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착취물 제작’ 판사 ‘3년형’… 단체·전문가는 평균 ‘10년형’
‘아동 성착취물 제작’ 판사 ‘3년형’… 단체·전문가는 평균 ‘10년형’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0.04.27 20:29
  • 수정 2020-04-28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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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양형위, 판사 668명 설문
31.6% “3년형”·1.6% “9년형 이상”
‘기본양형’ 법정형보다 낮게 인식
여가부, 단체·전문가 323곳 설문
단체 10.54년·전문가 8.23년형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이 지난 3월 25일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종로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범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여성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이 지난 3월 25일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종로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범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여성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유독 성범죄에 관대한 처벌을 내리는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해시태그가 확산됐다. 디지털 성착취물 거래 범죄인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성착취물 관련 범죄의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뜨겁다. 반인륜적인 범죄에 엄벌 해야 한다는 요구가 크지만 판결은 관대하기만 하다. 실제로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적정 양형’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3년형’을 선택한 판사가 가장 많았다.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이 평균 ‘10년형’이 적절하다고 답변한 것과는 차이가 컸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대법원 양형위원회

 

판결에 참고하는 잣대 ‘양형기준’ 적정선은?
성착취물 제작 범죄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가 양형기준을 만들기 위해 3월 4일부터 13일까지 판사 668명을 설문조사했다. 조사 결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에 대해 판사의 31.6%(211명)가 기본양형(가중·감경을 배제한 양형)으로 ‘3년형’을 선택했다.

양형기준이란 법관이 형을 정함에 있어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다. 주요 범죄에 대한 들쑥날쑥한 판결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11조는 △아동음란물을 제작한 자는 5년 이상에서 10년 이상 유기징역 △영리 목적으로 판매, 배포한 자는 7년 이하에서 10년 이하 징역 △아동음란물을 취합, 소지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아동 성착취물을 제작한 자에게 법정형으로는 ‘징역 5년 이상~무기징역’을 내릴 수 있지만 판사들은 법정형에도 못미치는 3년형을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5년형’이 19.2%(128명), ‘2년6개월형’이 14.8%(99명) 순이었다. 응답자가 선택할 수 있는 문항 중 최고형은 ‘9년형 이상’이었는데 이를 선택한 판사는 11명(1.6%)에 그쳤다.

가중 영역으로는 ‘징역 5년’(37.9%)을 꼽은 판사가 가장 많았다. 신뢰관계를 이용하거나, 동종 전과가 있는 경우 등의 가중요소를 반영하더라도 징역 5년이 적당하다고 판사들은 본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판사 668명을 대상으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등 범죄에 대해 설문조사 한 결과, 211명(31.6%)이 기본 양형으로 ‘3년형’을 꼽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판사 668명을 대상으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등 범죄에 대해 설문조사 한 결과, 211명(31.6%)이 기본 양형으로 ‘3년형’을 꼽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판사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적정 양형 ‘3년형’
아동 성착취물 제작 범죄 평균 형량 ‘2년6월’

설문조사 당시 대법원 젠더법연구회 소속 판사 13명은 설문에서 제시한 양형이 법정형이 비해 지나치게 낮아 “다양한 범죄 유형이나 피해자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며 “설문조사를 전면 재검토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양형위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아청법 11조1항)로 기소된 사건은 15건으로, 12건(80%)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실형은 3건(20%) 뿐이었다.

평균 형량은 30.4월(약 2년6월)이었다. 범죄 법정형의 하한은 징역 5년이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은 점, 피고인이 유형력(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점 등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을 반영해 판사 재량으로 감형해준 것이다.

그러나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인식은 법관과는 달랐다. 지난해 12월 김영란 양형위원장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양형기준 설정에 관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요청했다. 여가부는 지난 1월10일부터 2월4일까지 아동·청소년 성보호 관련 단체 165곳과 학계·법조계 전문가 24명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적정 처벌 수위는 항문을 제시한 법관 설문조사와 달리 주관식으로 진행됐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에 대해 단체는 평균 ‘10.54년형’이 적정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평균 ‘8.23년형’을 꼽아 단체와 전문가들이 평균 ‘10.25년형’이 처벌 수위로 적절하다고 답변했다. 최소 처벌 수위도 단체와 전문가 모두 평균 ‘5년형’이라고 답해 판사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3년형’보다 높았다.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4월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제101차 양형위원회 개의에 앞서 위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양형위는 5월 18일 추가 회의를 열고 형량 범위와 감경·가중 양형인자 등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4월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제101차 양형위원회 개의에 앞서 위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양형위는 5월 18일 추가 회의를 열고 형량 범위와 감경·가중 양형인자 등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전문위원 “제작 범죄 최고 13년형” 권고
특별가중요소 2개 이상이면 19년6월까지

단체와 전문가들은 성착취물 관련 범죄에서 가중 요소로 △‘매체에 따른 배포 파급력’과 개인정보 유출 등의 ‘2차 피해 발생 여부’ △‘범죄 수익을 환수할 수 없도록 조작했는지 여부’ △피해자가 직접 신고·고소한 경우 △피해자가 범죄 중단을 요구했지만 지속·강행한 경우 △피해자의 가족, 친구, 친인척, 지인으로서 범행한 경우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1개 관계부처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여가부 여성폭력방지위원회도 “일반 양형에서는 초범과 상습범 여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 정도, 피해의 정도 등을 고려하게 되는데, 디지털 성범죄는 초범의 행위라도 디지털 상에서의 파급력은 차이가 없으며,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실질적 피해 회복이 불가능하며, 언제라도 촬영물 등이 재배포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양형위에 전달했다.

양형위 소속 전문위원들은 자료를 검토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양형기준을 가중 영역의 상한을 ‘징역 13년’으로 권고하는 데 의견을 일치했다. 법정형의 상한이 무기징역이기 때문에 특별가중요소가 2개 이상이면 가중 영역 상한의 2분의 1을 추가해 형량을 정할 수 있다.

양형위는 5월 18일 다시 회의를 열고 형량 범위와 감경·가중 양형인자, 집행유예 기준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후 6월 22일 공청회를 열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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