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서 경험할 수 있는 친밀감과 다정함이 그립다. 30대에 접어든 시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인간관계가 더는 확장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연애에서 경험할 수 있는 친밀감과 다정함이 그립다. 30대에 접어든 시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인간관계가 더는 확장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아 연애하고 싶다~! 연애에서 경험할 수 있는 친밀감과 다정함이 그립다. 30대에 접어든 시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인간관계가 더는 확장되지 않는다. 새로운 모임에 가입하자니 시간과 체력이 없다. 이러한 점들을 인정하고, 나는 각종 유명 데이팅 앱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웬걸, 데이팅 앱에는 연애하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하나 같이 공작새가 되어 자신의 성적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그 틈에서 갓 상경한 시골쥐가 된 기분으로 프로필을 꾸며갔다. 한두 번쯤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데이팅 앱에서 마주한 현실

그러나 세상은 고요했다. 놀라울 만큼 여성들은 나를 찾지 않았다. 대화 신청의 의미를 담은 하트를 연거푸 보내도, 돌아오는 하트가 없었다. 이따금 앱 알람이 울리면 그것은 빨리 상대를 찾아보라는 재촉 멘트였다. 그걸 몰라서 안 만나는 게 아닌데, 야속하기만 했다. 처음으로 대화 신청이 이루어진 것은 가입 후 나흘 뒤였다. 동년배의 사무직이었던 상대와 며칠 대화를 나눴고, “좋은 밤 되세요!”를 끝으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익숙한 좌절감이 찾아왔다.

더욱 좌절했던 것은 실제 오프라인 만남까지 이어진 자리에서다. 서로 데이팅 앱을 얼마나 해봤는지를 나누던 중, 상대가 받은 하트 숫자를 본 것이다. 하루에 어림잡아 일곱 개가 넘었다. 일주일에 많아야 2~3개의 하트를 받는 내 입장에서는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수치였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이 적은 편이라고 했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새삼 속상했다. 보통 여자들은 이 정도는 다 받는다는 상대의 말이 맴돌았다. 왜 내겐 나를 어필할 기회조차 빈곤한 것일까.

억하심정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밤, 문득 20대 80의 법칙이라는 밈이 떠올랐다. 상위 20%의 외모를 가진 남성이 80%의 여성을 만난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연신 화제가 됐던 게시글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머지 80%의 남성의 속하는 것일까? 두려움과 막막함이 엄습해왔다. 인터넷을 떠도는 신조어 중에는 믹타우(MGTOW)라는 말도 있었다. Men going their own way의 줄임말로, ‘여성과 페미니즘으로 타락한’ 이 시대에서 남성이 여성을 배제한 채 자신만의 독자적인 생존 방법을 모색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작금의 연애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밤이었다

2023년 8월 기준 주요 데이팅앱 사용자 성별 비중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제공
2023년 8월 기준 주요 데이팅앱 사용자 성별 비중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제공

여자가 연애하기 편하다고?

하지만 데이팅앱에서 여성이 하트를 더 많이 받는 것은 데이팅앱에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여성의 유입이 없다면, 남성 이용자는 떠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인지 최근 한 데이팅 앱 회사에서 가짜 여성 계정을 만들어 남성 회원들의 유료 서비스 결제를 유도한 사건이 밝혀진 적도  있다. 그런데 왜 데이팅 앱에는 여성이 이토록 적은 것일까?

나와 오프라인 만남을 가졌던 A씨는 이에 대한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하트가 많이 오는 건 맞죠. 그런데 문제는 그 하트를 보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예요.”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놀라웠다. 대뜸 “나랑 잘래?”라고 말을 걸어오고, 외모 평가를 넘어 모욕적인 언사를 쏘아붙이고 대화를 차단하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연락처를 물어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데이팅 앱을 써본 지인 B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여성을 하룻밤 상대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연애하기 괜찮은 사람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더 연애하기 편한 상황이라고 단정지어도 될까. 대화 요청 하트에 응답하는 순간부터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데 말이다. 또 B는 사진을 공개할 수밖에 없는 데이팅 앱의 특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프로필 사진이 노출되어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의 재료로 쓰이지 않을지 우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가 불법 합성물을 소비, 제작하는 사람인지 알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 실존적인 안전의 문제였다. 여성은 대화도중 상대가 별안간 버럭하며 화를 내지는 않을지, 일방적으로 잠자리를 요구해오지는 않을지, 폭력적인 사람은 아닐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를 두고 마치 여성이 연애에서 특권과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듯 여기는 관점은 틀렸다.

ⓒ픽사베이
좋은 연애가 좋은 소통에서 탄생한다는 건 진리다. 그것은 상대의 삶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내가 만나는 상대가 어떤 삶을 사는지 알아야 연애도 사랑도 할 것 아닌가ⓒ픽사베이

이런 현실을 두고, 20대 80의 법칙을 이야기하거나 믹타우를 선언하는 것이 해법일까? ‘여성은 잘생긴 남자라면 쪼르르 달려갈 것’이라는 사고는 어떻게 성립되는 걸까? 이는 마치 여성은 ‘가방을 밝힌다’, ‘여자는 남편이 아니라 월급을 기다린다’는 오래된 가부장제의 여성혐오를 보여주는 것 같다. 어떤 이유를 붙인다 한들 여성에 대한 심각한 편견일 뿐이다. 

좋은 연애가 좋은 소통에서 탄생한다는 건 진리다. 그것은 상대의 삶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내가 만나는 상대가 어떤 삶을 사는지 알아야 연애도 사랑도 할 것 아닌가

그럼, 이제 다정함과 존중을 이야기해볼까?

결국 나는 데이팅 앱을 통해 애인을 만났다. 연애가 시작되기 전, 첫 만남에서 나는 왜 나와 만나보기를 선택했는지 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소개글을 보니 말이 통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 말이 흥미로웠던 나는 어떤 점에서 말이 통할거라 보았는지 재차 물었다. 이번의 대답 역시 간결했다. “다정함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고 써두셨잖아요.” 어느 책 속에서 만났던 그 문장은, 진짜였다. 다정함은 우리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연애에서의 다정함과 존중을 페미니즘에서 배웠다.

연애하려고,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페미니즘 하느냐는 조소와 손가락질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들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남성중심 사회가 만드는 성차별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해로운 남성성에 대한 해체라는 우리의 기조는 단 한번도 바뀐적이 없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위선이라도 떨지 그래?”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에 반대하는 것을 정체성으로 삼는 것보다야 위선이라도 떠는 게 낫다. 위선을 떨지 않겠다며 ‘냉소와 함께 성차별을 좌시하는’ 평범한 악을 선택하느니 말이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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