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질막까지 본딴 제품 판매
불법 유사성매매 논란 ‘체험방’도
“성 상품화·여성 폭력 정당화” 비판 계속
여당 지도부도 규제 필요성 제기
“더 늦기 전에 논의해야”
미국·영국·호주 등 해외에선 
‘아동·청소년 리얼돌’ 규제 추진

28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남로에서 리얼돌 허용 규탄 시위가 열렸다.
지난해 9월 2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 규탄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여성신문

‘성 상품화’ 비판을 받아온 여성을 본딴 성인용품 ‘리얼돌’ 규제 논의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리얼돌 산업이 ‘코로나 특수’를 맞고, 불법 성매매와 유사한 ‘리얼돌 체험방’이 전국에 생긴 데다 여성의 질막까지 본따 만든 제품이 시중에 판매돼 비판 여론이 높아져서다. 여당 지도부도 “여성이 극도로 성적 대상화되는 상황에서 리얼돌을 그저 성인용품으로 볼 수 있나. 더 늦기 전에 심층적 논의와 기준이 필요하다”며 규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코로나19 특수’ 맞은 리얼돌 산업
비대면·집콕 생활 속 성장세 지속 전망

리얼돌 산업은 ‘코로나 특수’ 업종으로 불린다. 지난 8월 10일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를 보면, 호주에선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3월 이후 리얼돌 주문이 35% 이상 늘었다. 중국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의 리얼돌 수출 주문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 이상 늘었고 유럽에서도 주문량이 폭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제조사들은 이 기회를 노리고 무료 체험 이벤트 등 공격적 마케팅에 나섰다. 글로벌 시장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속 ’비대면·집콕 생활‘이 리얼돌 등 섹스토이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지난 9월 보고서에서 리얼돌을 포함한 섹스토이 시장이 2020년~2027년까지 연평균 5.3%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비즈니스와이어도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섹스토이 시장이 2024년까지 연평균 6%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리얼돌 시장 규모 관련 데이터는 찾기 어렵지만, 국내 리얼돌 수입 건수는 지난 5년간 꾸준히 늘었고 유튜브 등 SNS엔 다양한 제품 후기가 매주 올라오고 있다.

SNS에선 다양한 리얼돌 제품 후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28일 기준 유튜브 검색 결과. ⓒ유튜브 화면 캡처
리얼돌의 본질은 ‘성 상품화’이자 ‘여성 지배’이며, 불법 유사성매매에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SNS에선 이러한 우려를 부르는 다양한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은 28일 기준 유튜브 검색 결과. ⓒ유튜브 화면 캡처

 

여성 질막까지 본딴 제품 판매에

불법 성매매에 가까운 체험방도 전국서 운영

“성 상품화·여성 폭력 정당화” 비판 계속돼

그러나 리얼돌의 본질은 ‘성 상품화’이자 ‘여성 폭력 정당화’라는 비판, 리얼돌이 불법 유사성매매에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현행법상 리얼돌의 형상에 대한 제한은 없다. 특정 인물이나 어린이를 본딴 리얼돌도 수입·제작·판매될 수 있어 인권 침해 위험이 있다. 여성의 질막을 재현한 리얼돌 제품도 시중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 불법 오피스텔 성매매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는 ‘리얼돌 체험방’이 전국에 86개에 달하고, 위법 사항 적발 사례도 25건에 달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리얼돌 논란이 뜨겁던 지난해 8월 아이즈(ize) 칼럼에서 “여성의 살아있는 신체성을 고도로 모사해냄으로써, 남성에게 여성 신체에 대한 일방적 통제 의지를 실현하는 듯한 환상을 부여하는 것이 리얼돌 생산, 판매, 소비의 주된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리얼돌이 “여성 신체를 남성의 삽입구나 배설그릇으로 인식하거나 남성의 욕망만을 유일한 욕망의 형태로 여기고 여성에 대한 일방성과 공격성을 정당화하고 강화할 수 있다”고도 했다. 여성 인권 권위자인 캐서린 매키넌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도 비슷한 경고를 했다. “리얼돌은 단순한 ‘섹스돌’과는 다르다. 누군가는 리얼돌이 성폭력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리얼돌을 단순한 성인용품로 여기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이미 ‘리얼돌이 인간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으나,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뒤집히며 리얼돌 수입의 길이 열렸다.

여성들은 반발해왔다. 같은 해 9월과 11월 여성 수백 명이 서울 도심에서 ‘리얼돌 금지’ 요구 시위를 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올해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대법원에 ‘성평등 걸림돌상’을 주며 야유했다. 지난 5월엔 FC서울이 K리그 경기 관중석에 ‘리얼돌 응원단’을 배치했다가 거센 비난에 사과하고 벌금 1억원을 물었다. 

최근 국회에서도 리얼돌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7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리얼돌 규제를 촉구하자,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산업의 영역이므로 관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도 “인터넷에서 접근할 수 있는 리얼돌 관련 업체에 대해 유해매체물 지정과 성인인증절차를 도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23일 제2차 리얼돌 전면 금지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구호선창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진혜민
2019년 11월 23일 서울 청계천로 남측에서 제2차 리얼돌 전면 금지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진혜민 기자

 

여당 지도부도 규제 필요성 제기 “더 늦기 전에 국회 논의해야”

“여성 성적 대상화 극심한데 단순 성인용품으로 볼 수 있나”

여당 지도부도 최근 이 문제를 언급하며 규제 필요성을 제기했다. 박성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더 늦기 전에 리얼돌과 관련한 심층적 논의와 기준이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라며 “여성이 극도로 성적 대상화되는 상황에서 리얼돌을 그저 성인용품이나 개인 영역의 하나로 봐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법과 규제를 통해 우리의 사회 질서를 만들어나갈 책무가 있는 국회에서 이러한 논의를 더 미룰 수 없고, 다각도에서 깊게 검토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리얼돌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씀’ 캡처
박성민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리얼돌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씀’ 캡처

 

미국·영국·호주는 ‘아동·청소년 리얼돌’ 규제 추진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도 규제 필요성 제기

미국·영국·호주 등은 아동·청소년의 모습을 본딴 리얼돌 규제를 도입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도 “해외 사례를 참조해 아동·청소년 형상의 리얼돌 제작·소지·판매·유통 시 규제 및 처벌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관련 입법 시도는 소수였다. 아동 형상의 성기구를 제작·수입하거나, 영리 목적으로 판매·전시·광고 또는 소지한 경우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지난해 8월 발의(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 대표발의)됐으나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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