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사진=(가)‘벗방’피해자공동지원단
사진=(가)‘벗방’피해자공동지원단

2000년 9월 19일, 군산 대명동에서 발생한 화재로 성매매 업소에 감금돼 있던 여성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과 2년 뒤인 2002년, 군산 개복동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감금됐던 13명의 성매매 여성이 희생됐다. 이 두 차례의 참사는 2004년 ‘성매매처벌법’ 제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는 성매매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20년간 성매매는 더욱 교묘해졌다. 과거 유흥업소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성 거래는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벗방 BJ’, 온리팬스 등 개인 방송 플랫폼이라는 무대로 세력을 넓혔다. 벗방은 시청자가 유료 아이템을 많이 보낼수록 수위 높은 행위를 시청할 수 있는 식으로 운영된다. 이는 자발적 콘텐츠 생산으로 포장되곤 하나 착취 구조를 파헤쳐본다면 본질적으로 남성의 성적 욕망이 금전과 교환되는 행위라는 점에서 오프라인 성매매와 그 궤를 같이한다.

게다가 자신의 얼굴이 공개적으로 노출된 채 성적 행위를 수행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받은 평가나 조롱뿐만 아니라,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일을 하거나 사회에 다시 발을 내딛는 것마저 어렵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여성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발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피해자가 고발해도 ‘자업자득’으로 낙인찍는 구조

안타깝게도 개인 방송 플랫폼 내에서 피해 본 여성이 자신의 착취와 피해 사실을 용기 내어 고발할 때, 사회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보단 자업자득이라는 잔인한 조롱을 쏟아낸다. 실제, 국내 최초 레즈비언 연애 프로그램인 <너의 연애>에 출연한 리원의 경우, 한때 그가 성인 방송 플랫폼 내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대중의 관심은 리원의 성 지향성을 의심하며 각종 루머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는 2024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지원현황 공개 자료에서 성매매 피해 신고율이 성폭력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타나는 통계 이면에,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침묵하는 현실을 방증한다. 피해 여성들이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적 환경이 성착취를 더욱 음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2024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지원현황 공개 자료에서 성매매 피해 신고율은 전체 상담건수 중 0.9%에 불과하다.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2024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지원현황 공개 자료에서 성매매 피해 신고율은 전체 상담건수 중 0.9%에 불과하다.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착취 시스템의 설계자와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바로 성착취구조로 수익을 챙기는 사람이다. 대개는 여성이 ‘벗방’을 통해 수익을 낸다고 알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수익 대부분은 운영자와 플랫폼이 가져간다. SBS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의 1207회 ‘회장님 위의 회장님 – 벗방 카르텔의 진실’ 편에서의 인터뷰를 보면 해당 BJ가 버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플랫폼과 소속사가 가져가기에 BJ의 평균 한 달 수익이 60~70만 원에 불과하다. 여성의 희생 위에서 플랫폼은 수수료를, 운영자는 폭리를 취하며 성 구매자는 돈으로 성적 욕망을 충족하는 구매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착취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오프라인 성매매에서의 물리적 감금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며 경제적 덫과 사회적 고립이라는 형태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선불금이나 대여금은 디지털 시대에 뒤따라 계약금이나 위약금이라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여성들은 높은 수익을 기대하며 계약하지만 중도에 그만둘 경우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경제적 압박에 갇힌다. 게다가 이미 얼굴이 공개적으로 노출된 피해자들은 다른 직업을 갖거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꿈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기에, 사회적 낙인과 결합된 이 이중의 덫 속에서 여성들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점차 고립되어 가는 피해 여성을 법과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을 성적 착취의 피해자가 아닌 음란 행위를 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 때문이다. 성매매처벌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디지털 환경에서의 성적 행위는 자발적인 음란물 생산이나 음란성 논란에 갇히기 쉽다.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법적 해석은 '음란 행위에 가담했다'는 프레임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법이 구조적 폭력과 강요된 자발성을 외면하고 여성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잔혹한 현실을 방증한다.

 SBS 프로그램인 의 1207회 ‘회장님 위의 회장님 – 벗방 카르텔의 진실’ 편에서의 인터뷰를 보면 해당 BJ가 버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플랫폼과 소속사가 가져가기에 BJ의 평균 한 달 수익이 60~70만 원에 불과하다.ⓒSBS 그것이 알고싶다
SBS 프로그램인 의 1207회 ‘회장님 위의 회장님 – 벗방 카르텔의 진실’ 편에서의 인터뷰를 보면 해당 BJ가 버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플랫폼과 소속사가 가져가기에 BJ의 평균 한 달 수익이 60~70만 원에 불과하다.ⓒSBS 그것이 알고싶다

침묵을 깨고 연대를 위한 사회적 인식 변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매매 여성들은 죽고 있다. 과거에는 물리적 감금으로 죽었다면, 지금의 여성들은 빚과 위약금, 사회적 낙인이라는 정신적 폭력 속에서 소리 없는 죽음으로 내몰린다. 착취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성의 몸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구조적 폭력의 본질은 그대로다. '도와주세요' 외침에 '창녀' 낙인과 '자업자득' 조롱이 되돌아오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20년 전 참사의 교훈을 철저히 외면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여성의 고통을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제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더불어 사회적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성매매처벌법은 디지털 성착취에 대응하도록 피해자 중심으로 재정비되어야 하며, 피해 여성을 성적 착취의 피해자로 명확히 규정한 뒤 이들이 낙인 없이 사회로 복귀하도록 법적 보호와 경제적 지원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이들을 단순히 ‘스스로 원해서 한 일’로만 간주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주며 음지에서의 낙인을 지워주고 앞날을 응원해 줘야 한다. 구조적 폭력을 외면하는 잔혹한 시스템을 해체하고 인권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회적 연대만이 이 착취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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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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