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탐험가 김영미 대장
국내 최연소 7대륙 최고봉 완등 이어
한국인·아시아 여성 최초 무지원 단독 남극점 도달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서 강연
“산에서 배운 건 ‘정면 돌파’
인간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아”

한국 대표 탐험가 김영미(43·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대장이 지난 21일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강연하고 있다.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한국 대표 탐험가 김영미(43·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대장이 지난 21일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강연하고 있다.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역사를 새로 쓰는 여성들을 만나는 일은 여성신문 기자로 일하는 큰 즐거움이다. 한국 대표 탐험가 김영미(43·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대장과의 만남도 그랬다.

“에베레스트에서 남극까지, 수직으로 수평으로, 극과 극을 달리는 사람”. 김영미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강원도 평창에서 농군의 딸로 태어났다. 대학 산악부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2003년 히말라야 등반을 시작해 2008년 28세에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다. 2013년 히말라야 암푸 1봉을 세계 최초로 등정했고, 2017년 얼어붙은 시베리아 바이칼호수 위를 혼자 23일간 724㎞를 걸어 건넜다.

지난 1월 한국인·아시아 여성 최초로 ‘무지원 단독’ 남극점 도달에 성공했다. 식량·연료 등 중간 보급도 없이 혼자 50일 11시간 37분 만에 남극점에 이르렀다.

김영미 대장은 지난 1월 한국인·아시아 여성 최초로 ‘무보급 단독’ 남극점 완주에 성공했다. ⓒ김영미 대장 SNS 캡처
김영미 대장은 지난 1월 한국인·아시아 여성 최초로 ‘무보급 단독’ 남극점 완주에 성공했다. ⓒ김영미 대장 SNS 캡처

25년 전 여성신문이 꼽은 ‘2030 여성 희망리더 20인’(2008년)에 올랐던 김영미 대장은 여전히 도전을 멈추지 않는 탐험가이자 영감을 주는 여성이다. 지난 21일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열린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강연에서 그의 탐험기를 들려줬다.

비장한 인간 승리나 화려한 성공기와는 거리가 멀다. “걷던 길을 계속해서 걷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대기록 뒤엔 수많은 번민과 실패가 있었다고, 스포트라이트 바깥에서 자신을 돕고 지지해 준 수많은 사람들도 기억해 달라고 했다.

한국 대표 탐험가 김영미(43·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대장이 지난 21일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행사의 하나로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한국 대표 탐험가 김영미(43·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대장이 지난 21일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행사의 하나로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비박소녀’. 김영미 대장이 스스로에게 붙인 별명이다. 대학생 때 강릉에서 고향 평창까지 백두대간 오대산 다섯 봉우리를 넘어 다녔다. 산에서 비박(산에서 침낭만으로 야영하는 것)하는 게 즐거웠다.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자연에 스며드는 시간, 그런 걸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 낭만과 추억을 ‘할머니 클라이머’가 돼서도 간직하고 싶어요.”

20대였던 2003년 히말라야 등반을 시작하면서 화려한 기록을 세웠다. 세 번 만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일본 산악인 우에무라 나오미의 저서 『내 청춘 산에 걸고』를 읽다가 “젊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사고와 행동이 함께할 수 있는 건 젊은 시절뿐”이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실패도 많았다. 25번 넘게 도전했는데 정상에 선 건 절반도 안 된다고 했다. 파키스탄 히말라야 가셔브룸 2봉 등반에는 네 번 도전했지만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2006년엔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400m 정도만 남겨 두고 되돌아오기도 했어요. 8450m 높이에 저 혼자였어요. 산소는 점점 떨어지고, 저는 구름 위에 있고, 산들이 발밑에 있고, 위아래로 불빛 하나 없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어요. 지구상에 혼자 있는 느낌이 이럴까. 그 막막함, 대자연의 풍광이 주는 위압감.... 가셔브룸을 끝으로 8000m 히말라야 등반은 마지막이에요. 더는 정상에 서지 않아도 미련이 남지 않더라고요.”

2008년 히말라야 가셔브룸2봉 원정에 나선 산악인 김영미 대장(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김영미 대장 제공
2008년 히말라야 가셔브룸2봉 원정에 나선 산악인 김영미 대장(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김영미 대장 제공

고산 등반은 생사의 경계를 걷는 도전이다. 무엇보다 돈이 아주 많이 든다. 젊은 패기로 거침없이 도전을 거듭해 온 김영미 대장이지만 갈등과 회의도 끊이질 않았다. 

대자연에서 답을 찾았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산은 ‘정면 돌파’하는 법을 알려줬다.

“2013년 히말라야 암푸1을 처음 등반할 때 폭설이 왔어요. 삽으로 다섯 번 퍼내도 겨우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었죠. 연료가 없어서 눈이 그렇게 와도 물을 못 마셨어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까 또 걸어지더군요. 살아있다는 건 이런 거구나. 내 심장이 이렇게 뛰고 있는데 허투루 살지 말아야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 다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정면 돌파해 보자. 어떤 성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에너지를 쏟아서 나 자신을 비우고 싶었어요.”

산악인 김영미 대장(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이 2017년 러시아 바이칼 호수 724㎞를 단독으로 종단했다. ⓒ강레아(노스페이스)/김영미 대장 제공
산악인 김영미 대장(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이 2017년 러시아 바이칼 호수 724㎞를 단독으로 종단했다. ⓒ강레아(노스페이스)/김영미 대장 제공

그래서 남극에 가기로 했다. 오랜 기간 열심히 준비했다. 극지 탐험 경험을 쌓기 위해서 23일간 바이칼호를 횡단하고 노르웨이 극지 등반도 했다. 바이칼호 남북 종단 때는 체감온도 영하 40도 속에서 썰매를 끌고 매일 30km씩 걸었다. 마장동에서 산 소·돼지고기를 공장에 맡겨 건조식량을 만들었는데 하루 5000kcal를 섭취해도 23일간 체중이 8kg이나 줄었다. 철저한 예행연습과 준비 후 떠난 그에게도 남극은 “육체와 정신의 극한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

“혼자 완성할 수 있는 탐험은 없었다”고 김영미 대장은 강조했다. “다른 산악인들, 지인들, 후원자들 등 여러 인연 덕에 1100km 넘게 걸어올 수 있었죠. 앞으로 제 등반을 떠올리실 때 뒤에서 애쓴 많은 분들도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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