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광장에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가 열려 참가자들이 행진 선두 차량을 따르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9년 6월 1일 서울광장에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가 열려 참가자들이 행진 선두 차량을 따르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SNS에서 돌던 일화가 하나 있다. 퀴어문화축제에서 ‘항문섹스 아웃’ 피켓을 들고 계시던 한 기독교인에게 다가가서 ‘여자들끼리는 항문으로 안 하는데 여자들끼리는 괜찮아요? 손가락으로 하는 건요?’라고 물어봤더니 흠칫 놀라면서 ‘그건 괜찮을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질문 앞에서의 담대함은 주님이 주지 않으셨나 보다.

매년 퀴어문화축제를 함께 축하해주기 위해서 등장하는 ‘혐오세력’이 있다. 난 솔직히 이 단어를 별로 안 좋아한다. 거창해 보이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사람들을 싫어할 권리 따위를 들먹이며,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치고 너무 엘레강스하다. 일단 네 글자는 아이돌 이름 같다. 

올해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온라인으로 열리는 비대면 행사였지만, 풍성했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하는 것도 못 봐주겠다며 떠들던 그들도 있었다. 아마 그들도 나만큼이나 퀴어문화축제를 기다렸을 거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에서 부채춤을 추고 북을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누구보다 흥겨운 시간을 보낸 건 그들이었다. 어떤 외국인들은 퀴어문화축제 한 켠에서 열린 그들의 학예회를 구경하며 그들 또한 퀴어문화축제를 축하하는 공연팀인 줄 알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더라. 초대받지 않은 축제에 눈치 없게 찾아오는 것도 모자라 깽판까지 치는 그들은 자신이 퀴어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대체로 이런 생각으로 퀴어를 싫어한다. 퀴어들은 항문섹스를 한다. 항문섹스는 에이즈의 원인이다. 항문섹스 아웃. 퀴어 아웃. 여기서 그 어떤 과학적인 상식과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와도 달라지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퀴어=항문섹스라는 공식은 퀴어를 섹스만 하는 존재로 만든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퀴어들의 섹스를 한가지로 축소한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오로지 한 가지 방법으로만 섹스를 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입으로도 하고, 손으로도 하고, 성기끼리 마찰시키기도 하고, 삽입하기도 빼기도 한다. 체위 또한 다양하다. 이성간 섹스는 손으로도 하고 입으로도 하고 성기로도 항문으로도 하는데, 동성 간 섹스는 오로지 항문으로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차별 아닌가. 그나저나 여자들의 핑거섹스는 언제 그들의 피켓에 등장할 수 있을까.

‘빌로우 허’라는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즉 GV를 진행한 적이 있다. 섹스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다. 솔직히 말해서 인터넷 소설 같은 짜릿한 재미가 있긴 했으나 영화 자체를 가지고 커다란 의미를 찾기는 어려운 그런 영화다. GV에는 빠지지 않는 분들이 계신다. 굳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분 말이다. 그 자리도 그랬다. 저기서 누구보다 빠르게 손을 드는 한 남성이 있었다. 그의 질문을 받지 않으려고 여러모로 노력했으나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왔음을 결국 받아들여야만 했다.

“제가 얼마 전에 다른 레즈비언 영화를 봤는데요, 궁금하더라고요. 그 영화랑 이 영화랑 둘 중에 뭐가 더 진짜 레즈비언 섹스에 가까운가요?”

그가 말했던 영화와 이 영화가 ‘퀴어 영화’라는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 어떤 공통점도 없었다. 마치 ‘타이타닉’과 ‘아내의 유혹’만큼이나 말이다. ‘타이타닉’과 ‘아내의 유혹’을 ‘이성애 로맨스물’이라는 한 카테고리에 집어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성 간 사랑을 다뤘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을 가지고, 모든 영화와 모든 드라마를 국경과 스토리를 뛰어넘어 하나로 묶어버려도 정말 괜찮은가. 우리는 섹스도 하고 사랑도 하고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게임도 하며 살아간다. 365일 24시간 섹스만 하는 사람은 없다. 입체적인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런데 왜 어떤 존재들은 섹스만 하는 것처럼 취급당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자신과 다른 존재가 신기한 나머지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세상에는 총천연색 무지개만큼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은하선 섹스 칼럼니스트·은하선토이즈 대표
은하선 섹스 칼럼니스트·은하선토이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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