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트랄랄레로 트랄랄라’하는 정체모를 외계어를 읊조리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이는 생성형 AI로 만든 조잡한 캐릭터 밈이다. 이 외에도 비슷한 수십개 캐릭터가 있고 저마다의 이런저런 서사가 있는데, 처음보면 이게 대체 뭐지 싶다. 이른바 ‘브레인롯(Brainrot)’ 밈으로 말그대로 뇌가 썩어버릴 것 같은 혹은 썩은 뇌를 가지고 진지하지 않게 낄낄거리며 노는 게 핵심이다. 원래 밈과 농담은 설명할수록 멀어질 따름이라 그냥 ‘그런 게 있군’ 하면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다만 그 기저에 깔린 특유의 무심함, 진지하지 않음이 마냥 낯설지 않다.
밈도 정치도 가볍게 가볍게
최근 한 대학 축제 주점이 논란에 휩싸였다. 주점 메뉴판에 ‘계엄, 때렸수다’라는 제목과 함께 각종 정치인의 사진과 이름을 활용한 메뉴로 네이밍 했다가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를 희화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럴 수도 있지, 하다가도 이상한 기시감이 드는 건 이른바 ‘일베’로 이야기되는 커뮤니티에서 정치인을 활용한 냉소와 조롱의 언어가 겹쳐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인, 권력자를 풍자 대상 삼는 거야, 조선시대부터 이어지던 유구한 역사고, 표현의 자유로 보장되어야할 권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정치를 ‘밈’으로 소비하는 태도는 조금 다르다.

정치를 밈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뚜렷하게 비판하고자 하는 바, 관철하고자 하는 어떤 가치 없이,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유희거리 삼는다. 학교에서, 또래 남성들 사이에서 이 조롱, 냉소하는 태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정 정치인을 조롱하거나 혐오적인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경우도 있다. 이에 문제를 지적하면 ‘진지충’ 칭호가 붙으며 찌질하게 군다는 낙인이 찍힌다. 종종 이를 보며 ‘요새 애들이 극우화 됐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막상 물어보면 그들이 어떤 정치 세력이나 가치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냉소한다. 어떤 가치관을 갖거나 진지하게 목소리 내는 건 우습고 유치한 일이라는 듯, 마치 모든 것을 관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척한다.
어떤 정치인들은 이런 냉소를 적극 활용한다. 지난 대선, 윤석열과 이준석이 그랬다. 그들은 SNS에 어떤 이야기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일곱 글자를 남기며 갈등을 촉발하고 뒤로 빠졌다. 이번 대선에서 한 후보가 ‘군 가산점제 도입’을 다시 가져온 것도 마찬가지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 제대로 보상이 되지도 않으면서 차별만 양산하는 문제로 이미 위헌이 된 제도를 다시 불러오는 까닭은 진지하게 남성의 삶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밈처럼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되던 말, 이슈, 감정을 불러일으켜 갈등을 만들고 상대를 탓하게 하며 지지층과 표를 결집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지난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친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청년 남성의 삶에서 달라진 것은 ‘이대남’이라는 정체불명의 호칭 하나뿐이었다.

진지하게, 정치 이야기해 볼 수 없을까?
정치는 자원을 분배하고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지, 냉소의 태도로 누군가를 조롱하고 짓밟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선거 때마다 표를 호소하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단지 직업 정치인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 정치인을 만든 우리 사회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진지하게 정치 얘기 해보자. 어떤 정치인들이 계속 젠더’갈등’을 촉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서로 우정, 사랑 등 다양한 모습으로 관계 맺고자 한다. 오직 정치에서, 그것도 나쁜 정치에서 이 둘의 배타성을 강조하며 여성 지원 정책이 남성의 자원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 호도한다.
불안을 자극하는 정치인의 말을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가, 다양성을 보장하는 사회가 과연 남성에게 불리할까? 흑인 차별이 심한 나라일수록 아시안을 향한 차별과 폭력 역시 더 심하기 마련이다. 여성의 월경 휴가에 무관심한 곳은 남성의 육아휴직과 노동자의 아프면 쉴 권리에도 무관심한 곳일 가능성이 크다.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사회일수록 남성을 옥죄는 고정관념과 사회적 압박도 비례해 커진다. 조롱과 냉소는 하나도 쿨하지 않고 정치에도, 자신의 삶에 도움되지 않는다.
기왕 진지해진 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수는 없을까?
여성에게 좋은 것이 남성에게도 대체로 좋지만,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 게 남성의 삶과 대단히 밀접한 관련이 없어도, 심지어 지금까지 누리던 특권 일부를 내려놓거나 다분히 불편해질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함께 해볼 수는 없을까? 인간이란 이기적이고 나약한 존재라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꾸준히 부당한 일에 목소리 내고 인간의 권리와 정의를 더 너르게 확장해 가는 역사를 가진 존재이기도 하니까.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고 조력한 일본인, 흑인 인권에 목소리 내는 백인 운동가, 동물, 생태환경을 위해 싸우는 환경주의자 등. 진지하고 진심인 캐릭터와 서사는 언제 어디에서나 늘 꾸준히 사랑 받아왔다. 민주주의 위기에서 어렵게 되찾은 조기 대선이다. 냉소는 하나도 멋지지 않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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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