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트후드 기지에서 근무하던 육군 바네사 기옌은 상급자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했으나 묵살당했다. 이후 실종 두달 뒤인 지난해 6월 살해된 채 발견됐다.
미국 포트후드 기지에서 근무하던 육군 바네사 기옌은 상급자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했으나 묵살당했다. 이후 실종 두달 뒤인 지난해 6월 살해된 채 발견됐다. ⓒU.S. Army

성폭력 피해 호소했으나 묵살당한 뒤 살해

최근 드러난 ‘공군 성폭력 사건’은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바네사 기옌 살해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두 사건은 태평양 건너 서로 다른 곳에서 발생했지만 군대가 성폭력 피해를 무시하고 무마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띤다.

여군 바네사 기옌(20)은 텍사스주 육군기지 포트후드에서 복무 중 성추행을 당했다. 지난해 4월 22일 갑자기 실종됐다가 두 달 만인 6월 30일 부대 밖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상관이던 아론 로빈슨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이후 미국 사회는 분노로 들끓었고, 육군 내부조사 독립 위원회가 꾸려졌다. 독립조사위는 성폭행 예방 프로그램 운영의 부실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하고, 사건의 보고 누락 등을 지적했다. 육군은 부대 지휘관 등 21명을 중징계 했다. 기옌은 미군 내 성차별 및 성폭행 문제 해결 필요성의 상징 인물이 되어 새 법안의 근간이 되고 있다.

파병 여군 4명 중 1명 성추행·폭행 피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참전 후 많은 특수훈련병의 사망과 부상으로 미군의 실전병 수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정신건강과 범죄사실 미확인 등 병사 모집기준이 허술해져 군의 질적 수준저하와 성폭력 및 자살폭력 증가의 원인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미국 보훈처가 2012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 여군 1100명 중 조사한 결과, 성희롱 피해를 겪은 여군은 48.6%, 성추행·성폭행 피해 여군은 23%였다. 가해자의 47%는 상급자였다. 2018년 미군 내 성폭력 사건 3건 중 1건만이 당국에 신고된 것을 기초로 할 때 2년 전보다 38% 급증했고, 여성 피해자는 주로 17~24세였다.

왜 군대 성폭력 문제는 근절되지 않는가

1. 피해호소 못하게 하는 군 분위기

성폭력 신고자에 대한 무관심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신고에 장애가 되고 있다. 『외로운 군인: 이라크전에 참전한 여성의 사적인 전쟁』의 저자 헬렌 베네딕트는 미군 내 성폭력의 90%는 보고조차 되지 않는다고 폭로했다. 부대장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고발했다가 동료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히자 휴가 중 ‘부대 복귀를 거부’ 당하고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거나, 이라크 참전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동료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가 성폭행당해 상급자에게 용기를 내 신고했지만 ‘사건을 묻어버리지 않으면 널 묻어버리겠다’고 협박받은 경우, 공군복무 시 상급자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군 시스템을 믿지 못해 신고하지 않고, 군인으로서는 용감했지만 모멸감과 수치심에 혼란스러워 성폭력 대처에 무력감을 느꼈다는 미국 최초 여성 전투기 조종사출신 맥샐리 상원의원에 이르기까지 상급자에 의한 만성적 군대의 성폭력 문화에 억눌려 고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여겨지고 있다.

2. 군대문화와 인권존중이 상충된다는 권위주의적 사고

명령복종의 위계구조와 남성중심 성의식이 강한 군대문화가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적 방식과 서로 양립되기 어려운 관계로써 상급자인 가해자 처벌이 군의 기강유지에 위협적이라는 권위주의적 사고가 성폭력 만연의 요인이다. 군복무가 폭력적 남성성 또는 남성중심적인 집단문화의 확대 재생산의 악순환 기제가 되고 있다.

3. 유명무실한 폭력예방 및 대응 프로그램

미국에서 성폭행은 불법이다. 그러나 미군 내 성폭행은 아직 독립적인 범죄로 취급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05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군대 성폭력 해소 프로그램인 SAPRO(Sexual Assault Prevention and Response Office)는 군법으로 엄중히 처벌되지 않으므로 유명무실하고, 성폭력 방지 담당관이 성범죄를 일으킬 정도로 터무니 없는 상황이다. 현직 군인들은 이 상태로는 성폭력 근절이 회의적이라는 견해다.

미군 성문화 개혁 위한 ‘바네사 기옌 법안’

동서를 막론하고 우리는 군인의 살신성인 정신을 위대하게 생각하고 존경한다. 그들이 있기에 위기 속에서도 마음 놓고 살 수 있어 늘 고마운 마음이다. 그러나 명예롭고 긍정적 이미지의 군대가 빈번한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무서운 경계집단으로 실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2019년 미 국방부는 여성(1만3000명) 뿐만 아니라 남성(7500명)도 어떤 형태로든 성폭행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여성 육군장관을 새로 기용하고, 상하원 의장이 앞장서 지난 5월 군사 성폭행의 전환점을 촉구하는 ‘베네사 기옌 법(I Am Vanessa Guillen Act)’ 법안을 마련했다. 이 법이 제정되면 사건처리 결정 권한을 군 지휘관의 손에서 전문 검사가 맡게 되어 군이 사건을 축소 무마시키는 것을 막아 철저히 조사처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고무적이다. 이는 바네사 기옌 사건 해소를 넘어 전면적으로 군대문화를 개혁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써 희망을 갖게 한다.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법적 규제로 인권차원에서 남녀 모두 안전한 군 생활을 보장받는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가게 됐으면 좋겠다. 

황은자(베로니카) H&C 교육컨설팅 대표
황은자(베로니카) H&C 교육컨설팅 대표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