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정부는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었다 ⓒ연합뉴스
정부는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었다 ⓒ연합뉴스

안녕하십니까, 이재명 대통령님. 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이자 성교육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이대남 김연웅입니다. 바쁜 국정 속에서도 시민과 소통하시려는 모습,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 드리는 이 글은, 대통령님의 국무회의 발언에서 출발합니다. 여성가족부 차관에게 “특정 부분에서의 남성 차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드는 방안을 점검해달라”고 지시하셨던 건 말입니다.

물론 회의록을 살펴보면 “사회 전체 구조적으로 여성이 차별받는 억울한 집단이 분명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님께서는 여전히 21대 대선 출구 조사 결과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리시는 듯합니다. 20대 이하 남성의 37.2%가 이준석 후보, 36.9%가 김문수 후보에게 투표하고, 대통령님을 뽑은 이는 24%에 불과하다는 결과는 분명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이대남 달래기’ 전략을 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성에게 가는 혜택을 남성 쪽으로 옮겨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대통령님, 성평등은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장애인이나 교통 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해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비장애인들의 이동권이 빼앗깁니까? 아니요. 비장애인의 이동 편의도 엘리베이터 설치로 함께 개선됩니다.

성평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젠더폭력을 방치하고 성차별을 조장했던 윤석열 정부의 집권 기간동안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남성의 권리는 하늘 높이 올라갔었나요? 전혀 아닙니다. 후퇴한 성평등 정책의 영향이 남성의 삶과 무관할 리가요. 우린 모두 함께 살아가지, 단절된 개체가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2023년 가족실태조사 결과 “가족의 경제적 부양은 주로 남성이 해야 한다”는 성별고정관념에 동의하는 비율이 2020년 22.4%에 비해 2023년 33.6%로 약 10%포인트 넘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사는 주로 여성이 해야 된다”는 성별고정관념에 동의하는 비율 역시 2020년 12.7%에 비해 2023년 26.4%로 두 배 이상 상승했습니다. 이는 윤석열 정권 동안 성차별 문제가 방치된 결과입니다. 경제적 부양과 가사 돌봄에 대한 성별고정관념이 강화되면 남성의 삶이 나아집니까? 전혀요. 성차별이 강해지는 만큼 남성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압박의 강도 또한 더욱 강해질 따름입니다.

실제로 기업을 다니는 30대 남성인 제 친구는 최근 육아를 시작하게 됐는데 여성 배우자는 육아휴직을 사용했지만 본인은 눈치가 보여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당연한 권리라고 말들 하지만 ‘육휴’를 선택하면 임금이 너무 줄어들기도 하고, 자기 일을 동료들이 떠맡게 되는 부담도 커서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렇게 여성 배우자는 독박 육아로 고통받고, 남성 배우자는 눈치 보며 아이의 어린 시절을 놓쳐야 하는 모두의 불행을 더 이상 이어가지 말자는 게 바로 성평등입니다.

이재명 대통령님, 여성가족부에서 남성도 챙기라고 말씀하셨죠? 당연히 챙겨야죠. 하지만 그 방식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정책이랍시고 걸어놓고, 젠더폭력을 방치하고 성차별을 조장했던 윤석열-이준석의 방법과는 분명히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재명 정부의 성평등가족부는 달라야 합니다. 탄핵된 윤석열 정부는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겐 지금, 후퇴하고 방치된 성평등 정책들을 제대로 빠르게 추진할 ‘성평등 이재명’이 필요합니다. 갑질 논란 등으로 낙마한 강선우 장관 후보자는 차별금지법 제정 및 비동의강간죄 도입 등 산적한 성평등 민생 과제를 전부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을 핑계 삼아 뭉개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변명으로 삼기에 사회적 합의는 너무나 옹색합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되어, 2020년 인권위 조사에서는 국민 88.5%의 찬성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정부의 지지율보다도 높은 수치 아닙니까. 이러한 차별금지법이 사회적 합의를 아직 못 갖춘 거면, 민주주의로 무엇을 합의할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022년 4월14일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와 성평등 추진 체계 강화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2년 4월14일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와 성평등 추진 체계 강화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님의 정치 신념을 ‘억강부약’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자의 횡포를 억제하고, 약자를 돕는 것이 정치의 본 역할이라는 뜻이죠. 성평등가족부의 역할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윤석열 정권에서 방치되었던 젠더폭력과 디지털성범죄의 고리를 끊어내고, 성차별의 구조를 개선하며, 미뤘던 성평등 민생 과제인 차별금지법과 임신중지 대체입법, 비동의강간죄 도입, 포괄적 성교육 법제화 등의 과업을 하나둘씩 제대로 빠르게 추진해나가는 일. 그것이 대통령님이 가장 잘하는 이재명의 정치 아닙니까. 억남부녀나 억녀부남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억강부약을 하자는 겁니다. 폭력과 착취의 고리를 끊고,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님이 이러한 문제 해결의 적임자로 페미니스트를 중용하셨으면 합니다. 국무회의에서 관심 가지셨던 청년 남성의 삶과 자살 문제를 누구보다 오랜 시간 전문적으로 다뤄 온 이들이 바로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입니다. 페미니즘은 남성 역시 성평등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평등한 세상에서는 남성 역시 자신을 가두고 옥죄던 맨박스에서 해방되어 스스로와 타인을 돌보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평등 이재명’이라 불리게 될 유능한 페미니스트를 성평등가족부 장관에 임명해주십시오. 그리고 그에게 제대로 된 권한과 역할을 부여한다면, 여태껏 ‘젠더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되어 온 고통과 아픔들을 어루만지는 정책이 성평등가족부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와 청년들을, 사람들을 구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렵게 만들어진 정부이니 만큼 잘 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반드시 ‘국민주권정부’와 함께 ‘성평등 정부’라는 이름으로 이재명 정부가 역사에 호명되길 바랍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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