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관한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게 되면 받게 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미얀마에도 자랑할 만한 전통예술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분명히 있다. 미얀마에도 우리나라의 하회탈춤이나 양주별산대놀이 비슷한 전통인형극이 있고, 아악 비슷한 음악도 있다. 다만 미얀마가 영국 식민지 생활 60여 년, 그리고 가혹한 군사독재 시대 50년을 거치면서 최악의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다 보니 과거부터 내려오던 찬란한 문화의 기반이 상당 부분 쇠퇴하거나 무너져 버렸을 뿐이다.

미얀마 여행을 다니면서 큰 사찰이나 곳곳의 기념품 가게를 가보면, 기묘하게 생긴, 몸의 각 부분에 긴 끈을 매달고 있는 특이한 모양의 인형들을 볼 수 있다. 그냥 평범한 인형들은 아니다.

 

이 인형들은 ‘요욱떼’(Yokethay)라는, 미얀마 고유의 전통 인형극에 등장하는 꼭두각시인형(marionette)들이다. 요욱떼는 11세기 경부터 천년 가까운 긴 세월에 걸쳐 미얀마에서 생성, 발전되어 온 전통연극 ‘풰’(Pew)의 한 형태이다. 사람이 무대 뒤에 서서 줄을 가지고 조종하는 인형극인 요욱떼는 15세기에 살았던 라타사라(Rattasara)라는 수도승이 남긴 문헌에 최초로 등장했다 하니 확실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요욱떼는 1767년 ‘신뷰신’(Hsinbyushin) 왕이 태국의 아유타야 정벌을 마치고 아바(Ava)로 귀환한 시기에 오늘과 같은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신뷰신 왕의 아들 ‘싱구 민’(Shingu Min)이 왕이 된 후 1776년에 대궐 안에 문화부를 설치하고 대신인 ‘우쏘윈’(U Thaw Win)을 장관으로 임명하여 이 요욱떼를 집대성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양곤 커러웨익 극장식당의 요욱떼 공연. ©조용경
양곤 커러웨익 극장식당의 요욱떼 공연. ©조용경

 

내가 요욱떼 공연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2015년 봄, 양곤의 꺼러웨익 민속극장에서의 공연을 통해서였다. 뷔페 식 식사와 함께 약 1시간 반 동안 미얀마의 전통예술을 공연하는 과정에서, 공연 말미에 요욱떼의 한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몸의 각 부분을 줄로 연결한 인형(marionette)을 가지고 나온 공연자가 무대 뒤에 서서 인형을 조종하는 이 공연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다음 날 지인을 퉁해 수소문을 한 결과, 운 좋게도 다음 행선지였던 인레(Inlay) 호수 가의 냥쉐(Nyaung Shwe)에서 이 공연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로부터 3일째 되는 날 밤, 냥쉐에서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마친 후 가이드와 함께 ‘아웅 전통인형극장’(Aung Traditional Puppet Show)을 찾아 갔다. 이 극장은 냥쉐 시의 변두리 어두컴컴한 골목 안에 자리를 잡은, 고작해야 20명 정도의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초라한 소극장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공연 막간에 극장 앞에 서 있는 허름한 행색의 ‘아웅(Aung)’이라는 40대 중반의 사나이는 나름대로 요욱떼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자기 소신이 뚜렷한 인물이었다. 그와 인사를 나눈 다음, 2회 공연이 시작되기까지의 20여분의 시간 동안 요욱떼에 관해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다.

미얀마 요욱떼의 전승자인 아웅씨와 함께. ©조용경
미얀마 요욱떼의 전승자인 아웅씨와 함께. ©조용경

 

아웅씨는 1973년생으로, 4대 조 때부터 바간(Bagn) 지역에서 요욱떼 인형 제작과 공연을 가업으로 이어 왔으며, 8세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공연기법을 사사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엄격한 수련을 거쳐 15세 때부터 연출자(puppeteer)로서 30년 가까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고 했다. 10여 년 전에 바간을 떠나 냥쉐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겼으며,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이 있는데, 근래에 딸이 이 일에 관심이 많아서 아마도 자신의 뒤를 이어 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연 시간에 돼서 소극장 안으로 들어 갔다. 말이 소극장이지, 4인용 벤치 네 개와 1인용 의자 서너 개가 놓인 작은 공간이었다.

색상이 화려한 요욱떼 무대. ©조용경
색상이 화려한 요욱떼 무대. ©조용경

 

가로가 1.5m, 높이가 1m 정도의 무대에는 다양한 색의 커튼이 처져 있었는데, 무대의 규격과 등장하는 인형의 수, 심지어는 커튼의 색깔까지도 1776년 '우쏘윈' 대신에 의해 규정된 그대로라고 했다.

아마도 ‘우쏘윈’ 대신은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우리 국악의 악보를 집대성한 미얀마 판 ‘박연' 선생 정도 되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아웅씨는 240년 전 우쏘윈 대신이 쓴 몇 가지 요욱떼 대본의 줄거리는 힌두교 설화인 ’라마야나‘(Ramayana)나 ’자카타‘(Jakata)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라고 설명했다.

요욱떼에 등장하는 전체 인형의 수는 28개로 제한되어 있는데, 이들 28개의 인형이 전부 등장하는 오리지널 공연은 약 9시간이 소요되는 대작이라고 했다.

왕자 민따의 인형. ©조용경
왕자 민따의 인형. ©조용경

 

그래서 자신은 냥쉐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미얀마의 전통 예술인 ’요욱떼‘를 소개할 목적으로 5,000쨧(약 4,500원)씩을 받고 왕자 민따(Mintha), 공주 민따미(Minthamee), 광대(슈웨예), 연금술사 쪼지(Zaw Gyi), 도깨비(오거, Orge)와 말, 원숭이 등 대표적인 8개의 캐릭터만을 등장시키는 30분 짜리 공연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보고 있으려니 무대 뒤에서 인형의 각 부분마다 연결된 10~20여 개의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인형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작업은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

주인공인 왕자 민따의 인형에는 더 많은 줄이 매달려 있었고, 연금술사인 쪼지의 인형에는 단 몇 가닥의 줄만이 매어져 있었는데, 인형을 조정하는 아웅씨의 동작은 때로는 느릿느릿하다가, 때로는 온 몸을 던질 만큼 격렬해지기도 했다.

요욱떼의 연출은 이처럼 격렬한 동작을 필요로 한다. ©조용경
요욱떼의 연출은 이처럼 격렬한 동작을 필요로 한다. ©조용경

 

말 인형으로 연기를 하는 장면도 매우 동작이 빠르고 격렬했는데, 공연이 끝난 후 말 인형을 들어보니 무게가 족히 4~5Kg은 되는 것 같았다. 이처럼 무거운 인형들을 들고 격렬하게 움직이며 30분 간의 공연을 마친 아웅씨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 오듯이 흘러 내렸다. 요욱떼 공연에 있어서는 음악과 대사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하는데, 이 공연에서는 사전에 녹음된 음악과 대사를 틀어 주었다.

그러나 실제 공연에서는 8 개의 타악기로 구성된 ‘생왱’(Saing Waing)이라는 합주단이 시작 단계에서부터 연주를 통해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게 되며, 또 가수이기도 하고 변사(辯士)이기도 한 사람이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말로 관객들에게 극의 내용이나 대사를 전달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요욱떼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연출자이다. 연출자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28 개의 인형들과, 거기에 매달린 수많은 줄의 사용법을 모두 익혀야 하는, 수 년 간의 어렵고 고된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연출자가 때로 직접 대사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극의 대본 역시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니,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 했다.

오거라는 이름의 미얀마 도깨비 인형. ©조용경
오거라는 이름의 미얀마 도깨비 인형. ©조용경

 

 

요욱떼는 15세기에는 궁중 내에서 왕족이나 대신들만을 위해 공연되었으나, 19세기부터 서민들의 구경거리로 보편화되면서 국민들에게 도덕과 윤리, 종교의 계율 등을 교육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요욱떼는 근래에 접어 들면서, 급속도로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요즘은 만달레이나 양곤, 바간 등 몇몇 대도시에서 일부의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간신히 그 명맥만을 유지해가고 있다고 한다. 아웅 씨는 미얀마 인들의 역사와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는 요욱떼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문화 미디어들에 밀려 점차 미얀마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현상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아웅 씨의 가쁜 숨이 어느 정도 진정된 다음 ‘이 정도의 공연으로 생활이 되는가’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아웅씨는 “돈을 생각했으면 이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예술가는 돈이나 명예를 초월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 모습 뒤에 숨은 허탈함이 마음으로 전달돼 오는 듯 했다. 그러면서 “요즘 한국인들이 인레 호수를 관광하러 이곳에 많이 오는데, 이 요욱떼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얀마에는 광활한 자연과 다양한 불교유적, 그리고 온갖 인종과 상품이 뒤섞여 있는 재래시장 등 많은 볼거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잠시 시간을 내서 미얀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국민들의 삶의 정서를 담고 있는 전통 인형극 '요욱떼'를 감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아웅씨는 “예술가는 돈이나 명예를 초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경
아웅씨는 “예술가는 돈이나 명예를 초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경

 

그러면서 “요즘 한국인들이 인레 호수를 관광하러 이곳에 많이 오는데, 이 요욱떼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얀마에는 광활한 자연과 다양한 불교유적, 그리고 온갖 인종과 상품이 뒤섞여 있는 재래시장 등 많은 볼거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잠시 시간을 내서 미얀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국민들의 삶의 정서를 담고 있는 전통 인형극 '요욱떼'를 감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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