평등 정부’가 선언적인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성평등을 국정의 중심에 세우고 여성 장관들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2017년7월26일, 1450호).

[세상읽기]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세상읽기]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김동조의 어쨌든 경제] 경제는 왜 알아야 하나

Q. 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해서 관심을 두려고 하는데, 어렵기도 하고 잘 와닿지도 않아요. 제 일상은 경제라는 단어와 너무 먼 것 같은데, 제가 대체 왜 경제를 알아야 하죠?

A.

경제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은 꽤 복잡한 일입니다. 경제를 이루는 것이 가계, 기업, 정부고 경제적 행위가 소비, 생산, 교역, 투자, 정부 지출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벌써 머리가 아파지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경제를 알아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그건 경제를 모를 때 생기는 불편함과 손해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불편함과 손해가 있을까요?

첫째, 경제를 모르면 삶의 중요한 순간에 옳은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경제는 순환합니다.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다는 뜻입니다. 경제의 사이클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왜 생기는지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경제학자마다 다양한 의견이 가능하니까요. 저는 경제의 순환을 만드는 요인으로 기업들의 과잉 투자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꼽습니다. 오늘은 투자에 대해서만 설명해보려 합니다.

경기가 좋을 때 사람들은 좋은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기업은 설비를 늘리고 장사하는 사람은 가게를 확장합니다. 사람도 더 뽑습니다. 이런 투자가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동시에 하면 투자는 적정 수준보다 훨씬 많이 이뤄집니다. 과잉 투자가 수요 부족과 만나게 되면 불황이 발생합니다. 불황이 닥치면 매출은 줄고 가격은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은 몸을 움츠립니다. 월급을 깎고, 직원을 줄입니다. 새로운 직원 채용도 가급적 하지 않습니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학점이 나쁜 대학생도 취업이 쉽습니다. 비싸고 맛이 없는 식당도 장사가 잘 됩니다. 경기가 나쁠 때는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직장을 구하거나 옮기기 어렵습니다. 아주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잘 팔리지 않습니다. 내 실력보다 시시한 회사에 가야하고 내가 받아야 하는 가격보다 싸게 팔아야 겨우 팔립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좋은 선택을 하려면 이런 경기의 흐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좋은 경영자는 경기가 나쁠 때 투자를 늘리고 경기가 좋을 때는 역으로 투자를 줄입니다. 호황이 계속되지 않고 불황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둘째, 경제를 모르면 재정적인 측면에서 손해를 보기 쉽습니다. 요즘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집이 없는 사람들의 박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아마도 전세 혹은 월세를 택해 어딘가에 거주하고 있을 겁니다. 전세나 월세를 내는 대신 집을 사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집값이 오를 것이란 예상을 했을 뿐 아니라 설령 집값이 오르지 않더라도 집을 사는 것이 전세나 월세를 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주식, 채권 같은 것의 가격 움직임이 결국 경제의 좋고 나쁨과 연동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만해도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3년 국고채 금리는 5%가 넘었습니다. 지금은 2%가 채 되지 않습니다. 금리가 낮아진다는 것은 미래 현금 흐름의 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리가 10%라면 지금 9천 90만 원이 1년 뒤 1억이 되지만, 금리가 0%라면 내년에도 9천 90만원일 뿐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내년에 연봉 1억을 지급하려면 지금 9천 90만원만 갖고 있으면 되지만 금리가 0%인 세상에서는 1억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금리가 10%에서 0%가 되면 부담이 커진 기업은 채용을 꺼리게 됩니다. 같은 상황에서 집주인은 집값과 같은 수준까지 전세금을 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금리의 변화는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은 자산의 가격에도 아주 큰 영향을 줍니다. 지금은 소득뿐 아니라 자산도 중요한 시대입니다. 경제를 몰라 자산 가격이 어떻게 될지 가늠하지 못하는 것은 속상한 일입니다.

셋째, 경제를 알면 많은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가 쉬워집니다. 이건 제법 긴 이야기라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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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조

투자회사 벨로서티인베스터 대표.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로, 시티은행 트레이더로 일했다.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썼다. <한겨레신문> <조선일보> <에스콰이어> 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했다. 경제 블로그인 kimdongjo.com을 운영 중이다.

 

추석 제수용품 구입에 25만원… 전년 대비 4.1% 상승

4인 기준 평균 25만9959원   
지난해보다 4.1%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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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회장 강정화) 물가감시센터(공동위원장 김천주·김연화)는 추석을 맞아 서울 25개구에서 90개 시장 및 유통업체의 추석 25개 품목에 대해 약 2회에 걸쳐 명절특별물가조사를 실시했다. 

올해 추석 제수용품 25개 품목 평균 구입비용은 4인 기준 평균 25만9959원으로 조사됐다. 전통시장이 평균 19만9637원으로 가장 저렴했고, 이어 일반 슈퍼마켓(21만2878원), 대형마트(25만6443원), SSM(27만652원), 백화점(39만964원) 순이었다.

가장 저렴한 전통시장 대비 각 유통업태별 평균 구입비용을  비교해 보면, 백화점은 95.8%, SSM은 35.6%, 대형마트는 28.5%, 일반 슈퍼마켓은 6.6%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품목별로는 축산물, 과일, 가공식품은 전통시장이 수산물, 채소·임산물은 일반 슈퍼마켓이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25개 동일품목에 대해 지난해 추석 물가와 비교해본 결과, 각 가정의 제수용품 구입비용은 지난해 평균 24만9639원에서 4.1%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품목별로는, 25개 중 17개가 전년대비 상승했으며, 8개 품목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품목별 가격 변동을 살펴보면, 수산물은 8.0% 하락, 축산물(0.1%), 가공식품(0.2%), 과일(8.6%), 채소·임산물(21.1%) 순으로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지난 여름 폭염으로 인해 채소·임산물 및 과일 품목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한편 추석 제수용품 특별물가감시를 위해 3주 전(27만822원)과 1주 전(25만9959원)으로 2회에 걸쳐 조사한 결과, 추석 제수용품 구입 평균 가격이 3주 전 대비 4.0% 하락된 것으로 분석됐다. 채소·임산물 가격은 올해 기록적 폭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나 정부의 추석 성수품 수급 안정을 위한 대책으로 상승폭이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부의 수급안정 대책에도 불구하고 사과는 14.5%, 배는 27.1% 상승하는 등 과일류의 경우 소비자 가격 부담이 클 것으로 나타났다. 

1인 여성 기업가 7인 “사람이 브랜드다”

[여성 1인 기업가 컨퍼런스 ‘1 the woman’(원더우먼)]

문화, 공예, 물류, 브랜딩 등 다양한 분야서 활동하는 

1인 여성 기업가 7명 “‘나’만의 프로젝트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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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단절의 위험이나 정년 걱정 없이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꿈이다. 그런 꿈을 실현하며 자기만의 사업을 이뤄나가는 사람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문화 기획, 공예, 물류, 브랜딩, 코칭,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1인 여성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국내 최초 ‘여성 1인 기업가 컨퍼런스’가 18일 오후 7시 서울 홍대 잉겔스 카페에서 ‘1 the woman’(원더우먼)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이날 컨퍼런스엔 7명의 1인 기업 대표가 나와 자신만의 사업 전략을 발표했다.

발표는 7인의 여성 기업가들이 직접 진행했다. 문화기획자이자 창업 6년 차의 정은빈 ‘청춘여가연구소’ 대표는 “문화기획 창업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토리가 있는 커뮤니티 영역에서 시작하라”는 조언을 건넸다. 정 대표는 “다양한 일일 클래스를 만들다 보니 커뮤니티가 생기기 시작했다. 또 각각의 커뮤니티엔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라며 소셜기부경매파티 ‘X의유물’ 직장인 음악 모임 ‘브레멘음악대’ 등을 예로 들었다.

창업 2년 차 ‘에린의 웜아트’ 윤정현 대표는 일을 하는 데 있어 ‘행복’과 ‘만족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내가 만족스럽고 행복하면 남들에게 보여줄 때도 큰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디자이너 출신의 윤 대표는 11년 전 미국에 건너가 아이를 키우며 일했다. 워킹맘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우연히 취미였던 클레이 아트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되면서 창업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는 “주어진 시간을 몇 퍼센트로 다룰 수 있느냐에 따라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는 달라질 것”이라며 “제가 그래픽디자인과 웜아트 중 웜아트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일의 성장과 나의 행복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희양 ‘콜드체인플랫폼’ 대표는 외국계 물류회사를 다니다가 창업에 뛰어들었다. 배송 회사 TNT를 시작으로 바이오 물류 전문기업 월드쿠리어(World Courier), 마켄(MARKEN) 한국지사 등에서 일했다. 퇴사 후 ‘적게 일하고 크게 어필하고 싶을 때 읽는 책’을 쓴 김 대표는 “회사는 평생직장이 아니라 프로젝트다. 이제는 남이 아닌 ‘나’의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김진희 ‘김진희법률사무소’ 변호사는 “3년 전 나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처음 가졌다. 사무소를 개소한 뒤 첫 강의를 했지만 3분밖에 오시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제 강의를 들으러 오시기도 한다”며 “꿈과 목표가 하나가 되는 과정에 있다 보니 하루하루가 바빠지고 금방 일어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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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화 J코칭연구소 대표는 “작년 12월 몇 명의 여성 대표들끼리 모였다. 이후 ‘여성을 위한 일을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지금의 컨퍼런스까지 이어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는 사업에 있어 ‘신뢰 관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뢰가 쌓이면 흔들림 없이 굳게 믿고, 그 기반 위에서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신뢰기반의 비즈니스는 고객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관계, 개인의 성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 대표는 “회사에서 독립해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만약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이 또한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자신을 믿는 힘으로 계속해서 돌파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탁진현 심플라이프 대표는 ‘살아 숨 쉬는 지식과 경험의 공유’를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10년 간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던 탁 대표는 일, 건강,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문제로 큰 스트레스를 겪었다.

탁 대표는 “우연히 방에 앉아있던 도중 ‘머릿속만큼 내 방도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날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필요 없는 자료와 물건 등을 정리했다. 텅 빈 공간을 보니 그 어느 때보다 큰 만족감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심플라이프’라는 웹사이트를 열고 집, 몸, 돈, 일, 마음 등을 단순화할 수 있는 다양한 팁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 지난 1~2년 사이 미니멀리스트가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면서 칼럼, 출간, 강연 의뢰 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나눔을 키워드로 “나와 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을 찾을 때 일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희 마노컨설팅 대표는 “마노컨설팅은 공감을 통해 다양한 회사의 브랜딩을 해주고 있다.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며 “1인 창업을 하면 많은 사람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 자체가 브랜드가 돼야 한다. 본인의 가치,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은 1인 창업가의 영원한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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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으로] 외모를 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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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지고 싶다. 인류는 단 한 순간도 이 명제를 버린 적이 없다. 이제는 배부르고 싶지 않고, 자식을 많이 낳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신을 만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대를 불문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어한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시공간에 따라 변할 뿐이다.

여기 두 여자가 있다. JTBC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최성범 연출, 최수영 극본)의 미래(임수향 분)와 영화 ‘아이 필 프리티’(2018)의 르네(에이미 슈머 분). 미래는 ‘평타도 되지 않는’ 얼굴 탓에 자존감이 바닥이다. 다이어트와 성형 수술로 누가 봐도 미인이라 할 수 있는 외모를 ‘장착’하게 됐지만 아직 거기에 걸맞은 자신감은 못 가졌다. 한편, 르네는 자기 얼굴과 몸에 자신이 없다가 어느날 머리를 다치면서 거울 속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미인이 되었다고 믿게 된다. 영화 제목이 ‘아이 엠 프리티’가 아니라 ‘아이 필 프리티’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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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래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래야, 넌 이미 예쁘다. 그리고 외모보다 너의 배려심 깊고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더 예뻐. 자신감을 가져.” 르네에게도 마찬가지다. “르네야. 맞아. 아름다움은 결국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야. 너의 그 자신감이 널 아름답게 만들고 있어. 화이팅!” 그런데, 거울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인가?

우리는 원한다면 몸을 크게도 작게도 만들 수 있다. 머리색을 노랗게도 검게도 바꿀 수 있고 분홍색도 가능하다. 눈동자 색? 물론 바꿀 수 있다. 피부색도 바꿀 수 있고, 세월의 흔적도 없앨 수 있다. 코도 오뚝하게 만들 수 있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애플힙을 가질 수도 있다.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를 통해, 또 여러 코스메틱 제품들을 통해 우리는 외모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상류층 사람들만 전족을 했고, 코르셋으로 몸을 조였지만 이제는 모두 그럴 수 있다. 돈과 시간만 있다면.

아름다움의 민주화랄까? ‘무엇이든 될’ 자유가 생기면서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굶어 죽을 자유’가 생긴 그들처럼 아름다움의 노예가 됐다. 우리에게 아름다워질 자유가 허락되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도 아름다워지지 못하는 자기혐오에 빠지게 됐다. 우리 눈에는 충분히 예쁜 미래와 르네가 그렇듯이.

자본주의는 여성을 ‘아름다운 꽃’으로 보게 만들었다. 뷰티 산업과 다이어트 산업, 그리고 성형의술, 그 외 수많은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폭력적인 외모주의는 점점 더 도를 더해갔고, 아름답지 않으면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자존감이 떨어졌다. 자존감이 떨어지면 더 아름답지 않다며, 이제는 마음에까지 화장을 하라고 세상은 요구한다. 명상이 돈이 되고, 멍때리기가 대회가 되며, 우울증은 산업이 됐다. 그렇게 외모를 넘어 마음까지 치장하고 바꾸게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불안함은 나만의 것일까?

헤겔은 『철학사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현존재를 자신의 특수한 성격, 욕망, 의지에 맞추고 그래서 자신의 현존재를 스스로 즐기는 자, 그는 행복하다.” 헤겔은 남자고, 옛날 사람이고, 잘나가는 철학자니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외모를 바꿀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그 역시 바꾸고 싶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성형수술을 하든, 다이어트로 몸을 줄이든 그것이 나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이라면 그 또한 나의 특수성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문제는 특수성이고 주체성이고 능동성이다.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날 보편적으로 만들기보다는 내 기준을 스스로 정해 나만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이 행복할 것이다.

문환이 중학교 2학년때 주윤발에 반해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영화를 공부하고, 15년쯤 영화밥을 먹었다. 할 만큼 했단 생각에 아이맥스 극장도 없는 제주로 이주했다. 영화 일을 할 때만큼 영화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온전히 관객의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 작품 하나하나가 더 소중해졌다. 쉬는 날엔 책을 읽고 놀고 싶을 때는 TV를 보는 기혼의 무자녀 여성이다.  

[‘여성-창작’을 말하다] “나의 정체성을 통과해서 세계를 보고 싶어요”
‘창조력’을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해온 신화 앞에서 ‘펜은 곧 페니스인가?’라는 질문을 거듭해야 했던 여성의 역사는 길다.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누가, 무엇을 예술이라고 규정하는가’라는 권력에 대한 물음으로 고쳐 써야 한다는 항변도 이미 존재한다. 이 코너에서는 ‘여성-창작-새로움’의 의미망을 확장·갱신하기 위해 도전하는 동시대 젊은 여성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여성신문이 공동 기획한 이 인터뷰는 문화연구자 오혜진과 만화평론가 조경숙이 함께 총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여성신문 공동기획
[‘여성-창작’을 말하다] ② 
소설집 『쇼코의 미소』·『내게 무해한 사람』의 작가 최은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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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철학을 가진 소설가 최은영을 소개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은 뭘까. 유명 소설가의 추천사나 수상 이력 따위를 읊는 게 가장 부적절한 방식이라는 건 잘 알겠다. 최은영의 인물들은 늘 과거에 자신이 본 것, 말한 것, 느낀 것을 곱씹고는 이내 부끄러워한다. 오늘 우리의 대화도 언젠가 곱씹히게 되리라는 걸 예감하면서 우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최대한 진심을 다해, 천천히 이야기를 나눴다.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이름

오혜진(이하 ‘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남녀 독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독자들은 이 소설들을 급진적인 여성주의 소설로 읽은 반면, 또 어떤 독자들은 전통적인 소설계보에서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작품으로 보더라고요.

최은영(이하 ‘최’): 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여성주의 운동은 ‘진정한’ 진보운동이 아닌 부수적인 운동으로 취급됐어요. 마찬가지로, 어떤 분들은 ‘여성주의 소설’이라고 하면 그 소설의 의미를 축소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 흔히 여성서사에는 남성서사에서와 같은 화려한 액션이나 격동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저 감상적이고 멜랑콜리할 거라는 생각…. 그런데 『쇼코의 미소』는 여자들이 형성하는 온갖 관계와 감정들의 스펙트럼을 보여줬어요. 남성서사 일색인 요즘, 첫 소설집을 ‘여자들의 세계’를 전면화하는 데 집중했다는 건 매우 의식적인 기획 같은데요.

최: 저는 옛날에도 ‘친구’ 같은 영화는 보지 않았어요. 그런 이야기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일단 재미가 없어요. 저는 ‘우리 할머니, 이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떻게 살았을까? 이모랑 그 친구는 어떤 관계일까?’ 이런 게 더 궁금해요.

전지적 작가 시점? ‘최은영’ 시점!

오: 자신이 “1세계 백인 남성이 아니고 미국, 영국, 네덜란드 사람도 아닌, 21세기 한국의 1980년대생 여성”임을 생각하며 소설을 쓴다고 말씀하신 적 있죠. 보편문학·세계문학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월경(越境)’이나 ‘트랜스(trans)’의 미학이 강조되는 요즘, 그런 자기인식은 좀 특별하게 여겨져요.

최: ‘중립’이나 ‘보편’이라고 간주되는 것들이 사실은 기득권층의 입장에서 생각한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자신이 한국인인데도 너무 쉽게 백인과 동일시하거나, 자신이 여성인데도 남성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 늘 거슬렸어요. 외국여행을 다녀보면, “저 동네는 아시아인들이 너무 많아.”라며 마치 자신이 백인인 것처럼 말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보게 돼요. 그걸 보면서, 저는 적어도 ‘내가 세계를 볼 때에는 나의 정체성을 통과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오: 그런 의식이 곧 세계의 동시대성과 ‘한국’이라는 시공간의 역사성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혔어요. 『쇼코의 미소』의 동시대 인물들이 외국경험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엄마 세대, 이모 세대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그 때문일 것 같네요.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의 주 배경도 1980년대죠. 저는 이 소설집을 ‘1980년대생이자 현재 30대인 한국 여성작가에 의해 새롭게 시도되는 1980년대에 대한 역사화’라고 봤어요. 작가님은 1980년대를 가정폭력이나 여성차별이 아무렇지도 않게 방조·묵인되던, 인권감수성이 현저히 낮았던 시대로 묘사하셨죠. 이건 586세대가 노스탤지어에 젖어 목가적이거나 신화적으로만 묘사해온 1980년대의 풍경과는 매우 다릅니다.

최: 배수아 작가의 소설 『독학자』에는 정의로운 투쟁을 마친 후 성매매를 하는 운동권 남성들을 보며 환멸을 느끼는 인물이 나와요. 신경숙 작가의 소설 『외딴방』에도 운동권 지식인인 ‘오빠’의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 여성인물 ‘나’가 꽝꽝 언 무를 깨는 장면이 나오고요. 그런 선배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에서 배운 문제의식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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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라는 문학적 자양분

오: 대학에서 여성주의 교지를 만들며 여성주의를 접하셨다고 들었어요. 2002년이면 학내 여성주의 운동의 끝물이죠. 그때 한국문학계도 1990년대를 풍미한 여성문학을 시효만료된 것으로 여기며 청산했고요. 그런 시기에 ‘대학에서 축적한 여성주의 지식이 내 문학적 자양분이 됐다’라고 증언하는 작가가 나타나서 반가웠어요.

최: 여성주의 교지 편집을 3학년 때까지 했어요. 학내 여성주의 운동이 망해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활동하면서도 소외감을 느꼈죠. 교지를 내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거나 외려 조롱거리가 됐어요. 하지만 그때 교지 편집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그 전까지 저는 가부장제가 온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채로 그게 불편한 줄도 모르고 살았어요.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폭력의 구조를 이해하고 분노하게 됐죠. 무엇보다, 제가 여자들에 대해 쉽게 생각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애엄마’ ‘노처녀’ ‘어린 여자’ 이런 식으로…. 제 안의 여성혐오를 반성하게 됐어요.

또 깨달은 것은, 저 또한 누군가에게 기득권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런 깨달음은 여성주의가 아닌 다른 운동을 했다면 얻기 힘들었을 거예요. 예컨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을 늘 ‘약자’ ‘억압받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하지만 여성주의는 제게 ‘내가 약자였구나’라는 것과 동시에 ‘나도 누군가를 억압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려줬어요.

오: 교지 편집할 당시 가장 관심 있던 이슈는 뭐였나요?

최: 앞 세대 운동권 성폭력 문제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들은 정희진 선생님의 강의도 인상 깊어서, 정희진 선생님의 책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개정판 『아주 친밀한 폭력』)도 찾아봤어요. 그게 제가 읽은 첫 번째 여성주의 서적이에요. 서구 백인 여성들이 쓴 페미니즘 서적들은 좀 어려웠는데, 한국의 여성주의자들이 쓴 글들을 읽으면 피부에 와 닿는 게 있더라고요. 

‘실수’와 ‘낙인’ 사이

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큰 지지 만큼이나 페미니스트들 간의 갈등도 첨예하죠.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질은 늘 의심과 감시의 대상이 되고요.

최: 제가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느낀 분노의 대상은 두 가지에요. 절 억압해온 가부장적 질서, 그리고 저와 함께 여성주의 활동을 하거나 혹은 여성주의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여자들. 특히 후자에 대한 분노는 저를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제 안에 어떤 기준을 만들어놓고 모든 사람들을 평가했죠. ‘넌 여성주의자라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넌 아웃이야.’ 이제는 그게 여성혐오적인 행동이었다는 걸 알아요. 지금 여성들 간의 갈등도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좀 관대해졌으면 좋겠어요. 남성의 실수는 그저 실수지만 여성의 실수는 곧 낙인이 돼버려요. 그 일 하나로 그 사람의 진심이나 가치를 깔아뭉개는 일이 많죠. 여성들끼리 지나치게 엄격하게 대하는 태도도 여성혐오 문화에서 생겨난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주의 운동은 오래 할 싸움이니 서로에게, 심지어 반여성주의적인 여성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관대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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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거 미안해”

오: 작가님 소설에서 ‘과거에 자신이 몰랐던 것에 대한 죄책감’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라는 「씬짜오, 씬짜오」의 사후적인 깨달음이나, ‘나도 모르게 가해자에 일조하고 있었다’라는 「고백」의 성찰들.

최: 제 성격인 것 같아요. 저는 과거에 한 실수를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되면 참을 수 없이 부끄럽고 제 자신이 용서가 잘 안 돼요. ‘너에게 상처를 주겠어.’라고 작심하지 않았더라도, 별 뜻 없는 말로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 수 있잖아요. 저는 그게 더 파괴적인 것 같아요.

오: 저는 「씬짜오, 씬짜오」의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라는 말을 이렇게 해석했어요. 한국인 소녀 ‘나’는 늘 ‘한국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이기에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라고 배워왔죠. 하지만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에 의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베트남인들은 결코 그 역사를 잊을 수 없잖아요. 강자는 자기가 한 짓의 의미를 궁금해 하지 않지만, 약자는 자기가 당한 것을 기억해야만 과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니 계속 그 역사를 알려고 하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모를 수 있다는 것’, 즉 ‘무지야말로 권력’이라는 깨달음 때문에 ‘무지’가 죄책감의 원인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해자’는 (안) 변할 수 있을까?

오: ‘관계의 변화’ 역시 작가님의 주요 테마죠. ‘관계란 변하기 마련’이라고 믿으시잖아요. 그런데 「모래로 지은 집」에서는 “가해자들도 변할 수 있어?”라는 질문을 던지셨어요. 언뜻 생각해보면, ‘관계는 변한다’라는 믿음은 곧 ‘사람은 변하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여야만 가능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왜 유독 가해자에게만은 ‘변할 수 있는가’라고 굳이 물어야 할까요? 저는 그 질문을 ‘누군가의 죄를 원죄화하지 않으면서 가해자가 스스로를 성찰하게 할 수 있을까’라고 바꿔 읽었어요. 저는 지금 ‘문단 내 성폭력과 그 이후’라는 구체적 정황을 떠올리면서 이 질문을 드리고 있습니다.

최: 저는 가해자가 스스로 성찰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가해자에게 갑자기 신 내리듯 깨달음의 순간이 오지도 않겠고, 주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한다고 해서 가해자가 반성하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결국 장기간에 걸친 교육만이 답 아닐까요? 물론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전제돼야죠. 권력을 지닌 가해자에게 법적으로 면죄부를 주며 쉽게 용서하는 문화가 있는 한 희망은 없을 거예요.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문제 삼는 사회라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침묵을 택하게 될까요.

 

교육의 힘을 믿지만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 또한 강조하는 최은영의 답은 최근 권력형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무죄 판결을 얻고 스스로 부활을 다짐한 한 유력 정치인의 사례를 연상케 했다. 과연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최은영은 마치 기도하듯 자신의 소설에 다음과 같이 꼭꼭 눌러 써두었다. “순간이나마 마음을 걸치고 싶었다. 타고난 것은 변하지 않지만 같은 일을 겪어도 극복할 힘이 길러질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에.” 어디선가 아직 침묵하고 있는, 혹은 이미 침묵하기를 거절한 수많은 피해자들이 이 문장을 읽을 것이다. 

* 최은영 소설가. 1984년 경기도 광명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와『내게 무해한 사람』을 썼다.

인터뷰 장소협조: 콘크리트 플랜트

►[‘여성-창작’을 말하다] ① 웹툰 <먹는 존재>, <족하>, <홍녀>의 작가 ‘들개이빨’
www.womennews.co.kr/news/144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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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진 문화연구자.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그런 남자는 없다』(공저),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 등의 책과 평론을 썼다.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고,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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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퇴임 “성평등 통한 민주주의 완성 위해 전진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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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를 떠나는 정현백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임식을 갖고 “성평등을 통한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미래사회를 향해 뚜벅뚜벅 앞으로 전진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 장관은 이날 여가부 직원들에게 “고정관념과 관행을 벗겨 내려다보면 우리 스스로 상처를 입거나 지칠 수도 있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정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해 1년2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 1기 성평등정책을 총괄했다. 특히 미투 국면에 장관직을 수행하며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디지털 성범죄 대응에 앞장섰다. 정 장관은 이임식에서도 미투 운동을 언급하며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 시민으로서 여성이 누려야 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투 운동의 발발 당시 여가부는 이를 해결할 만한 연장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면서 그간 피해자 지원을 위한 체계 마련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장관은 ‘성희롱·성폭력근절추진점검단’을 설치한 것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설립해 불법촬영물 삭제와 피해자 지원을 강화한 것을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정 장관은 “성차별 구조와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성평등한 일자리도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은 늘 좌절감으로 다가왔다”며 “대전제는 사회 전체적으로 구조 변화를 모색하는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취임 후 가장 먼저, 중요하게 직면한 난제가 화해치유재단 문제였다”며 “더 이상 한일 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발발하는 전쟁과 함께 등장하는 끔찍한 성폭력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세계 평화와 여성인권을 위한 우리 연구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차츰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화해치유재단의 해소로 가는 프로세스를 면밀히 준비했으며, 곧 가시화될 것”이라며 “여가부와 저는 주어진 역사적 책임에 충실했음을 기억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 국회에서 인사 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된 진선미 신임 여가부 장관은 이날 오후 취임식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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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28일 ‘성평등 문화·예술 정책 포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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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한 문화정책 마련을 위해 문화예술인이 한자리에 모인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가 후원하고 한국여성재단(이사장 이혜경)이 주최하는 ‘2018 성평등 문화·예술 정책 1차 포럼’이 2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에서 열린다. ‘여성, 성평등 문화·예술 현장을 말하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1차 포럼은 성평등 문화를 만들어 가는 첫 단계로서, 현장의 소리를 우선적으로 듣기 위해 마련됐다.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사장이 ‘성평등 문화정책을 위하여’란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박성혜 숙명여대 무용학과 강사, 김민지 EBS PD 등 문화예술인들이 현장에서 부딪치는 성차별과 고용·복지·정체성 문제에 대해 토론한다. 오후에는 박정희 신나는마을공동체부엌 대표 등 현장 활동가 7명이 마을, 공동체, 동아리 등 생활문화 현장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에 대해 말한다. 2차 포럼은 ‘여성, 성평등 문화예술 정책을 말하다’를 주제로 11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 제2강의실에서 열린다. 2차 포럼에서는 성평등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정책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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