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문화이야기]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
[유창선의 문화이야기]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
  • 유창선 작가
  • 승인 2023.01.18 10:26
  • 수정 2023-01-23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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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읽기 1.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 작가. ⓒ문학동네 제공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 작가. ⓒ문학동네 제공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책들은 국내에서도 많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하지만 그의 텍스트들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오늘은 먼저 에르노의 글쓰기가 갖는 매력과 힘에 대한 얘기이다.

에르노의 글쓰기는 대략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발표되었던 세 권의 책 『빈 장롱』, 『그들이 말하는 것,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 『얼어붙은 여자』의 시기가 1기였다. 그 뒤 『남자의 자리』를 필두로 문학적 ‘허구’를 배제한 많은 책들을 출간하면서 지금까지 2기의 시기를 걸어왔다. 에르노는 소설이라는 이름을 떼어버린 2기의 텍스트들에 대해 “내가 허구를 거부함과 동시에 하나의 지평선이 사라지고, 형태상의 모든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에르노는 ‘문학 아래’로 자신을 위치 지움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던 것이다.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1984BOOKS 펴냄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1984BOOKS 펴냄

문학의 틀 안에서 걸어나온 에르노는 사실만을 기록한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번도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실제로 그녀의 글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기억한 사실들의 나열이다.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일상과 경험들을 있었던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그런 거리두기의 글쓰기를 에르노는 ‘평평한 글쓰기’라고 표현했다. (『남자의 자리』) “내가 유일하게 정확하다고 느낀 글쓰기는 표출되는 감정도, 교양 있는 독자와의 어떤 묵계도 없이 오직 거리두기를 통해 객관화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이다.   

흔히 칼은 다른 사람을 베어 상처를 남기는 날카로운 무기가 된다. 그런데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로부터는 상처가 아닌 공감을 얻는 예상 밖의 경험을 독자들은 하게 된다. 독자를 끌어안는 그녀의 힘은 솔직한 글쓰기에서 비롯된다.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단순한 열정』)는 대목에 이르면 너무도 솔직한 에르노의 글쓰기에 대한 걱정마저 생겨난다. 아, 남다를 줄 알았던 작가가 이토록 유치한 속내를 온 세상에 고백하면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심지어 그녀는 ‘사랑 따윈 난 몰라’ 할 수도 있는 ‘좌파’가 아니던가. 에르노는 이미 모든 체면과 위신 따위는 모두 내려놓은 사람 같았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내면이 단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  

에르노의 글은 더는 ‘소설’이 아니라고 했듯이 문학적으로 꾸미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글들은 언제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그런데 문학적 치장이 없기에 오히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역설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대한 사실적 기록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 개인의 얘기가 아닌 ‘나의 얘기’ 혹은 ‘우리의 얘기’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런 공감의 힘은 그 어떤 투쟁의 구호보다도 강하다. 에르노는 글쓰기의 최종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열망하는 이상적인 글쓰기는, 내 안에서 생각하고 느꼈듯이, 내가 타인들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에르노의 글을 읽는 우리가 “아, 이건 내 얘기인데…”하고 무릎을 치면서 그녀의 얘기 속에 들어있는 ‘나의 얘기’를 발견하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에르노는 얼핏 자전적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부분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성격을 갖는 것들이다. 거대한 담론도 없이 작은 일상들을 기록하고, 구조가 아닌 개인을 말하고 있지만, 그녀의 칼 같은 글쓰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의 공간을 비약적으로 확장시켜 준다. 비극적인 영화에서 배우들이 감정을 절제하며 슬픔을 드러내지 않을 때 관객들은 자기가 슬퍼할 여백을 갖게 된다. 에르노의 글들도 마찬가지이다. 감정의 개입없이 담담하기 이를데 없는 그녀의 글쓰기가 오히려 독자들의 공감 지수를 높여준다.

그렇기에 자전적인 기록들이 오히려 정치적이 되는 에르노만의 역설이 가능해진다. 에르노는 정치적으로 ‘좌파’다. 하지만 그녀는 투쟁을 말하지 않고 독자들을 자극하기 위해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대신 살아온 경험들의 기억 속에서 베일을 철저히 벗김으로써 질서를 변화시켜야겠다는 독자들의 자발적 결의를 이끌어 낸다. 독자들이 텍스트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다른 것들보다 더 정치적 성격을 띤 감동이 존재한다”는 것이 에르노의 믿음이다.

소상인의 딸로 태어났던 에르노는 교사가 되고 교수가 됨으로써 계급 상승을 이루었다. 그런 에르노의 글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신이 사회계급을 바꾸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이다. “출신 계급을 변절한 처지에서, 정치적 행위로서 그리고 '헌납'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바로 글쓰기라고 믿습니다”라고 그녀는 토로한다. 신분 상승에 안도하지 않고 죄책감을 갖다니. 그런 에르노에게 글쓰기란 자신을 죄책감으로부터 가장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에르노의 글들을 통해 우리가 함께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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