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법] ‘잘못된 성 관념’이라는 변명에 관하여
[모두의 법] ‘잘못된 성 관념’이라는 변명에 관하여
  •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 승인 2020.05.26 07:15
  • 수정 2020-05-2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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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주여성이 결혼 전 아동 성폭력으로 인해 출산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더라도 남편이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는 모습.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을 시민들이 지나는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사건을 맡기고 싶다면서 어떤 이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범죄 사실이 명확한데다가 의뢰인 스스로도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겠다고 밝힌 터. 법리적으로 다퉈 줄 만한 점이 없기도 했거니와 이럴 때는 최대한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변론의 주된 내용이 된다. 수사기관에 반성문을 제출했냐고 물어봤더니 씩 웃으면서 자신 있게 대답한다. ‘그럼요, 변호사님. 그건 걱정 마세요.’

며칠이 지나서 의뢰인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검찰청에 이미 제출했었다고 하는 그 반성문을 들고 왔다. 대반전! 명색이 ‘반성문’이라고 하는데 도저히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상황!

모름지기 반성문이라고 하면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행동이 어떤 이유에서 잘못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원상회복하기 위하여 현 시점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일 생각인지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반성문’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의뢰인의 글을 들여다보니 뉘우침의 빛이 느껴지기는커녕 뭐가 잘못인지조차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다고 밖에는. 억울하다면서 대놓고 적어놓은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분량의 절반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정말로? 본인은 자신만만했지만 반성문을 읽어보니 이 의뢰인의 운명이 심각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진실하게 수긍하는 사람을 찾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 같기도 하다. 필자를 변호인으로서 선임했던 의뢰인들도 대개 그러하였거니와 조사 또는 사건 심의에 참여하는 변호사로서 필자가 대면했던 피혐의자들의 면면 또한 다르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잘못을 인정은 하겠지만 나도 지금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상황인지 당신은 아느냐?’라는 식의 기상천외한 반성문(?)을 보면서 기막혀 했던 적도 많았거니와, 사과문이라는 제목을 달아놓은 글인데 정작 그 내용은 ‘피해자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아느냐?’ 라는 내용 일색인 기이한 문서를 받아본 적도 있다.

하기는, 뭘 잘못했는지를 그렇게나 쉽게 깨닫고 뉘우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잘못을 범하지도 않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반성문이 제출됐다고 해서 기계적으로 감경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 반성문 같지 않은 반성문,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은 이처럼 차고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번에 신상이 공개된 ‘N번방’ 사건의 한 피의자가 ‘(자신이) 잘못된 성 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죄송하다’는 취지로 말했단다. 예전 어느 사건의 피혐의자가 했던 소명진술이 떠오른다.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온 시절에는 지금처럼 높은 감수성을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말들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아마도 이렇게 치환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잘못은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것이 꼭 제 탓만은 아님을 감안하십시오.’ 이게 요지일 터, 이것이 참된 의미의 뉘우침인지 아닌지에 관해서 구태여 필자가 다시 부연할 필요는 없으리라.

한 가지 더.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강의에서 필자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솔직히 말해 보자면 우리 모두는 무엇을 해도 무방한지 그리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이런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이미 머리로는 대강 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유무, 관념과 의식의 존부는 그렇기에 책임의 정도를 경감할 사유가 되어서는 처음부터 아니 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그렇기에, 무엇이 진정한 뉘우침인지 그리고 무엇이 치졸하고 터무니없는 책임회피에 불과한지에 대해서 필자가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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