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성교육 강사’로 일하다 보면 보람찬 일부터 무시무시한 민원까지 다채로운 사건들이 즐비하다. 대개 성교육이라 하면 초등학생이나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만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학생이나 어린이 양육자, 학교 선생님 등 그 대상은 생각보다 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대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남성 청소년’과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남중 남고에 가게 되면 귀에 꽂히는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섹스(Sex)’다. 복도에 들어서면 저 끝에서 한 청소년이 멀리 외친다. “섹스!” 곧 약속이라도 한 듯 교실 안에서 호응하는 외침들이 이어진다. “섹스!” 영문을 알 수 없는 외침. 이유를 물으니 단순한 답변이 돌아온다. “그냥요. 웃기잖아요.”
‘섹스’라는 영어 단어는 ‘성관계’ 외에도 ‘생물학적 성’이라는 뜻도 있는데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섹스’에 대해 다들 호기심이 많은지 등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답은 간단했다. 그저 ‘재미’로 사용하는 것이고, 사실 그렇게까지 잘 알지 못한다는 것.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이들은 ‘섹스’뿐만 아니라, ‘강간’과 ‘임신’ 등 범죄에 해당하거나 함부로 가볍게 사용하지 않아야 할 표현들 역시 재미삼아 사용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그런 표현을 ‘재미’로 접했냐고 묻자 이어지는 답 역시 간단했다. “인터넷.”

또 한 번은 ‘연애’를 주제로 한 수업에서, 나는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또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똑똑한’, ‘다정한’ 등 나열된 형용사들 중 몇 가지를 선택해보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를 묻는 질문에서는 예상대로 ‘귀여운’, ‘섹시한’ 등의 형용사가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이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서는 ‘유쾌한’이나 ‘자상한’ 등의 선택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것은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답변이었다. 장난기 가득했던 아이들의 눈빛은 금세 진지해져 있었다. “연애는 꿈같은 일이에요. 그런 걸 생각하기에는 지금 자유롭지 않잖아요.”
두 가지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일깨워준다. 청소년에게는 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타인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제대로 된 ‘성교육’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인간의 당연한 욕구이자 권리와도 연결된다. 학교가 금욕적 성교육에 매몰돼 청소년에게 자유롭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을 때, 교육이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알려주지 못하고 그저 손 놓고 있을 때, 포르노와 불법의 세계가 그 공백을 파고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게 성교육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차별과 혐오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학교에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교육은 사춘기나 생명 탄생에 대해서만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다. 성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기반으로,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너의 몸과 마음에 대해 배우고 나아가 함께 살아가는 법, 즉 건강하고 평등하게 관계 맺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성교육이다. 여기에서 ‘포괄적 성교육’ 개념이 등장한다.
‘포괄적 성교육’은 유네스코가 제작한 성교육 가이드라인으로, 모든 개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및 차별 금지와 같은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된 성교육이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의사결정 능력과 효과적인 의사소통 및 협상 능력 등 건강한 선택을 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포괄적 성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런데 여전히 성교육에 대한 제도는 미비하고 지원은 부족하다. 심지어 일부 정치인이나 특정 종교 단체에서는 성교육에 대해 거짓된 정보를 전파하고 사실을 왜곡한다. 대부분이 성교육에 대한 이해 없이 오로지 어른의 욕망과 닫힌 논리를 교육에다 내던지는 식이다. 또한 성교육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까지 서슴없이 발산한다. 성교육은 동성애든 이성애든 조장할 수가 없다. 이러한 공격들은 청소년의 교육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일이고, 나아가 학교와 강사 그리고 학생들이 함께 더 나은 성교육을 만들어가는 데 가장 큰 방해물이 될 뿐이다.

하지만 더 절망적인 현실은,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 등 가장 시급한 성교육들마저 현재는 예산이 사라져 진행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곧 대한민국의 가장 큰 선거인 대통령 선거가 있다. 성평등 정책이 사라진 선거라는 평가도 있지만, 우리가 불씨를 되살리면 될 일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문화와 관계 맺기를 위해 함께 제안하자. 지역구의 국회의원도 좋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도 좋다. 이번 대선의 후보들이 진심으로 우리의 미래를 염려하고 청소년을 위한다면, 포괄적 성교육을 법제화하고 예산과 지원을 폭넓게 마련해 학교에서 더 나은 성교육이 자리잡게 하는 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거라 믿는다.
함께 외치자. 우리에겐 더욱 안전하고 평등한 교실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며, 타인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성교육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의 시선을 담은 ‘포괄적 성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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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