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경의 미얀마 이야기]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중심이다
[조용경의 미얀마 이야기]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중심이다
  • 글·사진=조용경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 승인 2020.07.24 10:56
  • 수정 2020-07-24 15: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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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경의 미얀마 이야기]

 

강물조차도 다 말라 버렸네 / 우리 역사에서 가장 슬펐던 / 손에 닿은 모든 것이 다 황금빛이었는데 / 사랑했던 것들은 소멸해 버렸네 / 나는 만달레이 가는 길에 서 있다네”  

만달레이를 생각하면, 2000년에 영국 가수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불렀던 ‘만달레이 가는 길’(The Road to Mandalay) 이란 노래가 떠오른다만달레이(Mandalay)양곤에서 북쪽으로 700Km, 미얀마 국토의 정 중앙에 위치한, 300만 가까운 인구가 거주하는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이곳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미얀마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만달레이는 넓은 평원을 의미하는 범어의 만달라(mandala)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1857년 콘바웅 왕조의 민돈(Mindon) 왕이 수도였던 아마라푸라를 버리고 만달레이 힐 아래로 천도를 함으로써 콘바웅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857년으로부터 '2,400 년 전의 어느 날' 만달레이 힐에 오른 석가모니께서 눈 앞의 광활한 대지와 유유히 흐르는 에야와디 강을 바라 보며 2,400년 후에 이 곳에 거대한 도시가 건설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만달레이 시내에서 바라 본 만달레이 힐
만달레이 시내에서 바라 본 만달레이 힐

만달레이 지역은 오랜 기간 미얀마 역사의 중심지였다.

만달레이 왕궁의 중앙 타워
만달레이 왕궁의 중앙 타워

1857년 민돈 왕은 만달레이 힐 아래의 평원에 왕궁(Mandalay Palace)을 세우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그 후 영국과의 세 번째 전투에서 패한 띠보 왕이 영국군에 의해 인도로 끌려간 이후 콘바웅 왕조는 종막을 고했으며, 왕궁은 영국군 주지사의 관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의 기지로 이용되었고, 1945년 일본군이 퇴각하며 불을 지르는 바람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왕궁은 사방 2km의 정사각형 부지에 세웠는데, 면적은 413 헥타르이, 성벽은 붉은 별돌로 쌓았으며 한 면이 길이가 무려 2,032m에 달했다.  바깥 64m, 깊이 4.5m의 해자(垓子)가 둘러싸고 있다.


 

만달레이 왕궁과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해자
만달레이 왕궁과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해자

 

군사정권 시대에 복원을 했다고는 하나 어설프기 짝이 없는 건물 내부에는 민돈 왕과 띠보 왕, 그리고 그 가족들이 사용하던 마차와 집기, 그릇 류들이 일부 남아 있어서 썰렁한 모습이었다다만 왕궁을 둘러 싼 해자만이 콘바웅 왕조의 영고성쇠를 보여 주고 있다.

만달레이 힐은 해가 질 무렵에 오르는 것이 가장 좋다해발 230m의 만달레이 힐(Mandalay Hill)을 오르는 길은 차를 타고 오르는 길과, 남문에서 출발하여 1,729 계단을 걸어서 오르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에 필자는 걸어서 오르는 길을 택했다가장 힘들었던 일은 맨발로 올라야 한다는 점이었다. 절반 남짓 올랐을 때 나타난 멋들어진 뱌다익페(Byadaikpay) 파고다 아니었다면 계속 오르는 걸 포기하지 않았을까.

이 파고다에는 오른 손을 들어 언덕 아래의 왕궁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키가 큰 석가모니불상이 서 있다. 이 불상은 오래 전 만달레이에 오신 부처님께서 2,400 년 후에 거대한 도시가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만달레이 힐 정상의 타웅페 파고다는 무척 화려한 사찰이었는데, 최초로 미얀마를 통일한 바간 왕국의 아노라타 왕(King Anawratha)에 의해 1052년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만달레이 힐 정상의 수타웅페 파고다
만달레이 힐 정상의 수타웅페 파고다

이 사찰은 만달레이 전망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베란다 위에서는 만달레이의 동서남북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만달레이 힐 정상에서 바라 본 일몰
만달레이 힐 정상에서 바라 본 일몰

 

때마침 서산으로 넘어가는 저녁 해는 온 하늘과 산과 시가지, 그리고 멀리 보이는 에야와디 강까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만달레이 시내에는 다양한 불교 유적들이 산재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첫 손에 꼽아야 할 것 '마하무니(Mahamuni) 파고다'가 아닐까 싶다이 파고다에는 부처님의 생전의 모습과 꼭 같이 만들어졌다는 마하무니 불상(The Great Sage)이 안치되어 있다. 그래서  이곳은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 몬 주의 짜익티요 황금바위 사원과 함께 미얀마 불교 3대 성지로 손꼽히 있다.


마하무니 파고다의 불상
마하무니 파고다의 불상

 

높이3.8m  이 불상은 1784콘바웅 왕조의 보도파야 왕이 서부의 '아라칸 왕국'(Arakan)을 점령한 후, 그곳에 있던 마하무니 불상을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만달레이의 불교 유적들 가운데서 반드시 가 보아야 할 중요한 유적이 도 파고다(Kuthodaw Pagoda)이다.

왕궁의 북동쪽 끝에서 만달레이 힐 방향으로 500m 를 걸으면 나타나는, 수백 개의 하얀 탑들이 마치 거대한 침엽수림처럼 서 있는 사원이 바로 쿠토도 사원이다.

 

이 쿠토도 파고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책’(The World’s Largest Book)이라고 불리우는 쿠또도 석장경들이 안치되어 있다.

만달레이 힐 아래에 있는 쿠또도 파고다
만달레이 힐 아래에 있는 쿠또도 파고다

쿠또 (石藏經)민돈 왕이 수도를 천도한 다음, 1860년에 미얀마 전역에 있는 2,500여 명의 고승을 소집하여 약 6개월 동안에 걸쳐 729 의 대리석 판에 율장 111, 논장 208 , 경장 410판의 불경(Pitaka) 전체를 새기도록 했다. 그리고는 729 기의 흰색 쿠도 불탑을 세우고 석장경 판들을 그 안에 봉안하여 오늘날까지 보존해 왔는데, 2013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에 팔만대장경이 있다면 미얀마에는 코토도 석장경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쿠또도 석장경
쿠또도 석장경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달레이 남쪽 아마라푸라 지역의 떠웅떠만 호수 서쪽에 있는 마하간다용 수도원(Mahagandayon Monastery) 또한 반드시 들러 볼 일이다

마하간다용 수도원
마하간다용 수도원

이 수도원은 1914년에 의해 설립된, 승려 양성 기관으로, 7~8세의 동자승부터 시작하여 1,200 명의 젊은 스님들을 수용하여 교육하는, 미얀마 불교의 요람이다.

마하간다용 수도원의 탁발 행렬
마하간다용 수도원의 탁발 행렬

이곳은 수도원 그 자체보다도 매일 아침 오전 10시경부터 약 30분 간 수많은 스님들이 아침 공양을 위해 맨발로 식당까지 침묵행진을 하는 모습이 더 유명한 장소이기도 하다.  

만달레이 지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바로 아마라푸라 호수를 가로 지르는 '우베인 다리'(U Bein Bridge)이다우베인 다리는 만달레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의 명소로,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사진 작가들이 몰려드는 장소이다.  그들은 호수 위를 가로 지르는 멋진 나무다리를 배경으로 황금빛으로 이글거리는 석양 사진으로 담기 위해 이 우베인다리로 몰려 든다.

우베인 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다리다.
우베인 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다리다.

우베인 다리는 만달레이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옛 콘바웅 왕조의 왕궁이 있던 아마라푸라(Amarapura) 지역의 '’(Taung Tha Man) 호수를 가로 지르는 길이 1.2 km, 티크 목재로 만든 다리이다1851년에 완공되어 약 16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 다리는 현존하는 나무다리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 된 다리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의 아마라푸라 시장 '우베인'(U Bein) 호수를 멀리 돌아서 건너 편 마을로 탁발을 나가는 스님들과 마을 사람들 위해, 민돈 왕이 천도를 위해 궁궐을 해체할 때 나온 티크 목재 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일몰시간이 가까워지 수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로, 아래로 몰려 든다. 우베인 다리의 황홀한 일몰을 즐기려고 온 사람들이다수많은 사진작가들도 저마다 좋은 사진 포인트를 찾아 바쁘게 움직인다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서쪽하늘이 시나브로 오렌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그 황홀함을 찬탄하는 감탄사와 카메라 셔터소리가 어울러 멋진 화음을 연출한다.

 

필자도 부지러히 뛰어 다닌 덕분에 사진가들의 줄 한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운 좋게도 그곳이 그날의 최고 명당 자리였다그래서 나름 마음에 담고 있던, 다리 반대편의 고사목에 넘어가기 직전의 태양이 딱 걸려주는 기막힌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석양 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우베인 다리
석양 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우베인 다리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살짝 짙어진 ‘매직 아워’(magic hour)의 순간에 오히려 더 은은하고, 더 화려하게 사위를 물들이는 붉은 기운도 참 감동적이었다미얀마(버마)가 점차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해 가던 160여 년 전의 국가적 혼란기에, ‘아마라푸라라는 한 작은 도시의 시장이 자비의 마음으로 폐 목재를 가져다가 세운 나무 다리 하나!

'우베인 다리'가 긴 세월에 걸쳐 수많은 미얀마 인들의 생계에 도움을 주었으며, 외국 관광객들을 끌어 들여 가난한 후세 사람들의 소득 향상에도 도움을 주는 귀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이런 것이 바로 애민(愛民)의 정신이 만들어 낸, 진정한 사랑의 열매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길고 긴 만달레이의 하루가 저물었다.

만달레이에 갈 때마다, 미얀마에는 양곤도 있고, 수도인 네피도도 있지만, 모든 면에서 미얀마의 중심은 만달레이 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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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 2020-07-24 14:57:48
조용경은 미얀마군부의 전쟁범죄에 돈을 대고 있는, "더러운 회사" 리스트 상위에 있는 포스코 출신에 편협된 시각으로 미얀마를 바라보는 자다. 이런자의 글을 계속해서 포스팅하는 이유를 여성신문은 말해야한다. 수십년째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미얀마를, 민주화는 커녕 세계 최고의 난민 발생국인 미얀마대한 이야기를 이런자를 통해서 읽어야 하는 이유도 내놔라. 아디의 반론 포스팅으로 마치 중립적인양 독자를 기만하는 여성신문은 반성해라. 조용경의 글은 어디에서도 포스팅 되지 말아야 한다. 미얀마에서는 매일 소수민족 여성 수백, 수천명이 강간당하고 학살당하고 있고 어린아이 노약자들은 군부의 학대와 학살에 노출되어있다. 제정신인가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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