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날, 그 자리 : 여성들의 희생을 추모하며
2000년 가을. 하늘은 청명하고 추석을 앞둔 9월, 군산 대명동 일명 ‘쉬파리골목’ 화재 참사로 5명의 여성이 희생됐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장례를 치르고 이들을 보내드려야 했다. 추모의 노래를 따로 만들지 못하고 유가족들과 흐느끼면서 불렀던 ‘민들레처럼’(박노해 작사, 조민하 노래)이 추모 노래가 됐다. 그리고 2002년 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로 14명의 여성을 떠나보낼 때도 성착취 없는 세상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부활하길 염원하면서 ‘민들레처럼’을 함께 부르면 추모하고 행진했다. 그리고 우리는 매년 추모식을 열면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여성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면서 성착취 근절을 위한 수많은 활동을 진행해 왔다.¹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로 사망하신 분 중 두 분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아 무연고자로 처리돼, 화장 후 임피 승화원 무연고자 묘지에 안치됐다. 그러다 2005년 안치 기간이 다 됐다는 군산시의 연락을 받은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측이 연고자가 돼 현재의 일반 안치실로 모시게 됐다. 이를 계기로 2006년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 ‘민들레순례단’이라는 이름으로 지역활동가들이 납골당 참배와 군산 화재 참사 현장을 걷는 활동을 펼쳤다.² 이후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가 매년 지역 단체들과 함께 민들레순례단 활동을 해 왔고, 2025년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우리는 기억으로 투쟁한다 : 그러나 나비자리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
민들레순례단은 성산업착취구조해체를 위한 여성인권공동행동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고, 성 착취 구조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과 마주하면서 매년 주요 사안을 전면에 내걸고 투쟁해 왔다. 이런 결단과 의지를 함께 다지면서 국내/국제적 자매애를 함께 나누는 연대의 장이 바로 민들레순례단 활동이다. ‘지역발전 논리’, ‘여성들의 생존권’을 앞세운 ‘성매매 합법화’ 주장에 과감하게 대항하면서, 우리는 현장의 구조적 착취 문제를 드러내면서 성착취 근절 활동을 멈추지 않고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우리에게 군산 대명동, 개복동 화재 참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닌 바로 현재형이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 행동해야 하는 현장이다. 2013년 안전성 문제로 개복동 화재 참사 현장 건물이 헐리고 나서 우리는 그 자리에 여성인권기억공간을 건립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건물이 사라진다고 역사와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성 차별과 억압, 폭력으로부터 해방돼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는 종이학의 염원을 담아,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공간이 새롭게 세워지길 바라고 이를 위해 행동할 것이다.
2013년 2월 25일
군산 개복동화재참사건물이 헐려지는 날 함께 한 사람들
2013년 군산시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 건물을 ‘여성인권과 교육’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군산개복동여성인권센터(가)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2014년 『군산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 참사』추모 상징 조형물을 공모해 건립 전까지 설치하고자 2015년 ‘개복동2002 기억. 나비자리’ 조형물을 완성했으나 현장에 설치하지 못했다.³ 2016년 ‘군산 개복동기억공간추진위원회’로 전환, 군산 개복동이 ‘평화와 여성인권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도록 군산시, 전라북도에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다.

성착취와 성매매는 같이 갈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성평등가족부로 여성가족부를 확대 개편한다고 하면서 원민경 변호사(우리는 현장의 변호사라 한다)를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고 지난 3일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장관 후보자의 입에서 “성평등 사회와 성매매는 공존할 수 없다”는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왔을 때 현장에서 반성매매/반성착취 활동을 해 온 우리 모두는 울컥했다. 자존감이 회복되는 시간이었다.
또다시 돌아온 9월, 2025년 9월 민들레순례단 활동은 보다 활기차고 힘차게 성착취 없는 세상에 대해 여성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행진이 될 것 같다. 수천 수백의 꽃씨로 민들레 홀씨가 훨훨 날아 종이학의 꿈을 싣고 나비의 희망으로 다시 살아오는 행진이 될 것 같다. 이 뜨겁고 멋진 현장에 함께 해 주시길 바란다.

¹ 수많은 성착취피해여성들의 희생과 죽음위에 2004년 ‘성매매알선등 행위의 처벌에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법률’이 제정됐고 9월 23일 시행됐다. 2024년 법 제정 20주년을 맞았다.
² 화재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 때 자주 불렀던 노래로 수천 수백의 꽃씨가 돼 해방의 봄을 부르는 민들레의 투혼을 생각하며 순례단의 이름을 ‘민들레’라 부르게 됐다고 적고 있다(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반성매매여성인권운동 20년의 기록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p190-191, 2021년, 도서출판페이퍼백).
³ 2025년 현재 추모 조형물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전북 전주시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에 전시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