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욱 통합당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성교육 교재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덴마크 심리 치료사이자 성 연구가인 페르 홀름 크누센이 1971년 펴냈다.
덴마크 교사이자 성 연구가인 페르 홀름 크누센이 쓴 성교육 교재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담푸스

 

기혼 여성의 섹스 탐구 프로젝트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를 진행하는 동안 많은 여성들을 만났다. 섹스리스를 긍정하는 여성, 섹스가 괴로워 피하는 여성, 이제 막 섹스를 즐기기 시작한 여성, 자신의 성감대가 어딘지 정확히 알고 섹스토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여성, 클리토리스에 대한 탐구로 다큐를 만든 여성까지 다양했다. 나는 기획자였지만 섹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결혼 전에는 조신한 척하느라 수동적이고 소심한 섹스를 했고, 결혼 후에는 두 아이를 키우느라 여유가 없었다. 섹스는 늘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섹스’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써보자. 민망함, 수치심, 문란함, 성범죄, 임신, 두려움, 불안, 걸레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다. ‘멋지고, 신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지만 새로운 체위는 귀찮았고, 내 감정과 생각을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성격이었지만 섹스에 있어서는 침묵이 쉬웠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섹스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을까? 왜 여전히 많은 엄마들이 섹스의 ‘섹’조차 발음하기 어려워할까?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답은 간단하다. “몸조심해야 한다” 이 한 문장이 내가 받은 성교육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섹스는 모를수록 좋은 것이었다. 섹스를 원하면 헤픈 여자가 되어 욕을 먹고, 성적 호기심은 나쁜 것이니 절제가 필요했다.

어린 시절 내가 어떻게 태어났냐고 물었고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들었다. 중학생이 되어 구체적인 ‘섹스’ 행위와 임신, 출산의 과정을 알게 된 이후 충격이 컸다. “엄마, 아빠가 섹스해서 나를 낳았다고?” 상상이 되지 않았다. 섹스는 더럽고 민망하여 차라리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믿는 편이 더 낫겠다고 머리를 저었다. 엄마, 아빠가 ‘섹스하는 존재’라니.

오랜 시간 쌓인 내 안의 보수적인 성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자신의 몸과 성을 주체적으로 탐색하는 여성들과 섹스라는 주제를 집중 탐구하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후에야 조금씩 바뀌었다. 섹스는 몸과 몸의 만남이다. 그런데도 나는 몸과 섹스에 무지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섹스의 기쁨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섹스는 ‘부끄러운 짓’이 아니라 삶의 많은 기쁨 중 하나라는 것을.

최근 N번방 성착취 사건 등 다양한 성폭력 문제가 가시화되면서 많은 양육자들이 고민한다. “아이들 성교육 어떻게 하지?” 양육자들의 걱정과 불안은 아들, 딸 구분 없이 절실하다. 미디어의 발달로 자극적인 정보가 넘치고, 성적 호기심이 발동하는 연령이 낮아지고 있으니 영유아 시절부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도 성교육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이번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내가 경험한 성교육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나는 음지에서 성을 배웠다. 부모님은 오직 내가 아무것도 모르기를 바랐다. 성적 호기심이 없어야 착한 딸이고 건강한 사람이라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섹스의 즐거움’보다는 수치심, 죄책감을 배웠고, 그 억압을 떨치는 데 오래 걸렸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첫째가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난 거야?” 물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거나 황새가 물어다 주었다는 이야기로 대충 얼버무리지 않았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동화책을 준비해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그림과 함께 과학적 성 지식을 진솔하게 알려주었다.

지난 25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이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해 조기성애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비난한 책이다. 이 책은 덴마크 교사이자 성 연구가인 페르 홀름 크누센이 쓴 책으로 미국, 유럽 등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성교육 고전이다. 아이들이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몸과 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인데, 전체 내용과 맥락을 제거하고 일부를 편집하여 성관계를 장려하는 책이라고 금서 취급을 하니 황당하고 씁쓸하다. (김 의원의 걱정처럼 이 책을 본 아이가 섹스 자체를 궁금해하진 않았다. 수정돼 배가 부르고, 질로 출산하는 그림을 보며 임신, 출산의 과정이 여성의 몸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배우고 놀랐을 뿐이다.)

아이들은 존재의 시작을 궁금해할 권리가 있다. 성적 호기심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인정하고 성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이들의 상상력에 맡기지 말자. 섹스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성적 관심을 늦추기 위해 섹스 묘사가 포함된 동화책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긴다고 해서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포르노, 불법촬영물 등 부정확하고 부정적인 내용으로 성을 접하기 전에 올바른 지식과 태도를 갖도록 해야 한다.

섹스는 특별하지 않다. 수학 공식을 배우듯, 영어 문법을 배우듯 성실히 배워야 할 삶의 한 분야다. 솔직히 성교육을 나중으로 미루는 게 가장 쉽다. 섹스, 관계, 상호 기쁨을 가르치려면 자기 신체 결정권, 동의 협상, 경계 존중, 신뢰, 책임, 피임, 질병 등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개념을 이해시켜야 하니 어렵다. 아직 어려서 필요없는 게 아니라 너무 어려워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랑스는 2017년부터 성적 쾌락을 느끼는 기관을 초중고 교과서에 소개하고, 중학교 교실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섹스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 보라 했더니 가장 많은 답변이 ‘plaisir(기쁨)’이었다고 한다. 불안과 걱정을 유발하며 방어적인 태도로 성을 가르쳤다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섹스가 즐거운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즐겁고 건강하게 성생활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성 가치관을 키워주는 게 성교육의 목표이지 않은가.

 

필자 이성경 (부너미 대표·『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기획 및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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