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기고문과 현재 대응 논란 겹쳐...“우려가 현실로”
피해자 대리인 편지 외면·늑장 사과, 비판 증폭
당 지도부 아닌 국회 산하 독립적 조사·징계 기구 필요

조국혁신당이 당내 성폭력 사건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는 가운데,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의 최근 행보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과거 기고문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성폭력 가해 및 2차 가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들이 조국혁신당의 핵심 지도부와 조국 위원장의 최측근 인사로서 조국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국의 침묵과 미온적 태도
조국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은 지난 4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성비위 사건은 2024년 7월부터 시작돼 9개월 정도 이어졌다”며 “2025년 4월 공식 신고 접수 이후에도 당내 대응은 미흡했고, 피해자들 및 조력자들은 2차 가해 및 직장내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8월 15일 특별사면 이후 정치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지만 성비위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과 회피로 일관했다.
강 전 대변인은 “성비위 사건 피해자 보호와 회복이 외면당했다”며 “(조국의) 침묵도 제가 해석해야 할 메시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뒤 조국혁신당은 피해자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하고 관련 절차를 완료했다고 반박했다. 조 위원장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비당원 신분으로 당의 공식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수감 중 피해자 대리인을 맡은 강미숙 조국혁신당 여성위원회 고문이 보낸 10장이 넘는 손편지에도 답하지 않았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출소 후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광폭 정치 행보를 한 것에 대한 비판은 더욱 커졌다.
게다가 조국과 밀접한 최강욱 전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이 8월 31일 조국혁신당 대전·세종시당 정치아카데미 강연 중 성 비위 사건에 대해 “그 문제가 죽고 사는 문제냐”, “조국을 감옥에 다 넣어놓고 그 사소한 문제로 치고받고 싸우는데, 잘 이해가 안 간다” 등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검사 출신인 이규원 조국혁신당 사무부총장이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고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이라고 발언해 또다시 파장이 일었다.
강미숙 고문은 조국의 비대위원장 임명을 반대하며, 외부의 독립적이고 수평적인 비대위 구성을 통한 사건 수습과 피해자 보호를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은 의원총회를 개최해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단독 추천하는 안건을 다수 찬성으로 결정했다.
이번 사태는 조국혁신당과 조 위원장의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민정수석 당시 법률신문 기고문...‘직장 내 지속적 성희롱 경범죄화’ 주장
이런 가운데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명예교수는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법률신문 기고문을 언급하며 “과거 우려했던 일이 결국 현실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서울대 로스쿨 교수)은 2018년 8월 28일 법률신문 기고문 「‘지속적 성희롱’의 경(輕)범죄화 제안」에서 성희롱을 성폭력 범죄와 동일시해 전면 형사범죄화하는 것은 국가형벌권의 과잉이며 시민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성적 언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행위’를 경범죄처벌법에 신설해 10만 원 이하 벌금·구류·과료로 다스리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음담패설·외모 평가·회식 자리에서의 술 따르기 강요 등 일상적 언동을 모두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형벌만능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며, 민사적·행정적 제재 중심으로 다루되 형사처벌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년 전 김엘림 교수의 경고...‘조국 수석의 성희롱론에 대한 우려’
이에 대해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2019년 7월 11일 여성신문에 ‘조국 수석의 성희롱론에 대한 우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어 반박했다. 그는 “권력관계 아래 반복적 성희롱을 가장 경미한 제재로 막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으며, 경범죄 수준의 처벌로는 재발 방지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교나 직장에서 교수나 상사로부터 취약한 지위를 가진 학생이나 근로자가 장기간 반복된 성적 언동을 겪는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면, 그러한 제안을 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성희롱 관련 소송을 심리하는 법원조차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판시하는 시점에, 청와대 핵심 공직자가 오히려 제재 수위를 낮추자는 제안을 하는 것은 사회적 경각심을 흐릴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조 위원장은 당시 “이 글의 주장은 학자로서 제기한 것이지 민정수석으로서가 아니다”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주요 언론들은 그의 공직자 신분과 기고문을 연관지어 보도했다. 김 교수는 “권력 핵심 인사의 완화 주장이 성희롱 대책 마련을 위축시키고 사회적 경각심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조직 관리 실패를 넘어 지도자들의 성인지 인식 결여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피해자 보호 중심의 성폭력·성희롱 대책이 정치적 이해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경고다.
조국 위원장 역시 자신의 젠더의식이 현재 사태와 어떤 연속선상에 있는지 돌아보고, 책임 있는 자기 성찰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규원 전 사무부총장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다” 발언으로 재연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명예교수는 “경범죄처벌법에서 10만원 이하 벌금 등의 제재는 쓰레기 무단 투기 같은 사안에 해당한다”며 “과거에는 지속적으로 사람을 쫓아다녀 괴롭힘을 주는 행위도 같은 수준의 제재에 포함됐지만, 2021년 스토킹처벌법과 2023년 스토킹방지법 제정과 개정을 거치며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희롱을 범죄로 보지 않는 과거 조국의 시각은 이규원 전 사무부총장의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다’ 발언을 통해 재연됐다”며 “성희롱은 농담에서 성폭력 범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업무와 관련되거나 지위를 이용해 발생하면 명백히 범죄가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선미 하랑젠더트레이닝센터 대표는 “정당 내부에서 성폭력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영국처럼 의회 산하 독립기구가 성폭력 사건을 직접 다루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당 지도부가 아닌 독립적 조사·징계 기구에 직접 신고하고 법률·심리 지원받을 수 있어야 정치권의 책임 회피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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