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의 무기가 되는 글들]

서로가 다 ‘여성 혐오’라던 선거전이었다. 여성 혐오를 이렇게 터부시하는 후보들의 난립이라니. 이 정도로 여성 혐오에 민감하다면, 스스로들 페미니스트 선언쯤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여성 혐오에 반대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며, 이를 행하는 자가 페미니스트임을 감안하면 말이다. 성평등 비전은 보이질 않는데, 서로를 향한 ‘여성 혐오’ 공격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대선이었다.
그러나 성차별적인 사회를 바로 잡겠다는 후보들의 의지나 공약은 대부분 빈약했다. 그런데다 후보 5명 중 여성이 전무하다는 사실이야말로 여성혐오 사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실이었다. 그러다가 여성이 덜컥, 대선전에 등장한 것은 성기라는 신체의 일부를 통해서였다. TV 토론이라는 공론장에서, 성폭력 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유명한 저작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다시 펼쳐본 것은 ‘여성 혐오’의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상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어로 ‘미소지니’(misogyny)라 하는 ‘여성 혐오’를 그는 ‘여성 멸시’라고 말한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 멸시―를 ‘여성 혐오’라고 한다.” 여성에 대한 멸시와 함께 ‘객체화’, ‘타자화’에 방점을 찍고 나면 이 후보의 발언은 언어 성폭력이자 여성혐오임이 더욱 두드러진다. 우에노의 분석을 빌리면, 그날 이준석의 발언은 남자들끼리 서로 간 동의를 구하는 정형화된 말하기인 ‘남자 말하기’에 가까워 보인다.

우에노는 “차별에는 최소 세 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차별론』의 저자, 사토 유이의 정의를 경유해 성차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여성을 타자화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는 남성과 동일화하는 행위’. 3차 TV 토론 당시 후보자와 사회자를 포함한 행위자들은 모두 남자였다. 이준석의 발언은 마치 그 자리에 여성이 없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여성 신체에 대한 타자화·객체화를 하면서 “그것이 여성혐오가 아니냐”며 남성 사회의 동의를 얻으려는 행위로 보였다. 질문의 대상이었던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여성이었던들, 그렇게 직접적으로는 묻기는 어려웠으리라는 가정을 해보면 말이다.
이를 두고 권 후보가 답변을 거부한 것은, ‘남성 말하기’의 과정에 가담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누가 봐도 그 자체로 성폭력의 함의를 담고 있는 일을, 굳이 제3의 남성에게 확인 받으려는 행동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꾀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도구화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준석의 말하기에 즉각 동참하지 않고, 이후의 논평을 통해 “여성 혐오”라고 따로 짚은 것은 권영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처사였다.
이것이 얼마나 유해한 말하기였는지는, 이를 보고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해당 발언을 무분별하게 받아쓰는 언론, 그 발언이 온라인 상에서 ‘밈’처럼 치부되는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성 신체에 대한 위협이 그 자체로 일종의 우스개가 된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갈라치기에 앞장서 온 정치인이 TV 토론에 나와 실시간 성폭력을 하면서 타인에게 ‘여성 혐오’의 혐의를 씌우려는 것이, 그날 토론의 가장 역겨운 부분이었다.

또 하나의 여성혐오자, 유시민 작가의 발언을 보자. 그는 지난달 28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배우자 설난영 씨를 두고 “김 후보는 대학생 출신 노동자로서 ‘찐노동자’와 혼인한 거다. (중략) 설씨가 생각하기엔 ‘나하고는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다’”라며 “그런 남자와의 혼인을 통해서 내가 조금 더 고양됐다고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가 설씨의 인생에서는 갈 수가 없는 자리다. 영부인이 될 수도 있는 거다”라며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그런 뜻”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당연히, 우에노가 말한 ‘여성 멸시’다. 설난영이라는 여성 개인을 향한 멸시이자, 그가 말한 여성 ‘찐노동자’(대학생 출신이 아닌 노동자)에 대한 멸시이기도 하다. 논란이 일자 그는 “내재적 접근”이라며 해명하고 나섰는데, 스스로도 ‘찐노동자’라고 구분 지은 설난영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 것인지, 안다손 치더라도 본인이 무어라고 그의 생각을 함부로 추정하는지 되묻고 싶다. 그야말로 자신의 주관으로 세상을 바라본, 납작한 분석이었다.

선거 개표 결과 승자는 예상대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여성 혐오를 자행하던 이준석 후보도 전국적으로 8.34%의 득표율을 얻었다. 성별·연령별 분포를 알 수 있는 방송 3사 출구 조사 결과 20대 이하 남성이 가장 지지한 후보가 이준석(37.2%)이었으며, 2030 여성 10명 중 1명도 그를 지지한 것이 현실이었다. 이준석의 여성 혐오를 인정치 않거나, 혹은 인정하더라도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이들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2030 남성의 극우화 뿐 아니라 한국 정치 지형 전반이 우경화됐다는 점, 거기에 2030 여성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을 직시하게 하는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혐오 사회로 말미암아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이들과 선거 결과에 여전히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를 위해, 여성이 타자화, 객체화되지 않고 전면에 등장하는 정치를 위해, ‘여기 여성 혐오가 있었다’고 또박또박 적어 놓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준석의 발언 자체가 여성 혐오임을 언급한 권영국 후보와, 진영 논리에 입각한 여러 공격에도 불구하고 유시민 발언의 문제점을 명확히 짚은 한국여성의전화도 같이 적어둔다. 선거는 끝나도 우리의 삶은 끝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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