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페미니즘 미술 작가 정은영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한국 대표 페미니즘 미술 작가 정은영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신지예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
  • 승인 2020.06.13 15:22
  • 수정 2020-06-15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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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의 티타임] 정은영 작가 인터뷰 "예술은 소수자와 어깨를 걸고 가야"
2019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6월 21일까지 아르코에서 열려
젠더는 수행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주디스 버틀러의 관점에 동의
퀴어 공연의 계보를 상상해 이어본 작품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선보여

신지예 여성신문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이 우리 시대 인물들과 티타임을 갖는다. 여성신문 온라인과 지면을 통해서 연재한다.
지치고 피곤할 때 마시는 한 잔의 차가 마음을 위로하는 것처럼, 읽는 이에게 따뜻하고 기분좋은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기를.

정은영 작가 ⓒ정은영 제공, 서스테인웍스 촬영
정은영 작가 ⓒ정은영 제공, 서스테인웍스 촬영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이 지난 5월 8일부터 6월 21일까지 혜화동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현대 미술전이자 권위있는 대규모 전시회다. 올림픽처럼 각 국가마다 전시관이 있어 미술계의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크게 ‘지아르디니’와 ‘아르세날레’ 두 공원에서 진행되는데 지아르디니에는 소위 서구 열강들이 모여있고 그 외 나라는 아르세날레 공원에서 전시한다. 한국은 지아르디니 전시의 마지막 주자다. 원래 공원 화장실이었던 공간을 개조하고 증축해 한국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2년마다 돌아오는 비엔날레에서 어떤 큐레이터가 전시를 기획할지, 어떤 작가가 참여할지 각 국 예술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곤 한다. 나라마다 기획 과정이 조금씩 다른데 한국의 경우 큐레이터가 먼저 정해지고 큐레이터가 기획에 맞는 작가들과 긴밀하게 작업을 하여 전시관을 채운다.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흥미로운 시대를 살기를)>이라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체 주제에 맞춰 김현진 큐레이터는 정은영, 남화연, 제인 진 카이젠 3명의 여성 작가에게 전시 작업을 제안했다. 미투운동의 영향으로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여성 작가가 강세였다.
정은영 작가는 10년 넘게 여성국극을 주제로 작업했고, 남화연 작가는 친일파와 월북자로 취급받아 기억에서 잊혀진 근대 여성 무용가인 최승희 무용가에 대해 주목해왔다.제주도 출생이지만 덴마크로 입양된 제인 진 카이젠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다가 제주/한국의 전통과 바리공주 설화에 매료되어 그 이야기를 작업에 담았다. 

이번 티타임에서는 2019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참여 작가 중 1인인 정은영 작가를 만난다. 정은영 작가는 2013 에르매스재단미술상, 2018 올해의 작가상에 이어 2019 베니스 비엔날레를 참가하며 명실상부한 한국 대표 페미니즘 미술 작가로 자리 잡았다.
 

ⓒ뉴시스·여성신문
2019 베니스 비엔날레 김현진 예술감독(KADIST 아시아 지역 수석 큐레이터-맨왼쪽)과 정은영(왼쪽 두번째 ), 남화연(가운데)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 작가 ⓒ뉴시스·여성신문

-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전시 제목이 흥미로워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제목은 김현진 큐레이터가 제안했어요.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이죠. 소설 자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자이니치들의 도전과 생존의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관의 주제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이민진 작가에게 허락을 받은 후 그 문장을 제목으로 삼았어요.

시대를 기록하는 역사는 남성 위인 중심으로 쓰여집니다. 남성 중심적으로 사건이 이해되고 기록되죠. 그렇지 않은 존재들은 역사에서 지워져 왔어요. 이번 한국관 전시에서는 역사를 젠더적 관점에서 바라보려 했습니다. 참여 작가들은 탈락된 존재들인 여성, 퀴어, 입양인, 이주민, 월북자를 담고자 했어요.”

정은영 작가는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이라는 다채널 비디어 설치 작품을 내놓았다. 정은영 작가는 십년 넘게 여성 국극 프로젝트를 주제로 작업했다. 여성 국극은 1950년에서 60년 대까지 큰 대중적 인기를 끈 여성배우로만 이루어진 창극이다.

"살아계신 가장 탁월한 남역 배우로 꼽히는 이등우(이옥천) 선생에 이어 트랜스젠더 전자음악가 키라라, 레즈비언 배우 이리,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의 연출가이자 배우 서지원, 드랙킹 아장맨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이들이 여성국극으로부터 영향 받은 퍼포머들은 아니지만 퀴어 퍼포먼스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종종 국극 배우분들께서 제대로 투자만 된다면 국극이 다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나 저는 과연 그럴까 싶어요. 만약 여성 국극의 계보를 잇는다면, 다음 세대의 퀴어 공연은 어떨까 상상하면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여성신문
정은영 작가의 작품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여성신문


- 모니터에 담긴 국극 배우가 키만해서 앞에 사람이 서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제가 공연을 보고 있는 같더라고요. 그런데 마지막 퍼포먼스 영상은 조금 눈이 아팠어요. (웃음)

“그 영상은 썬글라스를 끼고 작업했어요. 섬광이 많고 번쩍거려서 불쾌하고 힘들 수도 있죠. 관객에게 부서지고 교차되고 지루한 듯 하면서도 몰입되는 감각을 주고 싶었어요.
DJ인 키라라의 작업물도 비슷하죠. 평소에 키라라의 작업을 들으며 음악이 부서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느날 키라라에게 말했죠.
‘키라라, 너의 비트가 이렇게 조각나있는 이유는 네 몸과 세계가 계속해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레즈비언 배우인 이리는 연극에서 캐스팅 될 때 젠더리스한 역할에 캐스팅 된다고 해요. 존재만으로 원세계와 부딪히죠. 드랙킹인 아장맨의 작품도 마찬가지구요.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의 서지원은 오래전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었어요. 지원씨는 자기가 어릴 때 장애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상인으로 사는 사람들의 몸이 이상한 몸이라고 생각했다는데 들으면서 어떤 쾌감을 느꼈어요. ‘춤추는 허리’의 공연은 정말 다른 경험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요. 공연이라는 것 자체가 정상인들을 위한 셋팅이었다는 걸 알게 되요. 암전은 배우가 무대 밖으로 이동하는 시간이예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배우는 사라지 듯 퇴장해야죠. 어디에서 넘어지거나 느리거나 하면 공연을 망치잖아요. ‘춤추는 허리'의 장애 여성의 공연은 ‘정상인'들의 세팅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거예요. 전혀 다른 시간성을 받아들여야 하죠.

작품에 나오는 대부분 퍼포머들이 슈퍼스타가 되기에는 정체정이나, 지향성 때문에 배제되어온 사람들이예요. 보통 작은 공연을 많이 하죠. 이번에 그들의 공연이 사람들을 압도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귀국전에서는 구현하지 못했지만 본 전시에서는 모든 모니터가 다 사람의 스케일이었어요. 화장실이었던 공간을 사용했기 때문에 정사각형의 ㄷ자 형태로 전시가 이뤄졌어요. 관객이 그 방에 들어가는 순간 막 벌어지는 공연 현장에 포함되는 느낌이 들도록 연출했죠. 큰 우퍼를 통해 음향이 나오면서 가슴을 쿵쿵 울리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춤추다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아르코미술관에서는 공간의 한계 때문에 베니스 비엔날레처럼 관객이 공연에 함께한다는 감각을 주기가 어려워 아쉬워요. 작품의 모니터는 3면이기 때문에 누구도 작품을 완벽하게 볼 수 없어요. 한 삶 속에 굉장히 많은 레이어가 교차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현장에서 함께 감각할 수 있을 뿐이지 누구의 삶도 완전히 알거나 볼 수 없다고요.

정은영 작가와의 인연은 내 십대 때 삶터였던 하자센터에서 시작됐다. 정은영 작가의 이름은 세이렌이었다. 얼굴에 미간주름이 짙게 패여있는 무서운 인상 탓에 그의 옆에만 서면 머뭇거리는 청소년이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세이렌을 조금 무서워하면서도 한편으로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포스터 ⓒ아르코미술관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포스터 ⓒ아르코미술관

- 세이렌(정은영) 제가 처음 만난 하자센터였어요. 저는 10 시절 대안학교 학생으로 30 초반의 정은영 작가님은 대안학교 교사로 계셨죠.

“저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초중고대까지 안전하게 졸업했어요. 남들이 다 말하는 평범한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해도 이상할 바가 없는 사람이었죠. 93년에 대학을 갔는데 학내에서 소위 영 페미니스트 운동이 일어난 거예요. 저는 환경운동, 평화운동, 퀴어운동과 함께 연대하는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역사와 정치 그리고 예술에서 배제된 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언젠가부터는 귀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재밌어졌어요. 몰랐던 세계가 넓어지니까요.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하자센터 교사로 오겠냐고 제안을 받았어요. 당시 저에게는 굉장한 도전이었습니다. 교사가 온상근 직업이니 예술가로서 커리어에 집중하지 못할까봐 걱정되기도 했고 하자센터가 일이 많은 곳이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30대 초반 의욕 넘치는 때 한번 해보자 싶어 들어갔어요. 너무 좋았어요. 교사들끼리 서로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신뢰가 깔려있었죠. 또 제가 인류혐오가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은 또 좋아하거든요. 학생들 하나하나가 나에게 엄청 세계를 열어주는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제도의 영향이 하자센터까지 미쳤어요. 사회적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죠. 저는 그냥 교육적인 환경에서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있고싶지, 사업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교사를 관두고 예술가로 완전히 작업에 집중해왔죠.”

- 십대 세이렌(정은영) 작품이여성 국극 뭐시기라는데 저는 그게 뭔지 별로 관심 갖지 않았어요(웃음). 질문했어야 하는 이제 하네요. 작가님은 어떻게 여성 국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두 가지 이유예요. 국극은 한국 식민지적 역사의 맥락에서 나타난 예술장르입니다. 당대의 여성들이 남성성을 표현하며 퀴어적 수행을 자연스럽게 해왔죠. 그런데 박정희 정권이 이를 정치적으로 삭제했어요. 어떤 전통은 ‘문화제’로 지정되며 전통을 지켜나갔지만 국극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보통 문화예술을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 판단의 저변에는 정치가 작동한다는 것을 주목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아요. 어떤 것들은 의도적으로 삭제되고 또 순수하게 향유되기 힘들죠. 코로나 정국만봐도 어떤 노동들은 칭송되고, 어떤 노동들은 가려집니다. 성소수자 정체성의 여부로 감염인 안에서도 위계가 생기고요.

또한 저는 ‘젠더는 퍼포먼스’라는 주디스 버틀러의 관점에 동합니다. 젠더의 구분을 생물학적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수행하며 계속 만들어진다는 것에요. 수행한다는 것이(performative) 일상 속에서 퍼포먼스 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예술이라는 영역 안에서 상징적으로 공연이라고 하는 매체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 예술과 정치가 겹치는 부분이 있네요.

“저는 예술 작업을 통해 미학적 성취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의도적으로 배제되온 것들을 다시 회복시키고 싶어요. 예술가는 소수자들과 어깨를 걸고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예술가가 자기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건 일종의 특권 의식처럼 느껴지거든요. 사회에서 지워져온 존재들을 가시화하고 어떻게 회복시킬지, 그것을 과정 속에서 형식 속에서 잘 실천하는게 미술이라고 생각해요. 공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정치가 비슷한 듯해요. 정치인들은 정치인의 문법이 있고 예술가는 예술의 문법이 있는 것이죠.

저는 경계가 어떻게 계속 흔들리는지에 관심있어요. 이것이 사람을 살게도 만들고 죽게도 만드는 것 같아요. 국극 작업을 하면서 한 국극 배우 선생님을 십년 넘게 보며 인터뷰를 자주 했어요. 이분이 성소수자신 것 같은데 인터뷰 중에 이분이 일부로 동성애,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굳이 그 이야기를 안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저한테 신문 사설 하나를 잘라 주시더니 “이것 꼭 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한 보수지 논설위원의 ‘성소수자 의제가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 왔다’ 라는 주장이었죠.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말이 중요한게 아니라 누군가 버텨온 삶의 순간들이 중요하구나. 알면서도 모른척, 모르면서도 버텨낸 그런 삶이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꿋꿋한 삶들을 담고 싶어요.”

 

ⓒ정은영 제공
정은영 작가의 작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I am not going to sing, performance and installation>, 2015 ⓒ정은영 제공

인터뷰 마지막에 정은영 작가는 “너희(하자센터 청소년)는 몰랐을 수 있지만 나는 하자센터 죽돌들 한명 한명 모두를 사랑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작가는 본인에게 인류혐오가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에게서 넘치는 사랑을 엿본다. 도래할 미래와 커나갈 사람들에 계속해 희망을 품으며 경계를 뒤흔들기 위해 작업해온 끈질긴 실천은 깊은 사랑이 없었다면 지속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소수자를 지워내고 누군가는 계속 살려내려 애쓴다. 가부장제와 페미니즘의 관계이기도 하다. 소수자와 어깨를 걸고 가겠다는 정은영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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