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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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맞벌이 부부다. 친정과 시댁은 지방이라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고 사람을 고용하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해서 부부 둘이 육아에 집안일을 해온 지 어느덧 3년째다. 기상, 등원, 출근, 퇴근 (하원은 남편이) 저녁 식사 준비,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 목욕, 그리고 아이를 재우면 어느새 밤 10시가 훌쩍 넘어간다. 간혹 바빠지는 시즌에 내가 계속 야근을 하거나 남편이 해외 출장이라도 가게 될 때면 한 명에게 이 모든 일이 몰린다. 휴일이라고 다를 바 없다. 아이는 알람처럼 정해진 새벽 시간에 어김없이 일어나 뻐꾸기시계처럼 울어댄다. 그 알람은 우리가 일어나 아이의 아침을 챙겨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퍼즐 놀이를 함께 해야만 멈춘다.

가끔씩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우리와 같이 육아에 지치고 바쁜 부부가 섹스에 대한 ‘암호’를 만들어 아이 몰래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특정한 단어를 얘기하거나 제스쳐를 하면 그날 밤 아이가 잠든 뒤 부부가 오붓한 시간을 갖고 섹스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마저도 불가능하다. 아이가 직장 어린이집에 당첨된 이후 등원 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회사 근처로 이사를 했는데, 대부분 주요 직장 소재지가 그렇겠지만 도심 한가운데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이라 우리가 가진 예산으로는 신혼집의 거의 절반 크기에 20년 이상 된 낡은 아파트로 올 수밖에 없었다. 방 4개에 화장실 2개 신축이었던 신혼집에서 방 2개 화장실 1개인 지금의 집은 옆집 거실의 TV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열악하지만 집값은 신혼집의 무려 4배다.

이사 온 뒤 우리 가족은 모두 안방에서 사이좋게 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이가 나빠도 다 같이 안방에서 잘 수밖에 없다. 그곳이 우리 집에서 가장 넓은 곳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단칸방에서 살아도 애를 셋, 넷씩 주렁주렁 낳았다지만 나와 남편 사이에 아이를 두고 셋이 누워 있다 보면 로맨틱한 분위기는 둘째치고 출퇴근에 육아에 집안일에 지친 나와 남편은 대부분 아이보다도 더 빨리 잠들어버린다. 아주 가끔씩 매우 고맙게도 아이가 먼저 곯아떨어질 땐 남편과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 와인이나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곤 하는데 그럴 때면 각자 핸드폰으로 넷플릭스를 보며 멍 때리기에 바쁘다. 섹스보다는 ‘혼술과 넷플릭스’, 이것이 하루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를 푸는 각자의 치유인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섹스는 ‘등산’과도 같다. 가끔 하고 싶고, 하면 좋은 건 아는데, 할 생각을 하면 피곤하고 귀찮다는 생각도 든다. 꼭 해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주 가끔 생리를 하기 직전에 너무나 섹스를 하고 싶을 때가 있긴 하다. 그럴 때면 피곤하더라도 눈을 부릅뜨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릴 때도 있는데 막상 아이가 잠들고 나면 남편도 잠들어버릴 때가 대부분이고, 설령 깨어있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섹스를 하자고 달려들기도 애매하다. 섹스라는 것이 분위기와 타이밍이 있기 마련인데 그러기에 우리 부부는 너무나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부부들은 다 이렇게 의도치 않은 섹스리스를 겪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우리나라 부부들 중 섹스리스 커플이 많다고는 하는데, 누가 어떻게 몇 명을 조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의 상황을 비추어보자면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기보다는 섹스리스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계속 방치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도 싶다. 아무리 워라밸이라지만 대부분은 9시~18시 근무 시간을 준수해야 하고, 육아에 집안일에, 또 각자 나름의 집안 사정에, 커리어 패스에, 취미 활동에, 주식과 부동산 걱정에 온 기력을 다 빨리고 나면 부부가 섹스할 시간과 에너지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부간의 섹스는 이 모든 것에 우선순위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나의 의도치 않은 섹스리스는 언제 끝날 수 있을까? 아이가 좀 더 커서 부모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게 될 때일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넓은 집에 살게 돼 부부와 아이의 공간이 분리될 때일까? 둘 중 어느 쪽이라고 할지라도 아직 10년은 더 걸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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