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웹툰 『정년이』 서이레·나몬 작가 ①
‘2019 오늘의 우리 만화’ 수상작
1950년대 여성국극단 배경으로
다양한 여성들의 모험·성장·연대 그려

서이레(글), 나몬(그림) 작가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정년이』 ⓒ네이버웹툰
서이레(글), 나몬(그림) 작가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정년이』 ⓒ네이버웹툰

1956년, 목포 시장에서 조개를 파는 16세 윤정년은 그 시대 기준으로 ‘여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도통 안 맞는 인물이다. 대충 묶어 뻗친 머리카락, 가무잡잡한 피부, 꾸미는 데나 ‘여자다운’ 일엔 관심 없고, 좋아하는 것은 돈과 밥. 소리 하나는 타고난 이 전라도 소녀는 “돈을 가마니로 벌고” 싶어서 당대의 아이돌 ‘매란국극단’을 무작정 찾아간다.

네이버웹툰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인 『정년이』는 1950년대 서울의 여성국극단을 배경으로 여성들의 모험과 성장을 그린 만화다. ‘여성서사’를 갈구하는 대중문화 소비자들에게는 단비 같은 작품이다. ‘여성 공동체’ 국극단을 배경으로 여성의 야망과 분투, 여성들 간 사랑과 갈등, 연대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숏컷에 바지 차림으로 남성을 연기하며 점차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를 허물어가는 여성 캐릭터들은 최근 젠더 담론을 환기시킨다.

‘2019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고, 최근 문학동네에서 종이책도 나왔다. 서이레(글), 나몬(그림)이라는 1990년대생 여성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작품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시기임을 고려해 서면으로 진행했다.

ⓒ홍수형 기자
ⓒ홍수형 기자

 

- 늦었지만 ‘2019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올해 수상작 중 완결되지 않았는데도 상을 받은 작품은 『정년이』 뿐이다.

이레 : 작품에 거는 기대감을 표현해주셨다고 생각한다. 무척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작품에 매진하고 있다.

나몬 : 연재 초반인데도 상을 받아 소재의 힘을 크게 봐주셨구나 싶었다.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돼 매우 기뻤고, 앞으로도 열심히 달려보라고 응원을 받은 느낌이었다.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국극 전성기를 배경으로 한다. ⓒ네이버웹툰 제공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국극 전성기를 배경으로 한다. ⓒ네이버웹툰 제공

 

『정년이』는 꼼꼼한 취재와 탄탄한 작화로 잊혀 가는 여성국극을 다시 불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여성국극은 1940년대 여성 소리꾼들을 중심으로 탄생한 공연예술 장르다. 오직 여성들만 무대에 선다. 영웅·로맨스 등의 이야기를 멋드러진 소리와 춤, 화려한 분장과 의상, 무대 효과 등으로 표현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잠시 현실을 잊고 위안받는 경험을 선사해 1950~60년대 인기몰이를 했다.

 

- 왜, 지금, ‘여성국극’을 다룬 작품인지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여성 문화인들 주도로 탄생해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전쟁이 끝나고 가부장적 국가를 만들어가는 시대에 여성으로만 이뤄진 연극이라고, 여장 남자가 나온다고 동성애 어쩌고 비난받고”, 기록하고 전승할 만한 가치로서 역사에 남지 못하고 외면받은 것이 여성국극이다. 지금 한국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나?

나몬 : 지금은 여성국극이 성행하고 외면받았던 때보다 훨씬 더 다양성이 중요시되고 화두에 오르고 있다. 여성국극이 가진 퀴어함이 더는 터부시되는 시대가 아니라 생각했고 이런 부분들을 자연스레 이야기에 담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레 : 저는 지금이 적기이니 여성 국극을 다루어야겠다고 카드를 들고나오는 사람은 못 된다. 게으르고, 그냥 내가 보고 싶은 걸 만드는 사람이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 남지 않은 이야기가 기록된 역사보다 훨씬 나와 가까운 이야기라고 느낀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굉장히 재미있다. 실록보다 야사가 더 재미있지 않은가? 여성국극도 여성으로만 이뤄진 연극이어서, 여장남자가 나와서, 동성애라는 수근거림이 있어서... 등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진 게 너무나 재미있어서 이야기로 만들었다.

 

- 국내외 자료 조사와 취재에 심혈을 기울였다던데.

이레 : 자료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구하고 싶은 거의 모든 책이 절판됐더라. 중고를 구하거나 도서관을 수소문해 책을 빌려 필요한 부분을 제본했다. 인맥을 총동원해 1980년대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국극 대본 몇 권을 충남대 도서관에서 빌렸다. 배우가 연기를 위해 남긴 육필 메모가 생생한 대본을 보는데 새삼 가슴이 뛰었다. 임춘앵 선생님의 전기, 조영숙 선생님의 자서전, 여성국극 전성기에 배우로 활동했던 분들의 구술 자료집이 당시 여성국극단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정은영 작가의 여성국극 프로젝트, 창작집단 ‘영희야 놀자’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 등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좋은 작품들도 도움이 됐다. ‘영희야 놀자’의 피소현 PD님을 인터뷰해 여러 여성국극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대상을 구현하기 위해 1950년대 생활문화사를 담은 책이나 사진집을 참고하고, 당시 발간된 신문 기사를 찾아보기도 했다.

나몬 : 여성국극 관련 전시, 여성들만 출연하는 일본 다카라즈카 가극단 공연 관람 등 약 1년간 다양한 조사를 했다. 당시 생활상에 대한 자료들은 어느 정도 구할 수 있었는데, 무대 구성에 대한 자세한 자료가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1950년대 공연장 사진들도 대부분 외관 사진 정도만 남아 있더라. 공백으로 남은 부분들을 그럴싸하게 채우기 위해 1950년대 영화와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상들을 많이 찾아봤다.

 

이어보기 ▶ 정년이 작가 “주인공은 무조건 전라도 출신이어야 했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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