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6개국·지역의 수사상황 ⓒ일본 경찰청이 웹사이트에 배포한 ‘사이버 가디언 작전’ 자료 갈무리
6개국·지역의 수사상황 ⓒ일본 경찰청이 웹사이트에 배포한 ‘사이버 가디언 작전’ 자료 갈무리

최근 두 눈을 의심케 하는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경찰이 일본, 말레이시아 등 6개국 경찰과의 특별 단속을 통해 아동성착취물 범죄자 435명을 검거했는데, 그중 한국인이 374명으로 85.9%에 달했다. 이중 절반 이상은 10대 청소년이었다. 범죄는 줄지 않고, 범인은 점점 어려졌다. 적색경보가 울린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한국 청소년이 아동성착취물 범죄에 가담했을까? 그 원인을 찾기 위해선, 불편하지만 한국 사회의 성문화를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성(性)을 이야기하기 꺼리며 공론장에서 치워버린다. 다른 한편으로는 ‘밤문화’라는 이름하에 성매매 전단지가 길거리에 뿌려지고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법촬영물과 허위영상물이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청소년들은 성을 배우기보다는 훔쳐보면서 자란다.

이렇게 문제 많은 사회에서 청소년은 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불법영상물과 성매매 전단지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서다. “여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야” “여자는 이렇게 대해도 돼”와 따위의 메시지다. 또 별다른 노력 없이 불법촬영물, 불법영상물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기에 “다 이렇게 사는 구나‘라며 일종의 도덕적 판단의 스위치를 끄게 된다. 결국 성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는 청소년들이 가장 손쉽게 접하는 성에 대한 정보는 왜곡된 이미지와 폭력적인 판타지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앞에서 ‘여성혐오폭력 규탄 공동행동’ 주최로 ‘딥페이크 성착취 엄벌촉구 시위’가 열렸다. ⓒ김세원 기자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앞에서 ‘여성혐오폭력 규탄 공동행동’ 주최로 ‘딥페이크 성착취 엄벌촉구 시위’가 열렸다. ⓒ김세원 기자

그런데도 학교는 여전히 ‘피임은 이렇게 해요’ 수준에 머무르고, 가정에서는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자’며 쉬쉬하다보니 성적 욕망, 몸의 변화, 타인과 관계 맺는 법에 대해 배울 기회가 전혀 없다. 결국 청소년들은 익명성과 자극이 난무하는 폐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속에서 성을 배운다. 공유되는 정보와 자료라고 해봐야 대부분 남성이 여성을 성적인 도구로 삼고, 남성이 어떻게 여성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지에 관련된 것이다. 사전에 성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특별히 학습한 바 없으니, 옳고 그름 또는 자신과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분간하고 평가할 재간이 없다. 이 과정은 유해한 남성문화의 답습 과정이기도 하다.

한국의 왜곡된 성문화가 만든 세태

이번 사건 역시 성폭력 범죄의 특성을 반영한다. 성범죄는 욕망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성폭력은 약자를 향한다.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고, 제대로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서는 대상에게 이뤄진다. 미성년자 성착취,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만 보아도 그렇다. 성인이 청소년을 유인하고 착취한다. 이번 사건에서는 대상이 바뀌어 청소년이 다른 청소년 또는 아동을 착취했을 뿐이다. 왜 이들은 점점 더 어린 존재를 타깃으로 삼았을까? ‘소아성애’와 같이 단순 병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자기 우위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 거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법합성물(딥페이크)가 발견된 학교가 붉은 화살표로 표시돼 있다. ⓒ‘딥페이크 지도(deepfakemap)’ 캡쳐
불법합성물(딥페이크)가 발견된 학교가 붉은 화살표로 표시돼 있다. ⓒ‘딥페이크 지도(deepfakemap)’ 캡쳐

딥페이크를 악용한 이번 범죄는 남성문화와도 연결된다. 그 안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딥페이크 성범죄 겹지인방’, ‘가족능욕방’ 등으로 이어졌다. 단체 대화방에서 각자 만든 범죄물을 돌려보며, 공유되는 범죄물 폭력적이고 자극적일수록 ‘형 진짜 미쳤다’고 칭송한다. 그렇게 죄의식이 사라지고 성범죄는 일상이 됐다. 반면 여학생들의 일상은 공포에 물든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학생의 85.9%는 딥페이크 불법영상물 유포와 확산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지난 17일 시민단체는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교육청은 성평등, 성교육 도서 검열을 중단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지난 17일 시민단체는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교육청은 성평등, 성교육 도서 검열을 중단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흔들흔들’ 위태로운 성평등 교육의 자리

“어떻게 이런 일이?” 라고 물을 게 아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성교육은 제자리걸음이고, 성평등 교육 예산은 삭감됐다. 성교육이 설 자리를 잃게 된 배경에는 보수 개신교들의 민원이 있다. 이를 지나가는 소음 정도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2023년도부터 보수 개신교의 민원 공격으로 성교육·성평등 도서들은 공공도서관에서 폐기되고 있다. 사실 이들의 공격은 더 오래됐다. 2014년부터 보수 개신교 및 극우세력은 ‘동성애 조장’, ‘페미니즘 세뇌’, ‘낙태 조장’ 등의 말도 안되는 이유로 청소년성문화센터를 공격해왔다. 지자체와 학교 등 유관기관을 향한 민원 공격에 결국 성교육 현장에서 ‘성평등’에 대한 내용은 빠졌다. 결국 교실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피임교육이나 성폭력 예방교육에 불과하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어린 가해자를 조우하게 됐다.

이제는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의무 성교육 15시간, 그걸 좀 더 실질적으로 바꾸자. 단순 지식 전달을 넘어서, 성별 고정관념이 어떻게 차별로 이어지는지, 남성성과 권력이 어떻게 성폭력을 생산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특히 왜곡된 남성문화에 노출되기 쉬운 남자 청소년을 위한 특화 교육도 필요하다. 또래 문화와 연애, 관계,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성은 금기나 죄가 아니라, 더 나은 삶과 관계를 위한 ‘태도’임을 알려줘야 한다. 혐오와 위계가 아닌 존중과 평등을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 어른들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요즘 애들’에 대해 혀를 찰 것이 아니다. 어른들의 성문화와 실천을 성찰하고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성문화 아래 자신을 발견해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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