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 웡의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 쇼 ‘앨리 웡: 성性역은 없다’ ⓒNetflix
앨리 웡의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 쇼 ‘앨리 웡: 성性역은 없다’ ⓒNetflix

내가 넷플릭스에 가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두 개의 프로그램이다. 하나는 클레어 언더우드가 마침내 백악관의 주인이 된 에피소드를 다루는 ‘하우스 오브 카드’ 마지막 시즌이고, 나머지 하나는 작은 체구의 동양계 미국인이 섹스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내는 앨리 웡의 스탠드업 코미디이다.

앨리 웡은 작가이자 배우로 넷플릭스에 ‘베이비 코브라’와 ‘앨리 웡: 성性역은 없다’라는 2개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런칭했다. 첫 번째 작품인 ‘베이비 코브라’에서는 연애, 결혼에 대해 그리고 두 번째 작품인 ‘성역은 없다’에서는 출산 후 겪게 되는 일들과 차별에 대해 주로 얘기한다. 그리고 두 작품 전반적으로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거침없는 섹스에 대한 발언이 계속된다.

160cm 남짓 돼 보이는 작은 키에 마른 체구, 깐깐해 보이는 빨간색 뿔테 안경, 그리고 임신 7개월의 커다란 배에 착 감긴 얼룩말 줄무늬의 미니 원피스는 그의 캐릭터를 더욱 부각한다. 그의 피부색, 패션, 목소리 톤, 애티튜드는 하나의 완벽한 풀 패키지와도 같다. 그는 큰 무대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노숙자와의 섹스, 애널섹스, 구강성교에 대해 얘기하고 자신의 욕망을 숨김없이 꺼내놓는다. 표현의 자유가 허락된 미국이라 가능한 프로그램인 걸까? 아니면 미국 내에서도 이것은 ‘선을 넘는’ 것일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시청자인 입장에서의 나는 가끔은 버거울 정도의 표현을 보며 조금은 민망하기도 한 반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앨리 웡의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 쇼 ‘앨리 웡: 성性역은 없다’ ⓒNetflix
앨리 웡의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 쇼 ‘앨리 웡: 성性역은 없다’ ⓒNetflix

사실 나도 저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고 머릿속으로는 그 이상을 상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 두려워 점잖은 척 아닌 척 숨겨왔건만 앨리 웡의 코미디는 마치 아무도 없는 거대한 갈대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던 이발사와 같이 완벽한 해소의 도구와도 같았다.

가족, 친구, 연인 등 가까운 주변인과 섹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거나 물어본 적이 있는가?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기회를 거의 가질 수가 없었다. 내게는 자매가 없었고, 동성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았다. 이성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쉬운 여자로 보일 것 같았고, 연인과는 섹스는 해도 섹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그렇게까지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던 것 같다. 이래저래 나는 섹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스스로 검열하고 제한해왔다.

그러던 2019년 어느 날 나는 우연한 기회에 기혼 여성들이 섹스에 대해 공동집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섹스에 대해 워낙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나는 그 시점부터 입이 터졌고 방언처럼 섹스에 대한 의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이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 내가 섹스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하던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떠한 의미로는 내가 이 공동체 안에서만큼은 보호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가족과, 가까운 지인 중 극히 일부만을 제외하고는 이와 같은 집필활동에 대해 전혀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특히, 내 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들키지 않도록 내 발자취를 지우고 또 지웠다.

물론 예상처럼 익명의 공간인 포털에서의 반응은 매우 가혹했다. 개인적으로 댓글을 면밀하게 정독하며 곱씹는 성격은 아니지만 대충 훑어본 것만으로도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수두룩했다. 내가 실명이 아닌 가명을 사용했던 것이 나를 방어하기 위한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나는 언제 앨리 웡과 같이 본인의 실명을 내걸고, 본인의 얼굴을 내세워 섹스에 대해 시원하게 말할 수 있을까?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내가 변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를 일이지만 아직 나에겐 조금 더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은파도 (대관 경력 15년차 직장인·『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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