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국회부터 21년간 15개 법안 발의
번번히 국회 문턱 못 넘어
스토킹은 여전히 경범죄 취급
평균 범칙금 9만4000원 불과
”가해자 무겁게 처벌하고
피해자 보호 취지로 법 제정돼야”

동서식품의 차 음료 ‘맑은 티엔’ 광고가 길거리에서의 ‘몰카’와 온라인 스토킹을 미화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년 넘게 ‘스토킹 범죄 처벌’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단 한번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여성신문

‘스토킹범죄처벌법’은 15대 국회부터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지난 20대 국회까지 20년 넘게 폐기 수순을 밟아야 했다. 지난달 4일 10년간 스토킹을 당해온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스토킹범죄 처벌법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스토킹은 또 다른 범죄를 낳는다

지난 4월에는 여성 프로바둑기사를 스토킹한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이 구속됐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프로바둑기사 조혜연 9단을 스토킹한 혐의를 받는 40대 후반 남성 A씨를 협박 등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달 4일 경남 창원시에서는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4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최근 피해자 측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는 살해당하기 전까지 가해자로부터 10년 동안 스토킹에 시달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스토킹은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2013년 여성 교사를 상대로 한 살인사건, 2016년 여성을 상대로 한 가락동 살인사건, 2018년 여성을 상대로 한 왁싱숍 살인사건, 2020년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창원 살인사건이 있었다. 사건 피해자들은 모두 지속적인 스토킹에 시달리다 끝내 가해자로부터 살해당했다.

지난해 스토킹(지속적 괴롭힘) 범죄 검거 건수가 583건이었던 것으로 지난 1월 확인됐다. 201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많은 수치다. 

제대로 된 법안이 있었다면 스토킹으로 인한 여성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지난 4월 바둑기사 조혜연 9단이 올린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며 청와대 국민청원 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지난 4월 바둑기사 조혜연 9단이 올린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며 청와대 국민청원 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남인순·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스토킹처벌법’ 재발의

지난 1일 남인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스토킹처벌법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남 의원이 발의한 ‘스토킹처벌특례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스토킹 범죄에 대해 신고 받은 경찰은 즉시 현장에 나가 행위자에게 스토킹을 중단할 것을 통보하는 신고 시 조치를 하고, △검사의 청구와 판사의 결정에 의해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나 행위자를 구치소에 유치 등 잠정조치를 할 수 있으며, △피해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 신변안전조치를 취해야 하며, △피해자의 청구와 판사의 결정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등 피해자보호명령을 할 수 있고, △스토킹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전담조사제를 도입하고 전담재판부를 지정하여 재판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은 21대 국회 첫 법안으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은 21대 국회 첫 법안으로 스토킹처벌법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정 의원이 이번에 대표발의한 ‘스토킹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제정안)은 현행법상 스토킹을 ‘경범죄 처벌법’에 의거해 벌금 10만원 이하의 처벌밖에 할 수 없어 사실상 막을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마련한 법안이다. 

스토킹이 살인까지 이어지기도 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에서 지속적 괴롭힘의 가해자를 무겁게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발의한 것이다. 앞서 정 의원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스토킹처벌법을 대표발의했다.

정 의원은 여성신문과의 전화에서 “1호 법안 중 하나인 스토킹처벌법의 핵심은 스토킹의 범주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법률로서 규율하는 것이 1번”이라고 덧붙였다.

스토킹처벌법이 20년째 계류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우선은 국회가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며 “사소하다고 생각해 범죄로 인식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이번에는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의원님들운 찾아뵙고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여성의당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창원 여성 살해 사건은 스토킹범죄의 결말이었다. 21대 국회는 가장 먼저 스토킹범죄처벌법을 제장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여성의당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창원 여성 살해 사건은 스토킹범죄의 결말이었다. 21대 국회는 가장 먼저 스토킹범죄처벌법을 제장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젊은여성정치인연대 “‘스토킹범죄처벌법’, 21대 국회 최우선 과제로”

여성의당·기본소득당·더불어민주당 등 다양한 여성정치인으로 구성된 젊은여성정치인연대도 관련 법 제정 촉구에 목소리를 높였다.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는 젊은여성정치인연대가 스토킹범죄 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스토킹범죄처벌법의 쟁점에 대해 “지난번 제20대 국회에서 법사위 논의를 보면 ‘스토킹에 대해서 여러 판단들이 있다’라는 전문의원의 의견으로 결국에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라며 “이것을 명확하게 범죄라고 규정해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과 관련없는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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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가해자 대부분 경범죄 처벌…평균 범칙금 9만4천원

스토킹 가해자가 검거되더라도 대부분 ‘경범죄 처벌’로 가벼운 벌금형에서 그쳤다. 작년 스토킹 범죄로 처벌받은 사람이 낸 평균 범칙금은 9만4천원이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에 따르면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해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해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해 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국내와 달리 해외의 경우 1990년대 이미 스토킹을 범죄로 정의하고 처벌을 강화한 규정들을 마련해왔다. 독일은 2007년 형법 개정을 통해 ‘스토킹 범죄 처벌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온라인 스토킹, 피해자의 친인척 등을 통해 접촉을 시도하는 행위도 스토킹으로 간주해 처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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