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에게 '군대'는 전쟁터였다
여군에게 '군대'는 전쟁터였다
  • 진혜민, 이하나 기자
  • 승인 2021.06.04 16:02
  • 수정 2021-06-16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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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성폭력 사망 '적폐 종합세트'
2013, 2017, 2021년…반복되는 군대 내 성폭력
6년 전 ‘무관용 엄벌 원칙’ 선언 무용지물
5년간 성범죄 4936건, 실형율 10%대 그쳐
인권위 "여군 9명 중 1명 성희롱 노출"
3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현실에 고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의 어머니가 3일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놓인 딸의 영정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홍수형 기자

군대 내 성폭력 사건으로 또 다시 여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군의 여성 부사관이 선임 부사관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신고했으나 군이 오히려 은폐하려 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군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성범죄 근절을 하겠다며 대책을 쏟아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전문가들은 폐쇄적이고 계급에 따른 상하 위계질서가 엄격한 군대 문화로 인해 위력·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군을 동료나 조직원으로 보지 않는 일부 군인들의 비뚤어진 인식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3월 2일 사건 발생, 신고 석달 만에 가해자 영장

지난 3월 2일 충남 서산의 제20전투비행단 근무하던 장모 중사는 후임인 이모 중사를 억지로 부대 밖 저녁 회식자리에 불러 냈다. 이 자리에는 부대 상관인 노모 상사 등 부사관 4명, 민간인 1명이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중사는 술을 곁들여 회식을 하고 부대로 돌아오던 중 차 뒷자리에서 이 중사를 강제추행을 혐의를 받고 있다.  

은폐를 시도하려 했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군 당국의 안일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중사는 이튿날 해당 부대 지휘관에게 피해 사실을 정식으로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인 이 중사와 이 중사 남편 등이 부대 관계자들에게 광범위한 은폐·회유 제안을 받았다고 유족 측은 호소했다. 

공군은 이틀 후인 5일 피해자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피의자인 장 중사에 대한 조사는 17일에야 개시했다. 사건 발생 15일 뒤였다.  

이 중사는 피해 직후 당시 상황이 녹음된 차량 블랙박스 파일을 확보해 직접 군사경찰에 제출했다. 그런데도 군은 장 중사에 대한 조사를 미뤘다. 이 중사는 부대 민간인 성 고충 상담관에게 22회 상담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 중사는 ‘살고 싶지 않다'는 문자를 보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공군 법무실이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 측에 제출한 문건에 따르면 공군은 피해자 조사를 벌인 3월 5일 당시 성 고충 상담관을 배석하도록 했으나, 이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가해자는 3월 17일 다른 부대로 파견 조처됐는데, 이는 피해 발생 2주 지난 시점이었다.

이 중사는 사건 발생 이틀 뒤 청원휴가를 냈다. 이어 부대 전속 요청도 했다. 이 중사는 지난달 18일 청원휴가를 마친 뒤 전속한 부대인 경기 성남 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출근했지만, 나흘만인 지난달 22일 오전 부대 관사에서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사건 발생 3개월 만인 지난 2일 가해자로 지목된 장 중사에 군인 등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장 중사는 국방부 근무지원단 미결수용실에 구속 수감됐다.

3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현실에 고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3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현실에 고 이모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인권위 "여군, 상관에 의한 회식·음주 연계 성폭력 피해 여러 건"

군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성폭력 사건은 되풀이 됐다. 앞서 2013년 강원도 육군 15사단에서 상관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한 여성 대위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군은 2014년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성범죄에 대해 무관용으로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장병 대상 성인지 교육 시수도 연 1회에서 연 4회로 늘렸다. 그러나 2017년 해군본부에서 상관에게 수 차례 성폭행을 당한 여성 대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또 다시 발생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방부에서 받은 통계를 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군 형사사건으로 입건된 성범죄 사건 총 4936건 중 기소된 사건은 2173건(44%)에 그쳤다.

어렵게 기소되더라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이 국방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같은 기간 성범죄 사건의 각 군 군사법원에서 다룬 성범죄 재판 1708건 중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175건(10.2%)에 그쳤다. 이는 민간인들이 성범죄로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25.2%)보다 15.0% 포인트 낮은 수치다. 

디지털 성범죄 건수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 송기헌 의원 자료에 따르면, 군대 내 디지털 성범죄는 2018년 102건에서 작년 213건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군내 성폭력은 당국의 수차례 대책 발표에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군인권센터 2020 연례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성폭행과 추행 등 군내 성폭력 상담이 전년보다 오히려 크게 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성폭력(강간·준강간·유사강간·의제강간) 상담의 경우 2019년 3건에서 2020년 16건으로 증가했으며, 성희롱 상담은 같은 기간 44건에서 55건으로 늘어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7년 여군 대위가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실시한 직권 조사 결과를 보면, 상당수 여군들은 지휘관과 부서장에 의해 회식, 음주와 연계된 성폭력 피해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군사법원이 가해자에게 군형법 대신 형량이 경미한 일반형법을 적용하는 미온적인 처벌 관행도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아무 조치도 취해질 것 같지 않아서 기관에 신고하지 못했다.

군내 성폭력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에는 군기강 중심주의, 군사법원의 미온적 처벌 관행, 피해자 보호 시스템의 부재 등이 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군대내 성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직권조사 결과를 통해 “여군들은 직업군인을 지원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결과적으로 이들의 근무평정을 하는 지휘관과 부서장에 의해 회식, 음주와 연계된 성폭력 피해사례가 여러 건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군사법원의 미온적 처벌 관행도 문제적이다. 공군의 한 부사관은 장교의 허벅지를 3차례 만지고도 취중 우발범죄라는 이유로 선고유예됐다. 인권위는 “현역군인에게 군형법을 적용해야하나 일반형법을 적용해 피고인 신분을 유지시켜준 사례, 군형법상 강제추행 등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건을 성폭법으로 적용한 사례, 취중 우발 범죄라며 선고유예한 사건 등 부적절한 법률적용과 온정적 처벌 경향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기관에 신고하지 못했다. 2019년 국방부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성폭력 피해를 기관에 보고 또는 신고한 수는 32.7%에 그쳤다. 보고하지 않은 나머지 응답자들은 미신고 사유로 ‘아무 조치도 취해질 것 같지 않았다(44%)’라고 답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사건의 피의자 장모 중사가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국방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사건의 피의자 장모 중사가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국방부

군의 허술한 대응에 쏟아진 질타…"3개월 동안 군은 무엇을 했나"

반복되는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핵심에는 군의 허술하고 안이한 대응이 있다는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1일 진정서를 통해 “성추행이 벌어지고 피해자가 사망하기까지 3개월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군은 무엇을 했느냐”며 “피해자 신고에도 상급자는 지휘관에게 보고하지도 않았고 피해자 가족의 항의가 있기 전까지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센터는 “가해자를 즉각 구속하고 사건을 조작·축소·은폐하고자 2차 가해를 일삼은 이들, 피해자 보호에 실패한 지휘관에 대한 엄정 수사와 문책을 요구한다”며 “살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만든 건 군”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도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국방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냐”며 비판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여군은 1만2600여명이다. 매년 여군의 규모는 조금씩 늘고 있으며 군 간부 중 여성 비율은 6.8%”며 “하지만 여군들은 충분한 화장실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열악한 군 생활을 하고 있으며 성폭력, 성희롱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며 ‘젠더 친화적 병영문화’ 정착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피해 신고 이후 부대 내 처리, 상급자와 동료들의 2차 가해, 피해호소 묵살, 사망 이후 조치 미흡 등에 대해 엄중한 수사와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는 4일 “여군도 평범한 군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군대 문화가 안착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군과 남군은 전장에서 서로의 생명을 책임지는 가족만큼 소중한 전우”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전날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열린 제3차 대한민국 집현포럼 ‘모병제: 지속가능한 병역과 한국판 뉴딜’ 정책세미나에서 “여군 개개인이 느끼는 차별은 제도적 차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시와 거리두기, 그리고 승진과 보직에 영향을 미치는 편향적 인사평가, 심지어는 왕따현상까지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장교에 비해 부사관은 인권 상황이 열악하고 여군 부사관은 남성, 그리고 부사관이라는 신분과 정체성이라는 이중 구조의 차별을 받고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이성용 공군참모총장 대장 ⓒ공군
이성용 공군참모총장 ⓒ공군

이성용 공군참모총장 사의에··· 문 대통령 즉각 수용

한편,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성추행 피해를 당한 공군 여성 부사관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4ㅣ일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의를 즉각 수용했다.

이 총장은 사의문에서 “먼저 성추행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 등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드린다”며 “무엇보다도 고인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족분들께는 진심어린 위로의 뜻을 전해드린다”고 했다. 이어 ”아픔과 상처가 조속히 치유되길 바라며, 공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사의 수용 결정은 이 총장의 사의 표명이 나온지 약 1시간20분만에 이뤄졌다.  

한편, 미국의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올 초 취임 후 첫 지시로 군대 내 괴롭힘과 성폭력 근절을 지시했다. 군내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에 대한 보고서를 2주 내에 제출하고 지난 10년간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포함한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앞서 지난해 6월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미 육군 최대 기지 포트후드에서 근무하던 여군 특수요원 바네사 기옌(20)이 실종된 지 두 달 만에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옌은 실종 직전 가족들에게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기옌은 동료인 아론 로빈슨에게 둔기로 맞아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로빈슨은 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려 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미국 육군은 텍사스 포트후드 기지에서 기지를 통솔했던 스콧 애플랜드 소장, 제1 기갑부대장인 제프리 브로드워터 소장 등 장성 2명을 포함한 고위 장교 14명에 대해 해임하거나 정직 처분을 내렸다.

사건이 알려진 뒤 SNS에는 피해자를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취지로 ‘#내가 바네사 기옌이다’ ‘#ME TOO’ 같은 해시태그(#)가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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