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의 티타임] 21대 최연소 국회의원 류호정을 만나다
[신지예의 티타임] 21대 최연소 국회의원 류호정을 만나다
  • 신지예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
  • 승인 2020.05.02 09:29
  • 수정 2020-06-16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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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을 당한 후배 때문에 시작한 노동운동
침묵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약자의 곁에 서는 정치를 하고 싶다

신지예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이 우리 시대 인물들과 티타임을 갖는다. 여성신문 지면을 통해 매주 연재될 예정이다.
지치고 피곤할 때 마시는 한 잔의 차가 마음을 위로하는 것처럼, 읽는 이에게 따뜻하고 기분좋은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기를.



“미안해. 내가 겪었을 때 침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뭐든지 할게.”

자신을 찾아온 사내 후배에게 류호정은 약속했다.

 

상사에게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며 사내 윤리위원회에 함께 증언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후배를 보며 류호정은 자신이 겪은 성희롱·갑질 사건을 떠올렸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 류호정은 일상에서 불쑥불쑥 벌어지는 성희롱과 갑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자신의 볼을 쓰다듬거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는 상사를 보며 ‘이런 것이 사회생활인가?’ 생각하며 입을 꾹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내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류호정은 깨달았다.
‘내가 당했을 때 제대로 문제제기 했다면 나보다 뒤에 들어온 친구에게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류호정은 사내 후배의 손을 꼭 잡으며 그의 곁에 서리라 다짐했다. 그 때부터 류호정은 사내 노조 결성에, 또 노동 운동에 앞장섰다.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5번 출구 앞 한 카페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류호정 당선인이 "청소년 시기에는 조용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긴장돼서 울먹거리기도 했다"며 질문에 답했다. ⓒ홍수형 기자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5번 출구 앞 한 카페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류호정 당선인이 "청소년 시기에는 조용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긴장돼서 울먹거리기도 했다"며 질문에 답했다. ⓒ홍수형 기자

 

게임 업계 직원에서 21대 최연소 국회의원까지


21대 국회에서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이 될 정의당 류호정 당선인(29)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노란 가방과 노란 정의당 배지는 인파 속에서도 선명했다.

“안녕하세요.” 류호정 당선인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그의 얼굴에서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엿볼 수 있었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류호정 당선인은 후보자 시절 ‘대리 게임’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류 당선인은 당 내에서 소명 절차를 거친 끝에 재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선거 포기가 아니라 더욱 치열하게 선거를 치뤄냈다. 총선 후 쉬지도 못했다. 오히려 더 바빠졌다. 그는 여러 인터뷰를 치르고 의원실도 구성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 보통 정치에 관심이 많아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는데, 어떻게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되셨나요?

“정치를 하기 전 노조활동을 했어요. 노조결성을 준비하기도 했고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원래 게임업계의 부조리를 바꾸고 싶었어요. 노조 결성도, 활동가의 삶도 부조리함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에서 시작됐죠. 그런데 노조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노조가 단체 협상 체결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측으로부터 탄압받거나 노조조차도 없는 곳이 너무 많잖아요. 근본적으로 국회로 들어가서 법과 제도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직접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 남매 중 장녀이다. 쌍둥이 동생을 둔 그는 본인의 학비 뿐 아니라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고민하며 일찍 일을 시작했다. 류호정은 청소년 때부터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 롤플레잉 게임을 즐겨해 대학생 때는 게임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첫 직장은 게임 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게임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들어간 게임회사는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저는 게임회사는 다른 회사들보다 학벌이나 점수 이런 것보다 게임에 대한 열정과 창의력 등을 기준으로 사람을 볼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입사 후 채용 합격자 명단을 보니 여기도 별다른 것 없이 학벌이 기준이더라고요. 게임 업계조차도 학벌 차별이 존재하는 거죠. 일하면서 여러 부조리한 사건을 겪었습니다. 하루는 상사가 신입사원들을 모두 모아 반장과 부반장을 정하라고 하더라고요. 반장은 남자가 부반장은 여자가 하라고. 결국 서울대 나온 남성이 반장이 되었죠. 장시간 노동문제는 또 어떻구요. 게임 개발이 중단되거나 전환배치에 실패하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게 게임업계에요.”

 

게임 회사에서 일을 하면 할 수록 류호정의 눈에 띈 것은 게임 업계의 부조리함이었다.
게임 컨텐츠에는 여성혐오가 즐비했다. 여성 캐릭터는 높은 확률로 간호사이고 남성 캐릭터는 의사였다. 가슴을 부각하는 캐릭터 이미지가 주로 사용되는 등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전시하는 게임 기획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젠더 불평등적인 사내 문화도 다른 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여직원의 외모 품평을 한다거나 성추행도 왕왕 일어났다.
2016년 넥슨 사상검증 사건에 이어, 2020년 게임 ‘크로노 아크’의 사상검증 사건처럼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노동권을 침해당하는 사건은 게임산업에 열정을 갖고 있던 류호정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미약한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기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적지 않은 게임이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요. 게임컨텐츠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섹스어필하는 등의 여성상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시키고 전시하는 일이죠. 저는 기획 단계 때부터 아예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하곤 했어요. 그렇게라도 조금씩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5번 출구 앞 한 카페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류호정 당선인이 "청소년 시기에는 조용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긴장돼서 울먹거리기도 했다"며 질문에 답했다. ⓒ홍수형 기자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5번 출구 앞 한 카페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류호정 당선인 ⓒ홍수형 기자

 

부조리한 게임 산업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

후배의 성폭력 사건 고발을 접하면서 류호정의 생각은 바뀌었다. 작은 ‘저항'은 침묵처럼 느껴졌다. 게임 산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큰 ‘싸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네이버 노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그는 더욱 절실해졌다.

 

“뭘 모를 때는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어요. ‘좋게 좋게 풀면 되지.’ 라는 생각도 안한 건 아니예요. 그런데 막상 내 문제가 되니까 그렇게 해서는 해결될 문제가 없더라고요. 문제가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침묵하는 건 문제가 곪게 만들고요. 어떻게 할지 모를 때 일전에 고생하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이들을 찾아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 정의당을 알게 됐고, 당에 가입해 당비라도 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죠. 당에 가입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정당 모임에 가게 되었고요.”

 

-누군가는 비슷한 일을 겪어도 ‘내가’ 문제해결에 힘쓰겠다고 마음 먹기 어려운데. 어떻게 용기를 내시게 된 것 같으세요?

“선배들이 그러더라고요. 게임 업계 어디 가더라도 다 비슷하다고요. 저는 곧바로 ‘아, 그러면 다 바꾸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게임업계를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노조를 통해 절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죠.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노조 결성 논의가 시작되자 류호정이 몸담고 있는 팀은 해체되고 류호정의 책상은 인사팀 옆으로 옮겨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책상에는 권고사직서가 놓여졌다.

-사직을 권고 받았을 때 힘드셨을 것 같은데, 복직을 위한 싸움은 고민 안 하셨나요?

“노조 설립을 코앞에 두고 권고사직 요청을 받았습니다. 여러 고민이 많았어요. 노조가 만들어질 때 권고사직 대상자가 노조 안에 있으면 도움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버티지 못하고 사직서에 사인을 하고 나오니 여러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노조 설립을 끝까지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요. 일을 그만둔 후에 백수가 된 김에 노조 설립의 모든 실무를 도왔어요. 그리고 얼마 안있어 정말 노조를 만들어 냈죠”

 

-이후에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에서 활동가로 일하셨어요. 게임을 못 만드는 것이 아쉽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
“물론 게임업계에서 일하지 못하고, 또 제가 일한 곳에서 노조가 만들어졌는데 그 활동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기는 했어요. 그러나 게임보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보람차고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른 인터뷰를 보니 민주노총이 ‘아저씨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하시던데. 어떤 활동을 하셨습니까?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에서 선전홍보부장으로 일했어요. 홍보 채널 등에서 민주노총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습니다. 노조스타그램도 운영하고 관리자에게 ‘섬식이’ 라는 이름도 붙였죠. 퀴어문화축제에도 참여했어요. 당시 노조의 무지개 깃발을 제가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노조 안에 여성위원회가 없었는데 여성사업도 함께 담당하며 성평등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크게 관심있는 것 중 하나가 교육이어서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지금은 간부 교육 전에 성평등 관련 교육영상 시청 후에 모든 교육을 시작하도록 체계가 바뀌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정기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예를들면, 지역본부 연 1회 수업 진행 등 조직 내 성평등 교육이 더욱 활발해질 예정이예요.”

 

정의당 비례대표 1번 류호정 후보. ⓒ정의당 제공
정의당 비례대표 1번 류호정 후보. ⓒ정의당 제공

 

약자의 곁에 있는 정치를 하고 싶다

-정치활동은 어떻게 하시게 되셨나요?

“정당에 가입한 후 자연스럽게 지역 활동을 하게 됐어요. 당시 저는 페미니스트 직원으로 일하면서 회사에서 고립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 저에게 정의당 활동은 새로운 활력이 되었어요. 노동이나 여성문제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마치 쉴 수 있는 공간 같았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성남시의원 후보 3명의 선거를 도왔습니다. 노조 활동하면서 느꼈던 한계를 정치로 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절박함이 들기도 했어요. 그 누가 아니라 제가 직접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21대 국회에서 그 결심을 이루시겠어요. 어느 상임위에서 활동하실 생각인가요?

“아무래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싶지요. 이번에 제가 후보로 출마하면서 내세운 1호 공약이 포괄임금제 폐지, 근로기준법상 차별금지 기준 개정, 전태일 3법 제정 등이 있는데요. 제 뜻한 바를 펼칠 수 있는 곳이 환노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이 교섭단체가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위성정당 사태가 없었더라면 정의당이 교섭단체도 가능했을텐데요. 20석도 바라보지 않으셨습니까? 이번 위성정당 사태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를 훼손한 일입니다. 이번 정의당 총선 슬로건이 ‘원칙을 지킵니다’ 였습니다. 앞으로 국민들께서 원칙을 지킨 정당의 진심을 알아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또 다음 선거에서 정당들이 이런 꼼수를 쓸 수 없도록 입법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이번 지선부터라도 적용되면 좋겠습니다.”


-조국 사태 때 정의당이 민주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고 비판받기도 했는데요. 선거 전 정의당 청년 후보자들이 조국 임명 당시 단호한 입장을 밝히지 못한 것을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조국 사태 당시 정의당이 갈팡질팡 한 것은 사실입니다. 심상정 대표가 대선후보 시절 ‘우리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만 남겨두고 모든 것을 바꿉시다’  라고  말했지요. 진보정당의 대중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후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의당은 대중정당으로 거듭나면서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꿔야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칙을 지킵니다’ 라는 이번 총선 슬로건이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결론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정치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고 싶으십니까?
“저에게 정치는 사회적 약자의 무기입니다. 제가 후보자로 나선 이후 여러 게임 업계에서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부당해고와 사상검증 사례 등을 고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직도 노동권 침해에 울고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저는 마지막까지 곁에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야 류호정 당선인 얼굴에서 긴장이 사라졌다. 본인이 짊어지고 있는 수많은 기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21대 총선 낙선자로서 또 유권자로서 그에게 희망을 걸고 싶어졌다. 위성정당 사태 등으로 허물어져가는 국회에서 끝까지 약자의 곁에 있는 사람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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