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아동인권 옹호 24년
첫 여성 변협 사무총장 역임
폭력피해자 무료법률지원 참여
회원 네트워크 강화 주력
“국회·법원 내 여성비율 절반 되면 대한민국이 바뀔 것”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여성변호사가 능력만큼 법조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으면 좋겠다”며 “국회와 법원 내 여성 비율이 30%를 넘고 절반이 되면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여성변호사가 능력만큼 법조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으면 좋겠다”며 “국회와 법원 내 여성 비율이 30%를 넘고 절반이 되면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유일의 여성변호사 단체를 이끄는 왕미양(56) 한국여성변호사회(이하 여성변회) 회장의 별명은 ‘해피 바이러스’다. 늘 미소를 머금은 밝은 인상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함께 있으면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유쾌한 성격으로 주변의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온화한 리더십을 가진 그가 지난 1월 여성변회 13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왕 회장은 임기 동안 ‘여성변호사 권익 향상’과 ‘여성·아동 인권 옹호’라는 여성변회의 목표와 함께 ‘회원 네트워크 강화’에도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회원들이 활동에 보람을 느끼고 단체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성변회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싶다”고 했다. 

“지난 20여년간 선대 회장님과 회원들의 헌신으로 여성변회가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간 쌓은 성과가 지속가능하려면 회원 저변을 넓히고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활동이 중요합니다.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고요. 회원들에게도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달리지 말자’고 당부했어요. 저는 천천히 가도 좋다고 생각해요. 다 함께라면.”

여성변회 역대 회장이 여성·아동 인권 옹호 단체로서 기틀을 다지는 모퉁이돌 역할을 했다면, 왕 회장은 그간의 활동이 지속가능하도록 지원하고 단체가 저변을 넓힐 수 있도록 회원들을 지지하는 굄돌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다.

소수자로서 여성·인권에 눈 떠

왕 회장은 1997년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0년 29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경기도 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판·검사가 되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그때부터 줄곧 법조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고 했다. 전북대 법학과에 진학한 그는 주변에서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낼 때도 법조인이라는 꿈만 보고 달렸다.

“기업에 원서 한번 내지 않고 사법시험 공부에만 몰두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슨 배짱이었는지 몰라요. 생활비를 쪼개 지원해 준 오빠 덕분에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었어요.”

사법연수원 수료하자마자 연고가 없던 경기도 성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당시 사법연수원에 여성은 600명 중 단 49명뿐이었다. “‘여자라서 안돼’라는 말을 듣고 자란 당시 여성으로서 여성법학회에 참여하고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수순이었다”고 왕 회장은 회상했다.

그 역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성남여성의전화에서 법률상담 지원하며 폭력 피해여성을 도왔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변호사단,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전문상담위원을 맡으며 사회적 약자를 도왔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는 2011년부터 활동하며 총무이사, 부회장, 수석부회장 등을 두루 거쳤고, 2019년에는 여성 최초로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에 임명돼 변협 사무를 총괄했다.

변호사로 24년간 활동하며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그는 ‘남편 강간’ 혐의로 기소된 여성 무죄 변론을 꼽았다. 아내 강간으로 처벌받은 남편은 많았지만, 2013년 대법원이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판례를 내놓은 이후 아내가 남편을 강간한 것으로 기소된 첫 사건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여성에게 징역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감금혐의는 인정했으나 강간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사건 피고인인 여성은 수사를 받던 중 구속이 됐고 검찰에서 보도자료를 낼 정도로 주목받은 사건이었어요. 여성이 주변 도움을 받아 절 찾아왔는데, 쉽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납니다. 구속기소된 형사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보람도 컸어요. 안타깝게도 작년 이맘때 여성분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어요. 평안하시길 빕니다.”

법원·국회 내 여성 비율 늘어나야

여성·아동 인권 옹호 단체인 여성변회가 5월 말 개원하는 22대 국회에 거는 기대는 크다. 왕 회장은 새 국회에서는 한부모가족, 아동, 폭력피해자 권익을 위한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선, 양육비 채무자의 동의 없이도 상시 조회 가능한 재산 범위가 확대될 수 있도록 국세청 과세정보자료 등 행정정보망을 활용한 조회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여성변회는 밝혔다. 외국인아동의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 역시 마련이 필요하다. 학대 피해 아동 사망 시엔 검사가 국선변호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여성 혐오범죄나 스토킹 및 교제폭력 등 신종 폭력피해자에 대한 입법상 공백은 입법을 지원해야 한다. 

왕 회장은 여성 변호사들이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발전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새로운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여성 전문가 단체 12곳과 기업인 등이 참여하는 ‘한국여성리더 스케일업 과정’(가칭)을 시범사업으로 마련해 교육과 네트워크 확장 기회를 열어줄 계획이다. 여성가족부의 ‘폭력피해자 무료법률지원 사업’ 운영기관도 맡을 예정이다.

법조인을 비롯해 여성들의 정치 진출도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현재 등록된 여성 변호사가 현재 1만1000명이 넘지만 많은 여성변호사들이 아직도 취업에서 차별을 겪거나 직장 내 주요 의사결정에선 빠져 있다. 왕 회장은 “여성변호사가 능력만큼 법조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으면 좋겠다”며 “국회와 법원 내 여성 비율이 30%를 넘고 절반이 되면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1991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여성변호사 단체로, 성폭력‧가정폭력‧스토킹 피해를 입은 여성과 학대받는 아동의 인권 보호 및 권익 증진을 위해 공익사건 법률지원 및 상담, 입법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한부모 가정‧이주민 지원 등 우리 사회 약자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여성변호사의 역량 강화와 다양한 직역으로의 진출 확대를 위해 ‘미래여성지도자아카데미’, ‘비즈니스 아카데미’, ‘여성변호사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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