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기획] 페미니스트 교사 좌담회下
지혜복·최현희·가넷 3인

지난해 딥페이크 성범죄는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가해자 10명 중 8명은 10대였다는 점에서,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학교에서 성평등을 외쳤던 교사들은 성평등 교육이 단순히 교과 과정에 포함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성평등 교육은 매우 중요한 의제인데 학교가 이러한 의제들을 생산적으로 함께 다루고 숙의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역량이 없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공간으로써 학교가 민주주의적인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 이것도 성평등 교육의 실천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다.”
이들은 학교의 비민주적이고 관료적인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학생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구조가 갖춰질 때, 성평등 교육은 실현 가능하고 딥페이크 성범죄와 같은 문제도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 세 명의 교사가 마주 앉았다. 교사 지혜복, 최현희, 그리고 가넷. 성평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민원에 시달리고,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이유로 해임과 압박을 받은 이들이다. (☞지난 기사 : 그 많던 페미니스트 교사는 어디로 갔을까?)

교실 안으로 들어온 혐오,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
“계집신조” “앙 기모띠” “게이냐”
교실 안을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이다. 가넷은 말한다. “학생들이 접하는 세상은 이미 온라인에 있다. 유튜브, 틱톡, 디스코드, 인스타그램 등에서 아무런 필터 없이 혐오 표현을 보고 접하고 배운다.”
이런 배경에서 학생들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된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2024년 학교폭력 1차 실태조사’ 결과, 초·중·고교생 가운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도 해마다 늘고 있다.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까지 검거된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10명 중 8명 이상(83.7%)은 10대였다.
지혜복 교사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부재한 교육’이라고 본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언론에선 조용해졌지만, 사라진 게 아니다. 포괄적 성교육이 없다면 앞으로 다른 형태의 N번방, 더 은밀한 디지털 성폭력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는 10대들의 손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포괄적 성교육은 유네스코가 제작한 성교육 가이드라인으로, 모든 개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및 차별 금지와 같은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된 성교육이다.
“교육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지만, 문제의 빈도는 줄일 수 있다.” 가넷은 성평등 교육을 소방안전 교육에 비유했다. "모든 화재를 막을 수는 없지만, 소방안전교육을 통해 학생이 불장난을 피할 확률은 높아진다. 혐오도 마찬가지예요. 가해가 뭔지, 혐오가 뭔지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달라진다."

“마이크로 페미니즘, 교실의 일상을 바꾸자”
하지만 당장 포괄적 성교육을 도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들이 택한 방식은 ‘마이크로 페미니즘(Micro Feminism·일상에서의 성 불평등에 맞서 작은 저항을 실천하는 행동)’이다. 정규화된 공식 교육 과정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하는 변화다.
가넷은 담임을 맡으면 성 고정관념 없이 학급 업무를 분배했다고 설명했다. “보통 서기는 여학생이 담당한다. 그런데 글씨를 잘 쓰는 남학생이 있으면 그 친구에게 서기를 맡긴다. 누가 성소수자 혐오 표현을 쓰면,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정말 크다.”
이들의 실천은 결코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작은 실천들은 다른 시민들과 교사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최 교사는 블로그에 수업 사례를 기록한다. 혐오 표현을 왜 쓰면 안 되는지, 혐오의 역사와 맥락을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한 ‘앙기모띠 수업’이라는 제목의 글은 조회수 4만 5천회를 기록했다. “밤낮으로 전국을 돌며 성평등 교육 연수를 다녀도 그렇게 많은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거다. 성평등 수업에 대한 글의 조회수는 유독 높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 주제에 관심이 많다고 느낀다.”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성평등 교육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페미니스트 교사 한 명의 실천으로 성평등 교육이 멈춰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학교가 구조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사는 학교 안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각 학교마다 적어도 한 명 이상의 페미니스트 교사가 존재한다고 본다. 문제는 단순히 페미니즘 백래시만이 아니라 학교 안에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것에도 있다”
“지금 시대에서 성평등 교육은 매우 중요한 의제인데 학교가 이러한 의제들을 생산적으로 함께 다루고 숙의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역량이 없다. 그러니 페미니스트 교사의 실천이 각자의 교실을 넘어서지 못한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공간으로서 학교가 민주주의적인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 이것도 성평등 교육의 실천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라고 그는 설명했다.
지 교사는 “입시 경쟁이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가치들을 모두 블랙홀처럼 빨아 먹고 있다. 이런 구조 안에서 학교는 당장 영어나 수학 수업을 한 교과 늘리는 게 우선이다. 애초에 성평등 교육을 넣을 교육 과정의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치지 말고 같이 가자”
하지만 학교 안에서의 성평등 실천은 여전히 어려운 현실이다. “유별나다”, “극단적이다.” 세 교사 모두 들어본 말이다. 그렇기에 계속 할 힘을 얻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는 이를 연대에서 찾고, 누군가는 교육자로서의 본령에서 찾는다. 가넷은 교원평가에 적힌 성희롱 피해를 공론화했을 때 전국의 페미니스트 교사들에게 연대와 응원을 받았고, 그 덕분에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교권보호위원회를 신청해야 한다고 설명해주면서, 양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얼굴도 모르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페미니스트 교사들에게 정말 큰 연대와 응원을 받았다.”
최 교사는 페미니스트 교사들이 느끼는 부채감과 무력감을 공감한다면서도 학생을 보자고 했다. “교사라면 사회의 큰 문제에 압도되기보다 지금 오늘 내가 만나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보며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 그게 교사의 일이다.”
그는 “요즘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 교육 운동은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교사가 교실에서 지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교사가 교실에서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학교에서 동료들을 설득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학교가 보다 민주적으로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한 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세 교사는 서로 포옹하며 말했다. “지치지 말고, 같이 가자. 즐겁게 오래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