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왼쪽 세 번째)과 진성준, 김용범, 방기선 국정기획위원회 부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현판식에서 현판 제막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공동취재)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왼쪽 세 번째)과 진성준, 김용범, 방기선 국정기획위원회 부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현판식에서 현판 제막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공동취재)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불법 계엄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 그리고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정부다. 새로운 정부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책무는 ‘회복’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 시기 무너진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기반을 복원하고, 그 안에서 국민이 다시 신뢰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재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가족부의 ‘성평등가족부’ 확대·개편 구상은 상징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한 데서 정반대로 나아가는 결정은, 단순한 이름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성평등가족부 구상을 환영하는 이는 많지만, 이재명 정부가 성평등에 진심인지 의심하는 사람 역시 적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정치적 행보를 돌아볼 때 일관된 성평등 입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 비동의강간죄 도입, 낙태죄 대체 입법 등 여성들의 숙원인 의제들을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외면해 온 바 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성평등을 미루는 방식은 이전 정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우려는 인사에서 더 짙어진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 위원 55명 중 여성은 12명(21.8%)에 불과하고, 위원장과 분과장 등 고위직은 모두 남성이 맡고 있다. 구색조차 맞추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구성은 양성평등기본법이 명시한 ‘한 성별이 60%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규정도 위반한 것이다. 문제는 단지 법 위반이 아니라, 정부가 출범 첫 단추부터 성평등을 놓치고 있다는 데 있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여성가족부 사무실 앞, 여성가족부 장관, 차관 사진이 들어가야 할 자리가 비어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여성가족부 사무실 앞, 여성가족부 장관, 차관 사진이 들어가야 할 자리가 비어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위원회 구성의 성비 불균형에 대해 개선을 권고할 수 있지만, 지난 5년 간 전체 위원회 중 20% 내외의 위원회가 이 기준을 지키지 않았고 권고의 실효성도 부족했다. 만약 성평등가족부가 돼서도 이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한다면, 그건 이름만 바꾼 것이지 확대·개편이라 볼 수 없다. 이재명 정부가 성평등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지향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규정 준수를 시작하고, 국정을 기획하고 총괄하는 핵심 조직에 더 많은 여성을 적극 기용해야 한다.

인사가 만사라지만, 인사만이 성평등의 전부는 아니다. 단지 여성 비율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성평등한 국정 철학과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인물을 기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에야만 ‘성평등가족부’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기관이 될 수 있다.

또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설득해야 할 이들이 많다. 최근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여성 신체에 대한 성희롱성 발언에 항의하며 5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국회의원직 제명 청원에 서명했다. 이는 역대 국민동의청원 중 두 번째로 많은 동의를 얻은 기록이다. 그러나 이런 혐오 발언을 쏟아낸 인물에게 20대 남성 유권자 37.2%가 표를 던졌다는 출구조사 결과는 또 다른 현실을 드러낸다. 모두가 혐오에 동조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가 구태 정치의 혐오 전략을 답습하고 있음에도 일부 청년층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불균형과 분열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지난 5월 29일 고려대 학생들은 교내에 ‘이준석을 환영하지 않는다’, ‘이준석의 공개적인 언어성폭력을 규탄한다’ 등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민주적학생사회를위한고려대 공동대책위원회
지난 5월 29일 고려대 학생들은 교내에 ‘이준석을 환영하지 않는다’, ‘이준석의 공개적인 언어성폭력을 규탄한다’ 등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민주적학생사회를위한고려대 공동대책위원회

이재명 정부의 성평등가족부는 이러한 균열을 성평등 정책으로 회복할 시대적 소명을 짊어졌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웠던 윤석열 정부 3년 간 남성의 삶은 더 나아졌는가? 아마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남성다움의 압박, 청년층의 고립, 구조적 차별은 심화됐다. 결국 그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간다. 그렇다면 성평등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최근 독일의 과학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는 “한국은 왜 죽어가고 있는가(Why South Korea is dying out)”라는 제목으로 저출생과 자살, 고립 문제를 조명한 영상을 내놨다. 여가 부족, 돌봄의 부재, 과로와 경쟁으로 인한 소진, 높은 자살률, 지역 소멸까지. 이 모든 고통은 성별에 관계없이 시민 모두가 겪는 현실이다. 이 문제의 뿌리는 한강의 기적 이후 이어진 가부장 중심의 불평등한 성장 모델에 있다. 더 이상 과거의 가족 제도와 노동 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전면적인 대안을 상상하고 실현해야 한다.

성평등가족부의 진짜 역할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차별과 혐오, 고립과 폭력을 걷어내고, 다양성과 돌봄, 공동체를 회복하는 국가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에서 다시 ‘함께 살 수 있는 삶’이 가능해진다. 가족은 단지 출산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시민이 서로 돌보고 살아가는 방식의 가장 일상적인 단위다. 성평등한 가족 정책은 곧 회복적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진심으로 바란다. 이재명 정부의 성평등가족부가 그 회복의 여정에서 진정한 전환점이 되기를. 대한민국이 ‘죽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다시 꿈꿀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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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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