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유세 마지막 날, 강남역에 선 권영국
혜화역부터 구의역 김군까지

2일 오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유권자 A씨와 만났다. ⓒ손상민 사진기자
2일 오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유권자 A씨와 만났다. ⓒ손상민 사진기자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나라는 선진국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여성이 차별받는 나라는, 살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2일 오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마지막 유세 현장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선 막바지 유세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비동의 강간죄’, 차별금지법, 안전한 임신중지권 보장. 거대 정당들이 외면하거나 침묵한 이슈들이다. 

권 후보가 비동의 강간죄를 유세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데는 한 여성의 편지가 있었다. 권 후보는 지난 5월 2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성폭력 피해를 겪고 자책하며 살아온 여성의 편지를 받았다”며 “절실한 말씀을 가슴에 깊이 담고,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더 크게, 더 높이 외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강남역 유세 현장엔 편지의 주인공 A씨도 있었다. 20대 여성 A씨는 ‘비동의 강간죄’가 적힌 피켓을 들고 유세를 지켜봤다. 유세차 위에서 권 후보가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반드시 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외치자, 그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A씨는 “답장을 받을 것이라 기대없이 보낸 메일이었는데, 후보님이 영상으로 답장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현장에 나오게 됐다”고 했다.

2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성평등 유세를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2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성평등 유세를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A씨는 “민주당은 지난 총선 공약집에 비동의강간죄가 들어갔지만, 실무적 착오라며 공약을 철회했고, 이준석 후보는 과거 ‘뭐? 비동간?’이라는 식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며 “비동의강간죄를 유일하게 이야기하는 권 후보를 보면서 희망을 가졌다”고 했다.

한편, 이번 대선은 여성 후보가 실종되고, 성평등 의제 또한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이 사라진 대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주요 후보들의 정책 공약을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대선에 비해 성평등 관련 공약을 크게 줄였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여성 정책 자체를 사실상 제시하지 않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세우며 반페미니즘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만이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며 성평등을 주요 의제로 전면에 내세웠다.

마지막까지 여성·장애인·노동자 조명한 권영국

강남역만이 아니다. 권 후보의 유세는 마지막까지 ‘광장의 정치’를 재현했다. 그는 서울 종로구 혜화역 유세를 시작으로 지하철 구의역과 강남역, SPC 규탄 기자회견, 쿠팡 택배노동자 고 정슬기씨 추모제 등에 참석했다. 장애인, 노동자,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를 조명하는 일정이다.

SPC 규탄 기자회견, 추모제 등은 이날 긴급 추가됐다. 권 후보는 “SPC 같은 경우는 대선한다고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꼭 이야기해야 하는 주제라 긴급하게 일정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는 “정치가 선거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로 움직이면 안 된다. 진보정치는 일관된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메시지는 이번 선거구도 속에서 더 선명하게 부각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중도보수 노선 선언과 국민의힘의 극우화 속에서 권 후보는 일관되게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선 메시지의 주어로 호명했다. 권 후보는 5월 1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진보의 이름으로 광장의 목소리, 그리고 민주주의 목소리를 되살리겠다”며 “모든 고공농성 노동자가 땅으로 내려올 수 있게 하는 것, 여성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모든 사회적 소수자가 존재하는 그대로 존중받게 하는 것이 진보”라고 했다.

2일 오전 서울 구의역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와 김군의 동료가 포옹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2일 오전 서울 구의역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와 김군의 동료가 포옹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사표는 없다…진보정당 역사 새로 쓸 사(史)표다”

유세 현장에서 권 후보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충격! 페미니스트 대통령 실존!’이라고 쓴 피켓을 든 시민, 악수와 포옹을 하며 눈물을 흘린 시민, “끝까지 토론을 보게 해준 유일한 후보”라며 지지를 표하는 시민도 있었다.

시민사회와 원외정당도 권 후보를 중심으로 모였다. 이날 혜화역 유세에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참석해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목소리 내주는 후보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며 “가치에 투표하자. 이동권을 위한 투쟁을 함께하자”고 연대 메시지를 전했다.

이백윤 노동당 대표와 이상현 녹색당 대표는 권 후보와 함께 구의역 참사 희생자인 김군에게 국화를 헌화했다. 권 후보는 “구의역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터는 안전하지 않다. 이윤이 사람 목숨보다 앞서는 사회를 멈춰야 한다”고 했다. 현장에는 김군의 동료였던 이승호 씨도 있었다. 그는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당시 구의역 사고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장을 맡은 바 있다.

유세 말미, 권 후보는 “사표는 없다”고 다시 외쳤다. 그는 “저, 권영국의 대선은 끝까지 진보정당을 믿어주신 시민들의 투표로 만든 드라마”리며 “소외된 이들과 함께, 권력에 맞서고 당당한 모습으로 대선에 나설 수 있었다. 사표가 아니었다. 더 떳떳한 진보정당을 만들고 역사를 새로 쓸 표, 사(史)표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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