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아 기자, CC0 Public Domain
ⓒ이세아 기자, CC0 Public Domain

 

포르노를 처음 본 그때의 생경함과 화끈거림 그리고 울렁였던 순간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겐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1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 4개 정도의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나뉘었는데, 에피소드마다 작고 못생긴 곱슬머리의 아저씨가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과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섹스를 했다. 여성 출연자들의 가슴은 멜론과 같이 컸고 남성 출연자들의 성기는 몸의 비율에 맞지 않게 길었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두 여자가 기다란 남성 성기 모양의 고무 막대기를 서로의 성기에 꽂고 애무를 하는 장면이었다. 남자친구와 키스조차 해보지 못했던 그 당시에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왜 남녀가 아니라 여자끼리 저렇게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이것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속 시원하게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비디오테이프에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상 문화가 혁신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접할 수 있는 포르노의 영화의 종류와 그 수는 비약적으로 확장됐다. 대부분은 북미 또는 일본에서 제작된 포르노들이었는데 영상물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과 행위들이 있었지만 역시 그것을 묻거나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북미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 출연자들은 섹스하며 대부분 쾌감을 느끼고 즐기는 모습으로 연출됐다. 희열에 찬 과장된 신음과 탄성들, 본인이 원하는 체위를 적극적으로 요구함과 동시에 섹스가 끝나면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비해 일본 포르노 섹스 장면에 등장하는 여성 출연자들은 대부분 고통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거나 울었다. 가끔은 섹스가 아니라 흡사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포르노 영화의 목적이 성적 쾌감의 대리만족이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일본 남성 또는 이러한 것을 소비하는 자들은 무언가 억눌려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도 갖게 됐다. 하지만 이 또한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속 시원하게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러한 의문들은 나의 머릿속에 켜켜이 쌓여갔고, 그것은 나의 무의식에 조금씩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무의식이 나의 섹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대 후반의 어느 날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접했던 포르노 영화의 여성 출연자와 같이 특정하게 연출된 신음과 행동을 따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정말 원하고 즐기는 것인가? 아니면 포르노 영화에서 나온 여성 출연자처럼 플롯과 설정에 따라 연출하고 있는 것가?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섹스를 했던 남성들 중 포르노 영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섹스에 대해 배우고 접할 수 있었던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지도 의문이었다. 포르노에서 나오는 체위와 행동들이 모두 나에게 즐거웠던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 영화를 소비하는 남성들의 성적 쾌감에 모든 시나리오와 배우의 표정과 신음, 그리고 카메라 앵글까지 세세하게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불편함을 느끼는 그 순간 상대방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영화에 나온 출연자처럼 신음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포르노 영화, 불법촬영 등 수없이 많은 영상물을 더욱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 나는 이제 다섯 살 된 내 아이에게 지금부터 어떻게 성교육을 시켜야 할지 참으로 고민이 많다. 어린이집에서도 주기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지만, 나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는 이러한 교육 기관뿐만 아니라 각 가정의 부모들에게도 이러한 성교육이 선행돼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나의 남편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 부부가 한 가지 확실하게 결정한 중요한 키워드는 있다. 그것은 바로 ‘존중’이다. 앞으로 찾아가야 할 길이 많지만 이러한 작은 첫걸음이 인식 변화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은파도 (대관 경력 15년차 직장인·『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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