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대법원의 혜안이었다.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자’를 벌하는 것인데, 2년 전 대법원은 새로운 논리전개로 그 처벌 범위를 확대했다(대법원 2018. 2. 8. 선고 2016도17733 판결). 강제추행죄는 범인이 직접 범죄를 실행할 때에만 성립할 수 있는, 이른바 ‘자수범’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직접적 신체접촉 피해를 주로 처벌해 왔던 것이지만, 대법원은 위 판결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직접 마주하고 있지 않았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체에 접촉한 것이 아니며 추행에 해당하는 행위를 피해자 스스로가 한 경우에도 강제추행죄 성립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처음으로 분명하게 인정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하여 피해자를 직접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영상을 찍어 보내도록 한 것만으로도 강제추행죄가 넉넉히 성립한다는 취지다. 이른바 ‘N번방’ 사건과 같은 위험성을 예견한 듯한 법리전개였다고나 할까.

‘나라에 상처준 박사방’ 25일 오전 종로경찰서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물 제작,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서울중앙지방검찰정으로 이송됐다. 기본소득당 당원들은 이날 종로경찰서 앞에 모여 '공범자도 처벌하라', '당신도 피해자만큼 고통을 겪어야지' 등의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일부 참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울먹이기도 했다.  ⓒ홍수형 기자
지난 3월 25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서울중앙지방검찰정으로 이송되자 여성들이 종로경찰서 앞에서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홍수형 기자

 

이쯤에서 당연한 의문이 생긴다. 추잡한 행동이라면 전부 ‘추행’으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애초에 왜 저런 별도의 판단이 필요했던 걸까?

형벌법규의 내용은 이를 함부로 유추해석 함으로써 적용범위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 있다. 그런데 1953년 형법 제정 이래, ‘추행’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이며 구체적으로 어느 범위까지 이에 해당되는지에 관해서 우리 법은 침묵해 왔다.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다는 것이 ‘직접 대면’ 상황에만 한정되는 것인지 온라인이나 그 밖의 비대면적 방법으로 협박하여 신체접촉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도 법 규정 그 자체에 따르면 명확치 않다. 그러다보니 처벌대상과 범위는 온전히 법원의 해석에 맡겨져 있었는데, 이전까지의 전형적 판례는 직접 신체접촉을 시도한 경우를 강제추행죄에서 말하는 추행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관련 법체계는 아직도 기초적 정비조차 완결되지 않아서, 기본이 되는 조문의 중요 요건마저도 구체화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법이 우리의 추행죄에 상응하는 처벌규정을 상세한 개념정의들로 가득 채워둔 것과는 극명하게도 대조적이다.

‘N번방’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한 여론이 뜨거운데 여기에도 놀라운 사실이 숨어있다.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한 근거조항으로는 성폭력처벌법 제25조와 특정강력범죄법 제8조의2가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에는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한 자체적인 근거는 없다.

국민들이 ‘성폭력’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범행이 피의자 신상공개 대상에 해당할까? 아청법에 따른 범죄는 성폭력처벌법이나 특정강력범죄법 규정에 따라서 신상공개가 된다. 하지만 성폭력처벌법은 이 법에 따른 ‘성폭력범죄’를 정의하는 규정에서 아청법에 따른 범죄 일반을 명시해 두지는 않아서 혼선의 소지가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을 매수한 죄로 이미 실형을 한 번 선고받고 또 다시 아동‧청소년의 성을 매수한 범죄자라 해도 피의자 신상공개 대상이 되지 못한다. 기이한 일이지만 ‘아동‧청소년대상 성폭력범죄’ 개념에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배포죄는 제외되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해자가 만 19세 미만이어서 청소년 보호법이 정하는 청소년에 해당하기만 하면 아무리 중대한 성폭력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공개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얼마 전, 만 19세 미만이지만 청소년 보호법상의 청소년 범주에서는 갓 벗어난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가 결정되었는데, 현행의 청소년 보호법상의 관련규정을 불이익 조치의 근거로 해석할 수 있는지, 법리상으로는 다소간의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본적으로는 성폭력범죄를 규율하는 법체계 전반에 대한 통합적이고도 전면적인 개혁입법이 시급하다. 성폭력범죄 사건의 공소장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법이 ‘누더기’ 수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항상 불만스럽다. 성인이 성인에 대하여 범한 성폭력범죄인데도 불구하고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명령에 대한 근거조문은 아청법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적용법조 항목에는 아청법 유관 조항이 잔뜩 기재된다. 이처럼 공개 및 고지는 아청법에서 정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상정보의 등록은 아청법이 아닌 성폭력처벌법 사항이기도 하다.

법이 왜 이런 모양새로 되어 있느냐고? 필자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있다. 이제는 ‘조문 끼워넣기’ 식의 땜질 처방은 그만둘 때가 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 처벌과 제재, 그리고 그 밖에 필요한 조치가 시급할 때 적법하게 이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하게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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