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시(HeForShe) 토크 8일 개최
서한영교 『두 번째 페미니스트』 저자
돌봄 노동 통해 황홀함 느껴
"페미니즘은 현실이 지옥이라는 걸 느끼게 해"

히포시(HeForShe) 좌담회가 8일 여성신문 본사에서 열렸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서한영교 저자가 말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기자
히포시(HeForShe) 좌담회가 8일 여성신문 본사에서 열렸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 서한영교 저자가 말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기자

여성신문은 10월 8일 히포시(HeForShe) 토크를 열었다. 히포시는 성불평등 문제에 남성들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하는 유엔 여성(UN Women)의 글로벌 성평등 캠페인이다.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 리부트(Reboot)’와 미투(Me Too·나도 말한다) 운동을 경험하면서 성평등 사회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성평등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의 참여가 절실해지고 있다. 이날 좌담회는 신준철 여성신문 상임 이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참가한 서한영교 작가는 『두 번째 페미니스트』 저자로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다.

사회자 자기소개를 해 달라.

서한영교 글을 쓰고 다듬는다고 해서 쓰다듬는 사람이라고 요즘 나를 소개하고 있다. 소외받는 아이들을 위한 동시도 쓰고 있다.

사회자 페미니즘을 만나고 행복해졌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서한영교 어릴 때 아버지가 노동운동을 하셔서 노동상담소를 개설하느라 매해 이사를 다녔다. 6학년 2학기였다. 한 여학생과 전학을 갔는데 저는 남성 어린이 무리에게 처음 들었던 말이 “축구할 줄 알아?”였다. 그런데 여성 전학생 무리에서는 “너 어디서 왔어?”, “어젯밤 잘 잤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섬세한 정서적 교류를 하는 거다. 저도 전학을 다니면서 불안하고 긴장했는데 그 광경을 보고 놀랐다. 정서적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이후로 작은 아름다움의 세계를 나눈다는 것과 서로가 서로를 정서적으로 돌본다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사회자 ‘20세기 페미니즘의 얼굴’이라 불리는 미국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불평등한 결혼이 남성이 완전한 인격체가 되는 걸 방해한다고 했다. 가부장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서한영교 결혼을 하고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 아버지라는 이미지로 먼저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근대의 남성은 생계부양 모델로의 아버지의 역할이 내려오는 모델이라는 것이었다. 그 틀이 산업시대 이후로 너무 고정화되어 있어서 결혼 자체를 ‘3D’라고 부르기도 한다. 독박 육아, 독박 가사노동, 독박 효도이다. 가부장 프레임 안에서는 아버지라서 안 했던 것 중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돌봄 노동을 통해 황홀한 감각을 느꼈다. 동시대 어머니들이 사회적 압력과 어떤 사회적 굴레 속에서 지내고 있는지도 알게 됐다.

사회자 그렇다면 ‘한남’(한국남자)을 만드는 기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남성의 변화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개인의 경험이나 정책에 대해서 말해주면 좋겠다.

서한영교 저는 한국의 남성성이라고 특정 지을 수 있는 시점은 식민지 시절의 조선이라고 본다. 일본군인들에 의해서 조선의 남성들은 자신을 남성으로서의 어떤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었다. 이전에 익혀왔던 방식으로는 살수가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여성을 착취하고 폭력적인 방식을 취했다. 이후 산업화와 IMF를 만나면서 자신의 박탈감이나 결핍을 가부장제 남성 모델에 기대서 이어오고 있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만나면서 정치적 서사가 자기의 삶에 들어온 거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 속에서 자기가 남성으로써 박탈감이 많다는 걸 알기 전에 이미 여성이 너무 많은 걸 발현하고 있고, 여남 평등은 이미 이뤄졌는데 왜 여성들은 더 가지려고 하냐고 말하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책이 나오고 나서 속상한 일이 있었다. 제 책에서 ‘왜 운동장은 남학생들은 있었던 걸까.’ 이 문장만 따온 어떤 학원 강사가 댓글을 남겼다. 학교 선생님을 해보니 여학생들은 운동하는 걸 싫어한다고 말이다. 제가 다니던 조기축구회에서는 책이 나오고 나서 연락이 뜸해졌다. 제 책에서 한 구절을 따서 한국의 모든 남성들이 가사노동을 일부러 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한 거다. 각자의 진실을 진실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소통이 가능한지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히포시(HeForShe) 좌담회가 8일 여성신문 본사에서 열렸다.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최주헌 서울대 여성주의학회 ‘달’ 회원, 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 서한영교『두 번째 페미니스트』저자가 참석해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히포시(HeForShe) 좌담회가 8일 여성신문 본사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최주헌 서울대 여성주의학회 ‘달’ 회원, 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 서한영교『두 번째 페미니스트』 저자이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회자 남성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발)가 있다. 여성을 혐오하기도 한다. 적극적인 해결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서한영교 청년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특강을 다녀왔는데 실제로 공부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페미니즘이 21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남성들을 잘 보살피지는 않았다. 흑인 운동 판에 뛰어든 백인 같은 존재였다. 지금은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이 가부장제와 생계 모델로 자리 잡는 것이 근대였다면 지금은 그것의 연장선으로 2차 근대의 남성성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탈근대의 남성성으로 갈 것인지 결정할 중요한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저는 페미니즘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고 절망이 크다. 이 세계가 더 나아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작은 조각들이 저의 절망의 페미니즘을 구성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좋은 것 같다. 동력을 만들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말이다.

사회자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지금 내가 남자들의 할 일은 무엇일까.

서한영교 페미니즘은 여기가 지옥이라는 걸 증명해준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지옥의 문을 깨부술 수 있게 경합하는 담론이라고 본다. 세 번째로는 페미니즘은 이 지옥에서도 나름 아름다운 공동체를 가꿔나갈 수 있는 상상력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비비면 정전기가 생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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