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XF(섹스X페미니즘)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성의 건강하고 즐거운 성,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칼럼입니다. 누구나 궁금했지만 누구도 선뜻 답해주지 못했던 성 관련 이야기를 다룹니다. 모든 여성 독자들이 안전하고 주체적인 성생활을 할 수 있기를, 그 과정에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사실 암컷이 더 밝히지, 숫컷보다’

5년 전 책 <이기적 섹스>를 내고 한 언론사와 했던 인터뷰 기사가 떴을 때 그 밑에 달린 댓글이다. 여자가 섹스를 말하니까 당황한 나머지 이런 댓글을 달게 된 걸까? 기사에는 내가 어쩌다가 섹스를 말하는 책을 내게 됐는지 적혀 있었다. 자신의 섹스 경험을 과장해서 떠벌리고, 고수인 양 가르치려고 드는 남성들. 그리고 그런 남성들에게 끌려다니듯 섹스를 하게 되는 여성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안전하지 못한 상황들. 그럼에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조심하라고 가르치는 사회.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을 책으로 담고 싶었다는 내용이 세밀하게 인터뷰 안에 녹아 있었다. 물론 넘쳐나는 기사 홍수의 시대에서 기사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는 사람은 없다. 댓글을 단 사람도 그랬을 거다. 그러나 열심히 말을 하는데 한참을 듣지도 않고 멍 때리다가 ‘어, 여자도 섹스하네’ 수준의 반응을 하는 사람은, 역시 별로다.

섹스에 대한 글을 쓴다고 말했을 때 반응도 대부분 이 댓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섹스를 쓰는지보다 ‘섹스’를 쓴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한다. 놀랄 일은 아니다. 섹스의 영역뿐만 그런 건 아니니까. 여성의 말하기는 사적인 영역 취급당해왔고, ‘개인적’인 기분의 표현 정도로 폄하되기 일쑤다. 페미니즘도 섹스도 성폭력도 전부 여성들이 대충 자기 기분을 끄적여놓은 언제 버려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구겨진 쪽지 정도로 바라본다. 대통령이 수감 중인 성폭력 가해자에게 힘내라며 꽃을 보내는 세상이다. 아무리 싫다고 말해도 ‘너도 좋았잖아’, ‘즐겨놓고 이제 와서 왜 그래’ 라는 어처구니없는 문장을 마주하게 된다. 싫다는 말을 할 수 없는데 좋다는 말은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못 한다. 호불호를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한 개인의 성장은 쉽게 묻히고 만다. 할 수 있어, 여자도 할 수 있다, 파이팅, 유 캔 두 잇 이런 문장은 허무하다.

섹스는 사적인 건데 왜 나는 그리고 우리는 글로 남기려고 할까. 여자 몇 명이 모여 교환 일기장이나 돌리면 되지 왜 지면을 통해 글을 쓰려고 할까. 내가 미투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에서 성폭력 피해 생존자라고 말했을 때, 수많은 이들은 ‘섹스를 좋아한다더니 이제 와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며 나를 비난했다. 섹스의 즐거움을 말하며 섹스를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던 한 여성이, 알고 보니 성폭력 피해 생존자였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섹스를 좋아한다는 것은 세상 모든 종류의 섹스를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사람들. 분명 그들은 짜장면을 좋아할 것이고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침실에 들어가서 입을 벌리고 너 짜장면 좋아하잖아 라며 짜장면을 입에 처넣어도 짜장면을 여전히 좋아할 것이다. 좋아한다는 짧은 문장 안에 포함돼있는 여러 맥락을 삭제하고, 어떤 상황과 순간 속에서도 좋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에게 사회는 모 아니면 도다.

나는 끊임 없이 모와 도 사이를 넘나들고 싶다. 섹스와 강간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해자의 섹스 욕망을 부풀리고 피해자의 인생에서 즐거움을 삭제하는 사람들, ‘어떤’ 섹스가 아니라 ‘섹스’ 자체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면 결국 혼란 속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여자들이 섹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말하는 것은 결국 여성들이 섹스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말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넘나드는 우리의 글이 당신을 흔들 수 있길.

은하선 섹스 칼럼니스트·은하선토이즈 대표
은하선 섹스 칼럼니스트·은하선토이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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