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인페르노’ 25일 세계 초연
정재일 첫 교향곡 도전...칼비노 소설서 영감
“혹독한 시대에 위안 주는 곡”
내달 서울시향 미 카네기홀 공연서도 선보여

한국 대표 오케스트라와 한국 대표 영화음악 감독이 만나 ‘지옥’을 그린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 정재일에게 위촉한 신작 ‘인페르노(Inferno)’. 오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세계 최초로 선보인다.
“천천히 음들이 쌓이다가 화산처럼 폭발하고, 갑자기 안개에 휩싸여 어딜 보고 걷는지 알 수 없는” 풍경을 그리게 하는 곡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 그중에서도 ‘지옥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안에 있다’는 문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총 4악장, 18분 길이의 곡이다.
“아주 독창적이고 환상적입니다. 한번 들어보면 그의 다음 곡을 기다리게 될 겁니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은 23일 서울 종로구 더프리마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곡을 극찬했다. “강렬하고 어둡다가도 탈출구(way out)를 보여주는 곡, 이 혹독한 시대에 위안을 주는 곡, 공포와 분출에 이어 결국 평화가 있는 음악”이자 이라고도 소개했다.
“오징어 게임 음악 듣고 한눈에 반해”

츠베덴 감독은 ‘오징어 게임’ 음악을 듣자마자 정재일 작곡가를 점찍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게 정재일에게 우리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 묻는 것이었습니다.”
정재일은 “영화음악 등 콘텐츠를 위해서 작곡을 해왔던지라 음악만을 위한 오케스트라 곡을 쓸 수 있을까 망설였다”고 했다. “그냥 당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는 츠베덴 감독의 격려에 수락했다.
약 1년간 공들인 결과물을 공개하면서 “채점 받는 초등학생의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츠베덴 감독은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리스크”라면서 젊은 작곡가의 사기를 북돋웠다.
오는 25일과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정기공연에서는 정재일의 ‘인페르노’ 세계 초연과 함께 2021년 부소니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에 빛나는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협연한다. 브람스 교향곡 1번도 들려준다.
서울시향, 10월 미국 투어...카네기홀 등 총 5회 공연

서울시향은 오는 10월 24일부터 11월 3일까지 미국 순회공연에 나선다. 고전 교향악부터 한국 작곡가의 신곡까지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준비했다. 10월 27일 뉴욕 카네기홀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얍 판 츠베덴의 지휘 아래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협연자로 나서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들려준다. 정재일의 ‘인페르노’도 미국 초연으로 선보인다. 서울시향이 2026-2027 시즌 정식 초청을 받아 연주하는 뜻깊은 무대다.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는 오클라호마주 스틸워터의 맥나이트센터에서 총 4회 공연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협연자로 나선다. 오클라호마 대학과 연계된 공연장 맥나이트센터는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 등 미 주요 악단들의 순회공연 거점이기도 하다. 서울시향은 이번 공연을 통해 레지던스 오케스트라 자격을 얻어 향후 지속적인 관계를 쌓을 수 있게 됐다.

“서울시향은 한국을 대표해 전 세계로 나아가는 대사(ambassador)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츠베덴 음악감독은 “오케스트라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카멜레온 같아야 한다”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음악가를 끊임없이 찾고 있다”고도 했다. “지휘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음악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재능을 최대한도로 끌어내는 것”이라며 “음악가는 연주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음악을 믿어야 하고 나아가 그 음악 자체가 돼야 한다”고 했다.
또 “서울시향은 연주회에 잘 오기 힘든 사람들까지도 모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며 “장애나 자폐가 있는 청소년을 위한 연주회도 열고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