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연기·춤 3박자 맞추는 종합예술 ‘여성국극’
아직도 쫓아다니는 60~70대 팬 있어..."세대 교체 위해 국가 지원 절실"

 

여성국극의 맥을 잇는 소리꾼 김선미씨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여성신문
여성국극의 맥을 잇는 소리꾼 김선미씨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여성신문

짙은 화장을 하고 펑퍼짐한 한복을 입은 여배우가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임신 6개월로 배가 볼록하게 나온 그는 ‘여성국극’의 맥을 잇는 소리꾼 김선미(36·사진)씨다. 여성국극은 여성들만 나오는 국악 연극이다. 국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판소리 전공의 여성 국악인들이 주로 배우를 맡는다. 전라북도인간문화재 수궁가 예능 보유자인 고 홍정택 명창의 손녀인 김선미씨는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학과 석사를 마치고 여성국극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울고 울리는 신뺑파(감독 박정곤)’에서 주인공 뺑파 역으로 열연하고 있는 그를 서울 종로 창덕궁 근처에 위치한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여성국극은 노래와 기악부터 춤, 연기까지 한국 전통문화와 언어를 총체적으로 발전시키는 공연예술이다. 미디어가 발달하기 이전인 1948년 만들어졌다. 외간 남성과는 말도 섞지 못하던 시절, 여성들은 여배우들이 연기하는 섬세한 남성 캐릭터를 보며 열광했다. 일부 문화평론가들은 이들이 한국 팬덤 문화의 시초라고 여긴다. 그러나 지금 여성국극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국극 배우는 줄어들었다. 그런 가운데 김씨는 유일한 30대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주로 60~70대 선배님들이 많고 그 아래 세대로는 국립창극단 김금미 선생님이 계세요. 그 다음이 저이고, 밑에는 20대 중후반 후배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여성국극의 맥이 유지된다는 느낌은 들지만, 후배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큼 판을 더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올해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기하고 있는 ‘웃다 울리는 신뺑파’는 전래동화 심청전 속 계모인 뺑파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주로 노인 관객들이 많은 공연장을 찾게 되는데 그분들이 즐겁게 극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조선 팔도 스타 오디션’이라는 내용을 넣었어요. 관객들이 나와 춤과 노래를 하면서 오디션을 보는 형식이에요. 지루하게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관객도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좋아하세요.”

 

국극 ‘웃고 울리는 신뺑파’ 공연 이미지.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국극 ‘웃고 울리는 신뺑파’ 공연 이미지.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그는 연기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동초제 판소리를 전공했다. 노래와 연기, 춤을 한꺼번에 배울 수 있는 여성국극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대였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작품 ‘견우와 직녀’에서 사슴 역할을 맡아 국극에 데뷔한 후 대학 입시를 마친 스무 살 이후부터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다. 

올해로 국극 배우 25년 차 베테랑인 그는 집에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현재는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지만 주연이기 때문에 급작스럽게 빠지긴 어려워 계속 무대에 서고 있다. “워낙 무대 체질이라 막상 연기를 할 땐 몰라요.(웃음) 만약 뮤지컬이나 연극이었으면 엄두도 못 내죠. 그런데 국극은 한복을 입고 연기하기 때문에 그게 가능해요.”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 여성국극이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현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창작극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흰머리가 성성한 60~70대 팬들이 아직도 공연장을 찾아오세요. 40~50년을 여성국극 팬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계시는 걸 보면서 이 장르가 가진 힘을 느껴요. 이런 문화예술이 유지되려면 배우도, 팬도 필요한데 현재는 겨우 맥만 잇고 있는 수준이에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데, ‘여성’은 어디서나 소외받고 저평가 되듯 여성국극도 그래요. 안타깝지만 저희가 더 잘해야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죠.”

여성국극은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기 위해 심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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