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먹고 자란 성착취⑤] 디지털 성착취의 진화, 법은 더 빨라야 한다
[무관심 먹고 자란 성착취⑤] 디지털 성착취의 진화, 법은 더 빨라야 한다
  • 김서현 기자
  • 승인 2020.04.17 07:55
  • 수정 2020-04-16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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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양형위 아청법 양형기준 마련 예정
검찰 처벌 위한 새 범주 도입
분노한 사람들 "감경 사유
필요하지 않다" 목소리 커

[무관심 먹고 자란 성착취] 2020년 3월17일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100여 명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금전 대가를 받고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 '박사방'에 유포한 '박사' 조주빈(25)이 검거됐다. 경찰조사 결과 텔레그램 단체채팅방 '박사방'에는 최고 1만 명이 대화에 참가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20~150만원에 이르는 돈을 지불하고 채팅방에 참가했으며 성착취 영상이 올라올 때면 누가 더 모욕적인 말을 하는지 경쟁했다. 1990년대 저화질 8mm 캠코더로 촬영한 성착취 영상이 청계 상가에 나올 때 제대로 뿌리 뽑지 못한 디지털 성착취는 소라넷과 다크웹을 거쳐 오늘날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산업화 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①'N번방' 새로운 '박사' 또 있다… ‘디지털 집단 성폭력’ 도입 필요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290
②N번방 피해자 “제 잘못 없는 것 맞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515
③소라넷 회원 100만명 감방 대신 N번방 갔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749
④성착취 타깃된 ‘일탈계’는 왜 자기 몸을 전시하나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949
 

‘나라에 상처준 박사방’ 25일 오전 종로경찰서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물 제작,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서울중앙지방검찰정으로 이송됐다. 기본소득당 당원들은 이날 종로경찰서 앞에 모여 '공범자도 처벌하라', '당신도 피해자만큼 고통을 겪어야지' 등의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일부 참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울먹이기도 했다.  ⓒ홍수형 기자
지난 3월 25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되자 여성들이 종로경찰서 앞에서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홍수형 기자

 

N번방 사건이 전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후 각계각층에서 “그간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였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1990년대부터 이어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무관심이 N번방을 낳았다는 것이다. 2018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로 검거된 사람은 1만1746명에 이르는데, 구속된 이는 271명으로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통신매체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질러 검거된 1528명 중 구속된 사람도 9명으로 전체의 0.6%였다.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함께 독버섯처럼 자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법조계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오는 20일에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마련한다. 앞서 9일 대검찰청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처리기준’을 마련하고 성착취 영상물 제작 사범에 대해 최대 무기 징역까지 구형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성폭력 범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미래의 디지털 범죄까지 아우르는 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3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취임 100일을 맞아 ‘법무부TV’ 유튜브 영상에서 “법 집행기관이 제 식구를 감싸는 등 잘못된 처리를 해 여성을 성적 유희 대상으로 삼고 법은 강자의 편에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며 “디지털 성착취 바이러스에 대해 무한의 책임을 갖고 무관용의 대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박사’ 조주빈(25)의 검거 전 이미 구속된 N번방의 전 운영자 ‘와치맨’ 전모(36)씨에 대해 검찰이 징역 3년6개월을 구형한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이 빗발쳐 검찰은 보강수사에 나섰다. 

지난 8일에는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을 통해 모인 사람들이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와 함께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국민의견 분석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지난 31일까지 모인 2만182명의 사람들의 뜻을 밝힌 것으로,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감경 사유에 반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들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감경 사유에 대해 총 7902건의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가중사유에는 n번방, 협박, 강요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행위의 죄질이 나쁨'에 3839건의 의견이 나왔다. △아동 등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 대상(2095건) △유포 규모(1364건) △피해자 특정 가능(1361건) △피해자 규모·범행 횟수(1262건) △영상 유포 협박(1169건) 등이 뒤를 이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검찰은 9일 사건처리기준을 재정비하며 ‘성착취 영상물 사범’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도입했다. 성착취 영상물의 경우 제작 및 촬영 과정, 피해 정도가 일반 음란물과 차이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검찰이 정의한 성착취 영상물은 △제작·촬영 과정에서 성범죄, 폭행, 협박 등 타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강제하는 별도의 범죄가 결부된 경우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성적 영상물 등이다.

이번에 제정된 기준에 따르면 조직적으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한 사범은 가담 정도를 불문하고 전원 구속하며 주범은 징역 15년 이상 또는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까지 구형받게 된다. 전까지는 일반 소지자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합의, 반성문 등을 근거로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으나 새 기준은 벌금 500만원 이상을 구형함으로써 기소유예를 원천적으로 막는다.

20일에는 대법원의 양형위원회가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 제작·배포 범죄에 대한 새 양형기준을 만든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13일 대법원에서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여성폭력방지위원회에서 제안한 양형기준 설정에 관한 의견을 전달했다. 위원회는 △양형 시 피해자 연령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점 △디지털 성범죄는 판단에 있어 일반 범죄와 달리 인식할 필요가 있는 점 △유포 범죄도 엄격한 양형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제안했다. 앞서 지난 3월 대법원 젠더법연구회 소속 등 판사 13명은 법원 내부 게시망인 코트넷에 “디지털 성범죄는 현실 공간에서의 성학대·협박·유인·폭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피해자의 사회적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소지가 판매 및 배포의 동기가 되고, 판매 및 배포가 제작의 동기가 되는 구조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형기준은 원칙적으로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법관이 기준을 이탈할 경우 판결문에 이유를 기재해야 하므로 합리적 사유 없는 낮은 형량 선고를 막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검찰의 사건처리기준에 이은 양형기준 마련이 법조계 전반에 인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호민 변호사는 “법조계 전반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새로운 처벌 기준 등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부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디지털 성범죄는 기술 발전에 따라 계속 발전할 것이다. 성폭력 자체를 재정의하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재 N번방 피의자들은 기존의 면대면 방식의 성폭력을 전제한 법률로 단순하게 처벌 할 수 없다”고 의견을 말했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당장 ‘박사’ 조주빈과 채팅방 회원들이 받을 처벌을 속단할 수는 없다”며 “주요 피의자 조주빈과 ‘부따’ 강모(18)씨, ‘이기야’ 이모(19)씨 등은 공범으로 묶이겠지만 채팅방 가담자들은 유료방, 홍보방, 맛보기방에 따라 또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씨는 대략 38개의 채팅방을 운영하며 20만원에서 150만원에 이르는 입장료에 따라 다르게 성착취 영상을 유포했다. 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홍보, 맛보기 방을 운영하며 이곳에서도 성착취 영상을 유포해다. 박 변호사는 “양형위에서는 디지털 성범죄가 갖는 특성인 계속성과 지속성을 주요하게 반영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내부에서 그동안 주요한 감형요소로 작용한 피해자와 관계없이 감형을 위해 가해자가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 등에 대해 서도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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