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의 월간데모]
폴란드 바르샤바국제도서전에서
고공농성 500일 구미 옵티칼까지
대선 앞둔 5월의 투쟁 현장들

5월 14일부터 폴란드에서 바르샤바 국제도서전이 시작됐다. 한국이 올해 바르샤바 도서전 주빈국으로 작년 여름에 일찌감치 결정된 데다 그 후에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셨기 때문에 올해 도서전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뜨겁고 행사도 많아서 도서전 바깥에 다녀볼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 45주년은 폴란드 대통령 선거일이기도 하다. 폴란드와 한국 모두 비슷한 시기에 대선을 치르게 됐다.

폴란드는 성소수자에 대한 “선동”을 금지하는 차별적인 정책이 2025년 4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아 10년 만에 폐지됐다. 바르샤바 도서전에서 나는 독자님에게 무지개 뱃지를 선물받았고, 폴란드에서는 23년 만에 처음으로 트랜스젠더 독자분께 사인도 해 드렸다. 무척 기뻤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활동가들이 장애인 거주 시설을 다수 운영하는 한국 천주교가 탈시설 권리를 거부하고 있다고 항의하며 18일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활동가들이 장애인 거주 시설을 다수 운영하는 한국 천주교가 탈시설 권리를 거부하고 있다고 항의하며 18일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4월30일 혜화동성당 앞에서 열린 연대문화제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4월30일 혜화동성당 앞에서 열린 연대문화제 현장. ⓒ정보라 작가 제공

폴란드 오기 전, 4월 30일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탈시설 활동가들의 혜화동성당 고공농성장 앞에서 열린 문화제에 참여했다. 4월 18일에 전장연 활동가 세 명이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해서 이날 벌써 13일째였다. 여기서 ‘탈시설’이란 장애인 당사자가 시설에서 나와서 자기 집에서 살고 직업활동과 사회활동을 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정책을 말한다. 현재 한국 정부도 지자체도 장애인을 거의 가족에게 떠맡기고 아무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가족이 장애인을 돈 내고 시설에 가두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탈시설’이란 정부가 장애인 거주정책과 활동지원사를 일단 제공하고 (제공 안 하면 탈시설 논의도 할 수 없다) 어떤 지원이 어떻게 필요한지 세심하게 정책을 짜서 장애인이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다. 

장애인 수용시설은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탈시설 논의가 종교의 입장과 부딪치는 상황도 일어난다. 4월 18일 고공농성은 천주교계가 장애계와 대화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에 시작됐다. 혜화동 성당 입구에 경찰이 늘어서 있어서 고공농성장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역시나 너무 까마득하게 높아 활동가 세 명은 손피켓을 흔들 때 외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하라”는 펼침막 위에 솟은 십자가가 야속했다. 

다행히 5월 2일 고공농성이 끝났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과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쟁취하고 종탑에서 내려왔다. 승리해서 내려온 전장연 동지들이 무척 자랑스럽다.

보건복지부는 2017년에도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지키지 않았다. 장애인도 세금 내는 국민이다. 그리고 나이 들면 누구나 장애가 생긴다. 국가가 돌보지 않고 가족이 평생 책임지라는 것은 가족 중에 노인이나 장애인, 장애 노인이 있으면 가족 모두 그냥 고통과 빈곤 속에서 살라고 내팽개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는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5월1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내란세력 청산!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대개혁 실현! 2025 세계노동절대회’를 열고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5월1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내란세력 청산!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대개혁 실현! 2025 세계노동절대회’를 열고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모두가 존엄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또 하나의 필수조건이 차별금지법 제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여러 활동에 참여한다. 그런데 2021년 9월에 있었던 차별금지법 제정 오체투지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을 어느 극단주의 단체가 경찰에 고발해서 활동가들이 기소돼 버렸다. 그 첫 공판일이 5월 1일이었다. 재판은 내란쟁이와 같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매우 불쾌하다.

나는 오체투지를 실제로 했는데, 기소되지 않았다. 대신 사회를 보았던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활동가, 옆에서 피켓을 들고 걸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활동가, 그리고 첫날 오체투지 시작을 함께 했던 전장연 활동가, 이렇게 세 명이 기소됐다. 죄목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감염병예방법 위반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변호인단을 꾸려서 소송에 대응하고 있다. 나는 기소되지 않아서 다른 분들께 너무 죄송하다. 동시에 내 오체투지가 어디가 어때서 나만 기소되지 않았는지 화도 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 변호사비 명목으로 후원을 했고 공판일에 계속 방청할 생각이다. 

민주노총 주최로 5월1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내란세력 청산!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대개혁 실현! 2025 세계노동절대회’ 거리 행진 중, 고공농성 중인 고진수 세종호텔 지부장을 만났다. ⓒ정보라 작가 제공
민주노총 주최로 5월1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내란세력 청산!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대개혁 실현! 2025 세계노동절대회’ 거리 행진 중, 고공농성 중인 고진수 세종호텔 지부장을 만났다. ⓒ정보라 작가 제공

5월 1일 오전에 차별적인 재판을 방청하고 오후에는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절 집회에 참여했다. 올해 민주노총 30주년을 기념해서 시청역에서 숭례문까지 시내에서 거리 사진전도 하고 부스 행사도 있었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좀 힘들었지만 부스를 돌면서 내가 좋아하는 뱃지도 사고 티셔츠도 사고 스티커도 얻었다. 

그리고 본대회 후에 기다리던 행진을 했다. 숭례문에서 명동으로 향했다. 세종호텔 앞 지하차로 관리 구조물 위에서 2월 13일부터 고공농성 중인 고진수 세종호텔 지부장에게 인사했다. 고 지부장은 북을 치며 행진단을 맞이했고 깃발이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행진단은 바로 을지로로 향해서 한화그룹 본사 앞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에게 인사했다. 김 지회장은 까마득하게 높은 철탑 위에서 행진단에게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민주노총 주최로 5월1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내란세력 청산!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대개혁 실현! 2025 세계노동절대회’ 거리 행진 중, 고공농성 중인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을 만났다. ⓒ정보라 작가 제공
민주노총 주최로 5월1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내란세력 청산!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대개혁 실현! 2025 세계노동절대회’ 거리 행진 중, 고공농성 중인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을 만났다. ⓒ정보라 작가 제공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혼자 농성 중인 박정혜 동지가 생각났다. 함께 농성하던 소현숙 동지가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4월 27일 자로 농성을 중단하고 내려와야 했다. 박 동지 혼자 남아 5월 21일 자로 고공농성 500일을 맞았다. 

그래서 연휴가 끝나가던 5월 6일에 구미 옵티칼 농성장에 찾아갔다. 고공농성 500일을 앞두고 연대하는 동지의 제안으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투쟁인형” 500개를 모으는 활동을 시작했다. 인형은 농성장에 기부하는 형태로 돌려받지 못한다. 머리띠나 피켓 등 투쟁물품으로 장식한 인형을 보내면 옵티칼 지회 동지들이 모아서 집회현장에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전시하기도 한다. 

나는 장생포 고래박물관에 갔을 때 구입한 범고래 인형을 가져가서 투쟁인형으로 꾸몄다. 해양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인형이다. 유럽에서는 2020년 즈음부터 범고래들이 떼지어 부유층의 호화요트를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범고래들도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다. 

투쟁인형을 만들어 옵티칼 지회 사무실에 두고 나가서 옥상 위의 박 동지에게 인사했다. 박 동지는 혼자 남아서 ‘적적하다’고 말했다. 5월 21일이 옵티칼 고공농성 500일이었다. 박 동지 혼자 적적하지 않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시고 인형도 많이 보내주시면 좋겠다. 

정보라 작가가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혼자 농성 중인 박정혜 동지와 연대하는 의미로 5월6일 현장에 전달한 범고래 투쟁인형.  ⓒ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가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혼자 농성 중인 박정혜 동지와 연대하는 의미로 5월6일 현장에 전달한 범고래 투쟁인형. ⓒ정보라 작가 제공

이제 곧 대선이다. 두 번째 탄핵광장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 있다면 어떤 한 사람의 5년(혹은 그보다 짧은!) 임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나 비판하고 언제나 저항해야 한다. 우리를 좀 덜 힘들게 할 사람과 많이 힘들게 할 사람이 있을 뿐, 그 누구도 우리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대변해 줄 수는 없다. 대선 이후는 새로운 연대와 투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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