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은 노르웨이에 이어 2018년부터 성중립 징병제를 시행한 두 번째 나라였다. 징병제를 폐지했다가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스웨덴은 ‘성중립적 군복무 제도(gender-neutral conscription)’라는 실험에 나섰다.
1960년대 최대 85만명을 동원했던 스웨덴군은 냉전 종식 후 급격히 축소되어 2010년 폐지 당시 상비군이 1만6천 명 수준까지 줄었다. 그러나 자원병 모집 실패와 러시아의 위협이 겹치자 2017년 다시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매년 약 9만명 중 4천명만 선발하는 소수정예 체제로 운영되며, 여성도 동일한 조건에서 포함되었다. 2023년 현재 병력은 상비군 2만4400명 포함 약 8만8천명이며 2030년까지 10만명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제도의 초점은 병력 보충이 아니라 징병제의 정당성 회복이었다. 남성만 복무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인식과, 유엔(UN) 안보리 결의안 1325가 확산시킨 ‘여성을 안보 주체로 포함해야 한다’는 국제 규범이 주요한 배경이었다. 성 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제도의 정당화와 유지를 위한 조건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도입은 단순히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결정이 아니었다. 정책 설계의 초점은 ‘누가 복무하느냐’보다 ‘국가가 국방과 군복무의 책임과 의무를 모든 국민에게 어떻게 나누어야 공정한가’에 있었다. ‘성중립’은 성별 집단의 평균적 차이보다 개인의 역량과 동기를 공정하게 평가하겠다는 원칙의 천명이었다.
이 원칙은 관련 제도의 여러 층위에서 드러난다. 첫째, 스웨덴은 모든 18세 국민을 병역 의무 대상으로 두되, 국가가 정한 소수 정예의 필요 인력을 남녀 구분 없이 적성과 동기에 따라 선발하는 ‘선택적 징병제(selective conscription)’를 운영한다. 체력뿐 아니라 협업 능력과 리더십이 기준이며, 복무자에게는 동일한 훈련과 보상이 적용된다.
둘째, 복무 형태의 다양성이다. 스웨덴은 이미 1989년 여성에게 전투 직책을 포함한 모든 직무를 개방한 뒤, 여성과 남성이라는 집단적 평균의 차이를 복무 분야를 나누는 기준에서 배제했다. 각 개인의 역량과 의지를 중심으로 책임을 배분하며, 징집 절차, 면제 기준은 투명하게 공개된다. 또한 군사 복무 외에도 재난 대응·구조 지원·사회 서비스 등 민간 복무가 병행될 수 있다. 총을 드는 사람뿐 아니라 의료나 구호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도 국가방위의 일부로 인정된다.
셋째, 성중립 징병제가 사회적 합의 속에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랜 기간에 걸친 돌봄·육아·가족 책임의 공동화 문화가 있었다. 1970년대 유급 육아휴직 도입, 1990년대 ‘부모별 할당제’ 시행을 통해 스웨덴은 돌봄과 국방을 모두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다루는 기반을 형성했다. 이러한 문화적 토대가 성중립 징병제를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제도로 받아들이게 했다.
결국 스웨덴의 성중립 징병제는 단지 여성 복무자의 확대가 아니라, 정치·경제·문화·가족 등 국가․사회의 시스템 관리에 성평등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통합해 온 역사적 흐름의 연장선 위에 있다. 관련 법률, 선발 기준, 정보 공개, 복무 환경 등 모든 단계에서 자유와 평등을 전제한 절차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제도는 ‘자유와 평등이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물론 스웨덴의 성중립 징병제가 일사불란한 합의 속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여성 징병은 새로운 비용과 갈등을 동반했다. 위생·생활 시설 보강, 성평등 교육, 성희롱 방지 훈련이 필수가 되자 일부에서는 “군사력과 직접 관련 없는 낭비”라는 불만이 제기됐다. 남성 병사들 사이에서는 여성과 경쟁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스웨덴은 제도의 목표를 ‘효율적 병력 확보’보다 ‘공정한 책임 분담’에 두었다.
오랜 성평등 정책 실현의 역사 과정에서 얻은 다음과 같은 교훈 때문이다. 제도가 자유와 평등의 원칙 아래에서 설계될 때, 전쟁과 평화에 관한 결정 과정에서도 시민의 참여와 비판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때 징병제는 불평등의 상징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성숙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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