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애인과 함께 시부야의 한 편의점에 들어선 순간, 시원한 냉기보다 반가웠던 건 무지개 깃발이었다. 평소 무지개 찾는 걸 좋아하던 우리 커플은 무지개 깃발을 발견하자마자 한걸음에 달려가선 “여기 무지개 있다!” 하고 방방 뛰었다. 그런데 그날의 시부야는 어딘가 조금 달랐다. 편의점뿐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던 나이키 매장의 로고가 무지개색으로 바뀌기도 했고, 맨션 베란다에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기도 했다. 한국에서라면 보기 낯선 풍경이 어색하면서도, 모두가 우리를 환대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27만명이 참여한 도쿄 프라이드
6월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Pride Month)’다. 올해 6월 7일부터 8일까지, 장장 이틀 동안 진행된 도쿄 프라이드 2025는 요요기 공원 안쪽에서 ‘Same Life, Same Lights’라는 슬로건과 함께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올해 도쿄 프라이드에는 무려 270개의 부스가 참가했고 27만3천여명이 참여했다.
도쿄 프라이드가 국내 퀴어문화축제와 다른 점 중 하나는 수많은 기업에서 부스 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부분이다. 내국인이 아니어도 알 법한 ‘NIKE’, ‘SONY’, ‘IKEA’ 등의 기업은 물론이거니와 일본 내에서도 유명하다고 알려진 ‘NHK’, ‘KIRIN’ 등이 부스 아래에서 기업 로고와 무지개가 접목된 유니폼을 입고 각자의 방식으로 환대와 연대의 목소리를 내주었다. 총 169개의 기관에서 도쿄 프라이드를 지원한 것만 봐도 그들이 이 축제에 얼마나 적극적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00년도에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퀴어문화축제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국내에서는 서울과 부산을 비롯해 총 8개의 도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진행중이다. 많은 이의 기대와 환호 속에서 이루어진 축제였으나 공교롭게도 이를 비난하는 이들의 목소리 역시 적지 않았다.
일례로 2018년에 진행된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는 개신교를 비롯한 혐오세력 단체들이 광장을 무단 점거하며 집기를 훼손하는 등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당시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축제 참가자 305명을 대상으로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신체적 폭력에 대해 위협받은 이가 응답자의 73%(225명)에 육박했다. 이들은 퀴어 정체성을 지닌 장애인을 휠체어에서 넘어뜨리려 했고 퀴어 여성의 가슴을 쥔 채 성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었으며 수차례 구타를 가해 기절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단편적인 사례만으로도 국내 퀴어문화축제가 얼마나 큰 위험과 혐오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어느덧 혐오세력과의 대립은 퀴어문화축제의 일환처럼 여겨지게 되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일본에서 진행된 도쿄 프라이드에서는 이같은 혐오세력을 마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의 퀴어는 왜 환대받지 못할까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먼저 일본에는 우리나라에 없을 PRIDE 지수가 존재한다. 이는 일본의 사단법인 Work with Pride가 “기업 및 단체의 틀을 넘어 LGBTQ+ 친화적인 일본 직장 만들기”를 목표로 개발한 지수로서, 2016 회계연도에 시작되어 매년 기업 및 단체가 LGBTQ+ 관련 활동 내용을 제출하도록 요청하고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단체에 상을 수여하는 제도가 운영중이다.
반면 한국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정치적 논란이 있는 만큼 기업에서도 회피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 결과,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기업 로고를 달고 후원한 국내 기업은 많지 않으며 LGBTQ+에 대한 지지 발언을 명시적으로 밝힌 기업 또한 전무한 수준이다. 이는 표면상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실질적으로는 사회적 반발을 회피하는 보수적 태도로 간주된다. 왜 두 나라 간에 이와 같은 차이가 존재하는가?
인식의 차이도 뚜렷하다. 2023년 일본의 FNN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71.0%가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했으며 반대는 19.6%에 그쳤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동성혼 법제화를 반대하는 측면이 더 많아지긴 하나 어느 나이대든 찬성 측이 더 많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연령대와 상관없이 동성혼 법제화를 긍정하는 이들이 많은 일본과 다르게 한국에서의 상황은 긍정적이지는 않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리서치에서 매년 1,000명에게 조사한 결과, 작년까지도 동성혼 법제화를 찬성하는 응답자는 34%밖에 되지 않았으며 반대는 그 이상인 50%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근거로는 전통적인 가족 제도의 붕괴 및 출생률 저하 등이 있을 것이다.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세상
그러나 마냥 암담하게만 볼 이유는 없다. 2012년, 러쉬코리아는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성소수자를 응원해왔으며 ‘핑크이력서’ 프로젝트라는 특별채용도 진행했다. 또한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질병관리청이 공식 부스를 설치했는데 이는 중앙행정기관에서 국내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최초의 사례다. 주류업체 OB브랜드의 대표 브랜드인 ‘Cass’가 퀴어문화축제를 응원하는 게시물과 함께 제품의 색을 무지개로 바꿔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혼인평등을 위한 목소리 역시 적지 않다. 사회단체 ‘모두의 결혼’에서는 꾸준히 혼인평등법을 위해 목소리 내고 있으며, 지난해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많은 개인과 단체가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과 권리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 비록 그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사랑이 이기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날이 오기까지 가부장제에 저항하며 끊임없이 투쟁을 외치고 다양한 사랑을 전하는 일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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