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겐남', '테토녀'를 키워드로 입력한 인스타그램 검색 결과 모음. '에겐남', '테토녀'와 관련된 각종 성향 테스트와 성격 분류법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 인스타그램 캡쳐
'에겐남', '테토녀'를 키워드로 입력한 인스타그램 검색 결과 모음. '에겐남', '테토녀'와 관련된 각종 성향 테스트와 성격 분류법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 인스타그램 캡쳐

요즘 SNS를 보면 ‘테토남’과 ‘에겐녀’ 같은 말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테토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에겐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의미한다. 테토형은 직진형의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고, 에겐형은 감성적이고 섬세한 사람이라는 식이다. 유형을 확인해 주는 테스트도 넘쳐난다. 하지만 성격이나 감정, 인간관계처럼 복잡하고 유동적인 것들을 성호르몬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까? 밈(meme)으로 자기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자신을 틀에 가두게 만들지 않을까? 단순한 재미로 포장된 밈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과학으로 재포장된 고정관념

생물학적 차이를 성격이나 사회적 역할과 연결 짓는 시도는 오랜 역사를 갖는다. 대표적인 예로, 19세기에는 여성의 뇌가 남성보다 작다는 주장이 지능이나 사회 참여의 열등함을 설명하는 근거로 쓰였다. 당시 뇌 무게 측정 결과를 토대로 “여성은 지적 능력이 부족하므로 고등교육에 적합하지 않다”며 이는 여성 교육 기회를 제한하는 주요 논리로 작용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크지 않다. 2013년 미국 로체스터대학 헤리 레이스 교수 등은 남녀 1만3천301명을 대상으로 감성, 성적 특성, 내외향성 등 122개의 남녀 차이에 대해 분석했다. 그 결과 남녀의 심리적 특성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즉 남성은 더 이성적이고 여성은 더 감성적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지금 유행하는 ‘에겐-테토’ 역시 비과학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에겐-테토’ 테스트의 “헬스, 러닝, 등산을 좋아한다”, “감정보다는 논리로 말한다” 같은 문항은 얼핏 보면 성향을 파악하는 테스트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당신은 테스토스테론이 높은 사람’이라는 단순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호르몬 검사를 받은 것도 아니고, 성격 검사를 할 뿐인데 말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성격과 성향은 유전과 환경 등 복합적인 요소로 구성된다. 25개의 기존 연구를 메타 분석하여 테스토스테론 등 호르몬 수치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했다고 발표한 싱가포르경영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른바 '테토남'(왼쪽)과 '에겐남'(오른쪽)을 설명하는 일러스트 ⓒ인스타그램 캡처
이른바 '테토남'(왼쪽)과 '에겐남'(오른쪽)을 설명하는 일러스트 ⓒ인스타그램 캡처

평가받는 여성, 소비되는 남성

한편 이 밈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예컨대 테토녀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흔히 혐오의 대상으로 삼아온 ‘센 여자’의 이미지를 거부감 없이 소비하게 만들었고, 에겐남은 감성적이고 섬세한 남성을 이상적인 파트너로 부각시키면서 기존 남성성의 틀을 바꾸었다는 평도 있다. 누군가에겐 이 밈이 기존의 성역할을 유연하게 만들어 전복시키는 계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에겐이든 테토든 밈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프레임 안에 갇힌다. 새로운 언어처럼 보이지만 결국 또 다른 방식으로 성격과 정체성을 정리하고 호감과 비호감을 구분 짓는 기준을 학습한다. 예를 들어 에겐녀는 감정 표현이 많고 예민하며 조금 피곤한 여자로, 테토녀는 주도적이지만 종종 제멋대로 행동하는 여자로 평가받는다. 반면 테토남은 매력적인 리더로 에겐남은 요즘 보기 드문 다정한 남성으로 소비된다.

그리고 이 밈은 점점 관계 맺기 영역에도 침투한다. 최근 SNS에선 “연애는 테토남, 결혼은 에겐남?” 같은 말이 유행하고 있다. 테토녀인 글쓴이는 연애 상대는 테토남이었지만 결혼 상대는 에겐남이 맞는 것 같다는 고민도 등장한다. 밈은 더 이상 농담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관계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나 예외와 복잡함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은 단 하나의 유형으로 정리되지 않고 성격은 맥락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상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다. 연애나 결혼 같은 관계는 호르몬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 태도,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다. 하지만 밈은 다층성을 제거한다. 관계를 ‘테토냐, 에겐이냐’ 두 가지 선택지만 남기고 그 외의 가능성은 무시하게 만든다. 선택지가 적으면 고민도 적으니 밈은 더 쉽게 퍼지고 더 널리 믿어진다. 결국 우리는 관계조차 밈에 기대고 타인과의 만남을 유형 맞춤처럼 소비하게 된다.

밈을 넘어서 관계의 이야기로

결국 문제는 고정된 프레임이 우리를 얼마나 강력하게 지배하는가에 있다. 테토냐, 에겐이냐는 이분법은 단지 사람의 유형을 나누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성격은 바람직하고 어떤 성격은 불편하다는 판단을 은근히 내리게 한다. 그리고 이 판단은 연애와 결혼, 소비와 관계, 삶의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이분법은 가부장제가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 온, 남성은 이성·합리·주도·공적이고 여성은 감정·수용·연민·사적이라는 성역할 프레임을 익살스럽게 포장했을 뿐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으로부터 설명받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이런 밈은 더 빠르게 퍼지고 거리낌 없이 일상에 들어온다. 하지만 진짜 나를 설명하는 언어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번째 숫자 또는 호르몬의 이름이 아니라 내가 살아낸 삶 속에 있다. 밈이 우리를 웃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동시에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배제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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