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차원의 공약이라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사명이 있다”

제22대 총선 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선관위에서  등록 접수 준비를 하고 있는 직원들.  ⓒ연합뉴스
제22대 총선 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선관위에서 등록 접수 준비를 하고 있는 직원들.  ⓒ연합뉴스

봄부터 여성신문에 칼럼을 매달 쓰기로 약속해 놓고 시간이 다가오자 후회막심이었다. 4·10총선이 코앞인데 귀한 지면에 세상일은 모르는 척 내 관심사만 떠들기도 민망했다. 막상 선거에 관해 쓰려니 민감한 내용을 피해 가기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이번 총선은 어느 정당이몇 석을 점할 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뜨겁고 예민한 선거이다. 행여 이변이라도 있을까봐 어서 선거일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조바심을 내는 지인도 보았다.

현 정부 출범 2년차에 실시되는 22대 총선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언론이나 여론조사에서 공식적인 답변은 평소 정책과 이번 공약을 보고 찍겠다가 모범답안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오가는 얘기를 들으면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정책이나 인물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설 때도 있다.

‘저출생’ 대응 앞세운 여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게시판에는 정당 및 후보별 10대 공약이 소관 상임위를 명시해서 가지런히 올라 있다. 지지율 기준 여야 주요 정당이 내놓은 공약 중 ‘여성’ 분야를 추려보면 성평등은 빠지고 저출생, 돌봄, 안전 관련 내용이 담겼다.

‘저출생’ 대응을 제1번 공약으로 한 국민의힘은 부총리급 인구부 신설을 해법으로 내놓았다. 지난 대선 때 발표한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공약에 비하면 설명도 있어 친절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생’을 제2번 공약으로 잡고 다자녀가구 주거 혜택, 18세까지 월 20만원 아동바우처 등 ‘출생기본소득’ 제도를 제안했다. 그동안 우리는 아이를 낳았을 때 목돈을 주거나 영유아기에 각종 지원을 집중하는 반면 해외에서는 18세가 될 때까지 꾸준히 지원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덕분인지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 등도 아동수당을 18세까지 주는 공약을 내놓았다. 현행 아동수당은 8세 미만(0~95개월)까지 월 10만원이다.

돌봄은 여성만의 몫은 아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국가가 지원하는 돌봄 인프라는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번 총선에는 특히 돌봄청 설치 공약이 눈에 띈다. 조국혁신당은 ‘계층이동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교육혁신 공약에 국가돌봄청 신설을 넣었다. 녹색정의당은 돌봄부총리제를 제안했다. 총선 전에도 방과후 초등돌봄이 이슈가 되자 교육계에서 정부에 돌봄청 설치를 요구한 바 있다.

돌봄청이 설치되면 무엇이 달라질지 아직 공약만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정책 수요가 발생하면 거기 대응하는 조직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폐지나 신설은 정치 논리를 떠나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한 기관이 만들어져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역량 있는 인재를 육성하려면 안정된 조직 환경도 중요하다. 최근 여성가족부나 사회서비스원이 폐지 혹은 축소 논의에 휘말리면서 겪은 혼란은 고스란히 정책 수요자의 고통으로 돌아간다.

결국 투표를 해야 바뀐다

총선은 우선 지역구를 위해 일할 선량을 뽑는 것이라 세세한 현안도 공약에 넣지만, 정당 차원의 공약이라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사명이 있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 공약 중 ‘일하는 부모에게 아이와 함께할 충분한 시간 제공’이라는 항목은 부모가 아닌 노동자에게도 효력 있는 선언으로 스며들면 좋겠다. 항간에는 ‘주69시간’ 근무 개편 논의가 총선 후 다시 점화될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 덧붙여 더불어민주당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처우 법제화’라든가, 70년 전 제정된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해 현행 기준에 맞추자는 공약도, 실현까지 갈 길이 멀더라도, 넣을만한 의미가 있다.

이제 22대 국회의원 후보자 등록이 끝나고 28일부터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최종 등록 후보자 698명 중 여성은 99명으로 14%를 차지한다. 참고로 현재 21대 국회의원 총 300명 중 여성의원은 57명(19%)이다. 투표를 해야 비율이 바뀐다.

이남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전 충청북도 양성평등가족정책관
이남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전 충청북도 양성평등가족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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