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스타 대학’ 방송ⓒ‘아프리카TV’(현 SOOP)  캡처
‘스타 대학’ 방송ⓒ‘아프리카TV’(현 SOOP)  캡처

나는 어릴 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을 꿈꿨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그야말로 국민 게임이었다. 당시 최고의 프로게이머였던 임요환 선수가 60만 명이 넘는 팬클럽 회원을 보유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고, 프로게이머 연봉 ○억” 같은 기사가 신문 1면을 장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스타’의 인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더 재미있는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고, 유명 프로게이머들의 승부조작 사건까지 터지면서 ‘스타’는 급격히 몰락해갔다. 그럼에도 ‘스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프리카TV’(현 SOOP) 같은 인터넷 방송 플랫폼을 통해 명맥을 이어갔다. ‘스타’ 프로게이머를 꿈꾸며 연습하던 연습생들, 새로운 게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은퇴했던 프로게이머들은 인터넷 방송으로 돌아와 시청자의 후원을 받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특히 인터넷 방송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스타’ 프로리그가 부활하고, 누적 시청자 수가 2억 회를 넘기기도 했다.

‘스타 대학’이란 이름의 콜로세움

현재 ‘스타’의 인기를 이야기할 때, ‘스타 대학’이라 불리는 볼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현 SOOP)에서 시작된 이 콘텐츠는 학교의 사제 관계를 게임 방송에 이식한 형태다. 남성 방송인(프로게이머 또는 이에 준하는 실력을 갖춘 남성)이 여성 방송인에게 ‘스타’라는 게임을 가르치는 구성이 기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게임을 잘하는 남성 유저가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여성 유저를 가르치는 자연스러운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방송을 함께하는 동료가 아니라 ‘위계적인 관계’로 연출되면서, 여성은 항상 배우는 입장, 지시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 머문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응원하는 여성 방송인이 게임에서 진다면 해당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분개하기 시작한다. 남성 방송인은 “개00년”, “그러니까 남자들은 억울한거야. 너희들은 ‘스타’만 잘하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해? 스타만 잘해봐. 알아서 쏴주잖아” 등으로 욕설과 비난은 물론 남성들의 억울함을 풀어내는 대상이 된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대회가 열리면 상황은 더욱 가혹해진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변수와 예측 불가능성이 많은 장르다. 그러나 ‘스타 대학’에 00팀 소속으로 출전하는 여성 방송인이 패배할 경우, 단순한 비판을 넘어 욕설과 함께 “재능이 없으면 나가 뒤져라”와 같은 인신 공격이 쏟아진다. 또한 일부 네티진은 여성 방송인의 연습 기록을 추적해 커뮤니티에 공개하며 집단적인 비난을 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방송인은 2가지 선택지에 놓인다. 다른 게임에서 반드시 이기거나, 벌칙을 수행해야 한다. 벌칙은 매운 음식 먹기나 흉가 방문과 같이 신체적·정신적 고통부터, 비키니를 입고 춤추기, 벌레를 먹는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구조는 로마시대 콜로세움을 연상시킨다. 과거 로마 시대의 황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콜로세움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노예 검투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싸우다 죽어갔다. 돈과 발화권을 지닌 시청자는 후원자이자 관중이다. 그리고 많은 시청자를 보유한 남성 방송인은 검투사를 관리하고 준비시키는 상인이다. 여성 방송인은 검투사다. 여성 방송인은 시청자들의 명예와 우월감을 대리해 경기에 임하며, 승리할 경우 명예와 수익을 얻지만, 패배할 경우 모욕과 처벌을 감내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시청자와 남성 방송인은 우월감을 확인하며, 여성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한다.

과거 '스타'는 남성들 간의 실력 경쟁의 장이었지만, 지금의 '스타'는 여성 방송인을 대리인 삼아 승부욕과 분노를 배출하는 현대판 콜로세움으로 변모했다.

놀이를 가장한 혐오는 이제 그만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2년 기준 여성의 게임 이용률이 73.4%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10년 전보다 약 30% 증가한 수치다. 여성 게이머의 참여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업계는 여전히 일부 극단주의적 이용자들에게 눈치를 보며 여성혐오적 문화와 차별을 방조하거나 조장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 기관조차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콘텐츠진흥원조차 ‘게임문화교실’ 같은 교육 사업에서 성차별 문제를 다루지 않거나,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서 성인지 감수성 관련 문항을 아예 제외해 버리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색출' 같은 집단 괴롭힘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이 놀이가 되고, 그것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문화 속에 우리는 놓여 있다. 이는 단순히 교육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 수 있는 경험을 더 이상 게임업계가 제공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를 시장의 자정에만 맡겨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차기 정부는 시민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성평등 교육을 확장하고, 성차별적 행위를 묵인하는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혐오가 지배하는 세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괴롭힘 없이 게임을 즐기고, 그 속에서 우정을 키워갈 수 있는 성평등한 게임 문화를 만들어가자.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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