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중부의 도시 ‘바간’(Bagan)은 미얀마 불교의 중심인 파고다의 도시이다. 바간은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Borobudur) 유적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바간에는 11세기 중엽 아노라타(Anawratha) 왕이 미얀마 역사상 최초로 통일왕국을 이룩한 이후로 13세기 후반 몽고의 침입이 시작될 때까지 5000기를 넘는 불탑이 세워졌다.

바간에서 본 파고다의 숲 ©조용경
바간에서 본 파고다의 숲 ©조용경

 

그러나 긴 세월의 흐름에 의한 풍화작용과 몇 차례 지진으로 인해 지금은2500여 기 정도가 남아 있다. 이처럼 엄청난 파고다가 밀집한 ‘구 바간’(Old Bagan)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교유적의 세계적인 보고이다.

수많은 바간의 크고 아름다운 불교 사원을 대표하는 파고다가 ‘쉐지곤 파고다’(Shwezigon Pagoda)이다.

미얀마 파고다의 어머니 쉐지곤 파고다의 황금대탑. ©조용경
미얀마 파고다의 어머니 쉐지곤 파고다의 황금대탑. ©조용경

 

이 파고다는 아노라타 왕이 남부 몬 주에 있던 타똔(Thaton) 왕국을 정복한 기념으로 건축을 시작했고, 그의 아들인 쨘지타(Kyanzitta) 왕 때 완공된 바간 왕조 최초의 불교 건축물로 ‘바간의 국가유적 제1호’이다.

타똔은 미얀마 남동부 몬 주에 있던 작은 왕국으로, 기원 전 부처님께서 직접 방문하여 포교했다는 전설이 남아있을 정도로 독실한 불교국가였다. 최초로 미얀마를 통일한 아노라타 왕은 상좌부 불교를 건국 이념으로 만들기 위해 타똔의 ‘마누하’ 왕에게 불교 경전 양도를 요청했다.

마누하 왕이 이 요청을 거절하자 아노라타 왕은 군대를 끌고 가 타똔을 멸망시키고 마누하(Manuha) 왕을 바간으로 끌고와 유폐시켰다.

쉐지곤 파고다의 황금대탑 아래에는 그때 빼앗아 온 부처님의 치사리(치아)와 결골사리(무릎뼈)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쉐지곤’은 ‘황금 모래언덕’ 이라는 의미인데, 그 이후 건설된 수많은 미얀마 파고다의 모델이 되었고 ‘미얀마 파고다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정방형의 기단 위에 48m 높이로 세운 이 탑은 거대한 종을 세워놓은 모양이며, 탑의 내부는 빈 공간이 없이 메워져 있다. 이처럼 탑 내부를 꽉 채워서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탑을 제디(Zedi)라고 한다.

쉐지곤 파고다는 1975년의 대지진 때 돔의 윗부분이 손상을 입어서 보수를 했고, 2016년 8월 24일 규모 6.8의 강진이 일어났을 때 또다시 상부의 탑 부분이 손상을 입어서 복구를 했다고 한다.

구 바간 시내의 수많은 파고다들 사이에서 아라비안 나이트에나 나올 법한 멋지게 생긴 사원 하나가 신기루처럼 홀연히 모습을 드러 낸다.​

바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 이 ‘아난다 사원’(Ananda Phaya)이 아닐까 싶다.과거 미얀마(버마)를 식민통치 했던 영국에서도 아난다 사원을 ‘버마의 웨스터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of Burma) 이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이 사원은 위에서 보면 정방형에 가까운 모습인데, 한 면의 길이가 88m(290 피트)이며 높이는 51m나 되는 우람한 건축물이다.

아난다 사원 ©조용경
아난다 사원 ©조용경

 

아난다 사원은 바간 왕국의 짠지타(Kyanzittha, 1084~1113) 국왕 재임 중에 건설된 사원이다.

사원의 이름인 아난다(Ananda)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이며, 가장 핵심적인 제자 중의 하나였던 ‘아난다 존자’의 이름이다.​

아노라타 왕의 아들인 짠지타 왕 역시 불교를 확고한 국가운영이념으로 확립하고, 자신은 왕이자, 깨달은 자로 처신하면서 왕권을 과시하고, 불교의 교세를 떨치기 위해 이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아난다 사원의 건축과 관련하여 매우 가슴 아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짠지타 왕은 그의 보시를 받기 위해 히말라야의 산 속으로부터 찾아온 여덟 명의 스님을 만나 그들로부터 자신들이 거주하는 난다물라(Nanda Mula) 사원의 아름다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것과 꼭 같은 사원을 지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여덟 승려는 수 년에 걸쳐 아름다운 사원을 설계하고 건축을 했는데, 완공이 되자마자 짠지타 왕은 세상에 이 사원처럼 아름다운 사원이 더이상 지어져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여덟 스님을 살해해 버렸다.

스스로 부처가 되고자 했던 짠지타 왕의 이 슬픈 이야기는 권력의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아난다 사원 인근에 있는 높이 61m의 ‘탓빈뉴’(Thatbyinnyu) 사원은 바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유명하다. 탓빈뉴 사원은 1144년 알라웅시투 왕의 명에 의하여 세운 것으로 외벽에 석회를 발라서 색상도 밝고, 건축 형태도 아름다우며 주변 풍경과도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절이다.

땃빈뉴 사원의 웅장한 모습. ©조용경
땃빈뉴 사원의 웅장한 모습. ©조용경

 

땃빈뉴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부처님”이라는 의미인데, 건립 당시 건축에 소요되는 벽돌의 매수를 계산하기 위해 일만 장을 쌓을 때마다 한장 씩 모은 벽돌을 가지고 바로 옆에 있는 ‘탤리’라는 작은 파고다를 만들었다고 한다. 땃빈뉴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다.

담마얀지(Dhammayan Gyi) 사원은 바간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의 하나로, 자신의 아버지인 알라웅시뚜 왕과 형제들, 그리고 양어머니까지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나라투(Narathu) 왕이 자신의 죄를 참회하기 위해 건설한 사원이라고 한다.

담마얀지 사원의 웅장한 모습. ©조용경
담마얀지 사원의 웅장한 모습. ©조용경

 

나라투 왕은 참회의 절을 지으면서도 인부들에게 벽돌 사이에 바늘 하나도 들어갈 틈이 없이 튼튼하게 지으라고 명령을 내렸고, 이런 명령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 인부들을 가차없이 처형을 해버리는 포악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사원 건설이 진행되는 도중 나라투 왕이 양어머니의 나라인 인도에서 파견한 자객들에게 살해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었고, 인부들은 복수를 하기 위해 그의 시신을 안쪽에 넣고 통로를 막아버렸다고 한다. 연산군 스토리를 연상시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땃빈뉴 사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3층으로 된 높이 46m의 틸로민로 사원(Htilominlo Temple)도 중요한 사원이다. ‘틸로’는 미얀마어로 우산을 나타내며, ‘민로’는 ‘의지’라는 말로서, ‘틸로민로’는 ‘우산의 뜻대로’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절은 바간 왕국의 난타웅먀(Nantaungmya) 왕이 이곳에서 왕위 계승자로 지목된 것을 기념하여 1218년에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진의 여파로 보수 중인 틸로민로 사원. ©조용경
지진의 여파로 보수 중인 틸로민로 사원. ©조용경

 

난타웅먀(Nantaungmya) 왕의 선대 왕인 나라빠디시투 왕에게는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왕은 후계자 선정 문제로 고심을 하던 끝에 왕자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아 둘러서게 했다.

그리고는 왕의 상징인 흰 우산을 공중에 던져서 떨어진 우산 끝이 가리킨 막내 왕자가 왕위를 이어 받게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당시 나라빠디시투 왕에게는 총애하는 젊은 왕비가 있었고, 난타웅먀 왕은 그 왕비가 낳은 막내 아들이었다고 하니 과연 우산을 던져서 떨어지는 과정에 과연 어떤 계략은 없었을까.

1287년의 몽골 침략 당시 내부의 여러 사원들이 훼손되었으나, 이 틸로민로 사원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사원의 하나였는데, 2016년 5월의 지진으로 상층부의 일부가 훼손되어 내가 방문했던 2018년 봄에는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밖에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원들이 많이 있지만 내게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곳은 ‘쉐산도’(Shwesaandaw) 파고다이다.

미얀마 당국은 바간의 유적지 보호를 위해 2019년에 새로 전망대를 만들었는데, 그 이전까지는 바간에서 관광객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고 멋진 전망대가 바로 쉐산도 파고다의 4층이나 5층 테라스였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일출이나 일몰 속의 바간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쉐산도 파고다를 찾았다.

바간의 전망대 역할을 했던 쉐산도 파고다. ©조용경
바간의 전망대 역할을 했던 쉐산도 파고다. ©조용경

 

쉐산도 파고다는 11세기 중엽 최초로 미얀마 전국을 통일한 아노라타(Anawratha) 왕이 남부의 타똔 왕국을 정벌하고 그곳에서 전리품으로 가져 온 불발(佛髮)을 봉안하기 위해 건설한 파고다로 ‘위대한 아노라타의 시대’가 개막됐음을 대내외에 선포하기 위해 쉐지곤 파고다와 함께 세운 사원이기도 하다.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와 마찬가지로 이 사찰에도 불발(佛髮,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안치되어 있어서 ‘쉐산도’(황금의 불발)라고 불리운다.

바간 전망대가 건설된 이후 쉐산도 파고다에 올라가는 것이 금지가 되어 한편 다행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높은 테라스로 기어 올라가다시피 하여 아름다운 일출을 찍던 추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 본 황홀한 바간의 아침. ©조용경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 본 황홀한 바간의 아침. ©조용경

 

일출 촬영을 끝내고 좁은 회랑을 한 바퀴 돌며 내려다 본 바간은 그야말로 불탑으로 가득 찬 환상적인 도시였다. 말이 쉬워서 ‘미얀마의 경주’라고 얘기하지만, 뭔지 모르게, 그렇게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도시가 바간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 젖어서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지독한 회의가 엄습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때 쉐산도 파고다로 달려가 황홀한 바간의 새벽을 맞아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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