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금법제정연대·민주노총 집회부터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연대 시위까지
넓어져 가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광장
집회 끝나도 남아 싸우는 이들을 생각한다

지난 15일 서울에서 『너의 유토피아』 개정판 관련 행사가 있었다. 행사 뒤에 서울 보신각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관한 사전집회에 참여했다가 광화문 일대의 민주노총 집회에 합류했다. 이날은 친한 작가님도 수도권 인근 다른 지역에서 먼 길을 달려와서 같이 집회를 했다. 오후 3시에 시작해서 저녁 8시에 끝났고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규모도 매우 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연 집회는 언제나 작은 퀴어퍼레이드처럼 예쁘고 신난다. 이날도 여러 가지 발언과 공연들이 풍성했다. 그런데 연대 활동을 여러 가지로 오랫동안 해왔던 나의 동지가 최근에 좀 악명 높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신상을 털리는 일이 일어나서 칼럼에 발언자나 공연자에 대해 상세하게 쓰기가 망설여진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나의 연대 동지의 ‘신상’이라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정보에 지어낸 이야기들 투성이였다. 나의 연대 동지는 자신이 금속노조(조합원 아님) 산하 어떤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이라는(조합원조차 아니라니까) 헛소문이 떠도는 것을 알고 매우 즐거워했다. 그러나 나의 동지가 연대하는 투쟁 사업장들이 테러를 기획하고 있다느니 폭력범죄에 사용할 도구를 만든다느니 하는 거짓 정보가 마치 확인된 사실인 양 그런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는 점은 굉장히 우려된다.
서부지법 난동사태 이후 나도 모르게 다시 신경을 곤두세우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불안감은 불행히도 익숙하다. 2014년 여름에 세월호 농성장에 매일같이 자칭 태극기부대, 엄마부대, 가스통 부대가 쳐들어와 서명대를 뒤엎고 서명대 지키는 사람들에게 싸움을 걸고 당시 단식하던 세월호 유가족 아버님들에게 막말을 해댔다. 그러다 무뢰한들이 농성장에 쳐들어와 유민이 아버님의 단식농성 천막 앞에서 일명 ‘폭식투쟁’을 하며 세월호 유가족을 조롱했다. 2017년 3월의 탄핵 인용 이후 (도대체 대한민국 유권자는 살면서 대통령 탄핵을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것인가? 한숨) 정권이 바뀐 후에도 이 무뢰배들은 세월호 농성장에 계속 찾아와서 서명지기들에게 싸움을 걸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주로 여성 서명지기들을 노리고 머리채를 잡거나 뺨을 때렸는데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세월호 농성장에서 난동 부리던 사람들이 의기양양하게 후속세대를 무럭무럭 키워서 오늘날의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어찌 보면 논리적인 결과다. 그나마 그때는 대통령이 여자였기 때문에, 이런 차별과 폭력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아마 여자는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별로 없을 테니까 법원까지 쳐들어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말하자면 여성혐오가 나라를 구했던 것인데, 이제는 남자가 대통령이니까 차별주의자들이 똘똘 뭉쳐 준동하는 것이다. 이러니까 비장애인 이성애자 시스젠더 남성은 앞으로 대통령 하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순수한 꼴페미 유권자 시민으로서 나의 아주 순수한 개인적 의견이다. 누가 비난하면 나도 유튜브 채널 만들어서 순수한 좌파 꼴페미 선동에 나설 테다.
하여간 그래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사전집회는 매우 즐겁게 마무리됐고 우리는 광화문으로 짧은 행진을 했다. 민주노총 집회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회에 비하면 단연코 재미가 없다. 그래서 같이 간 작가님과 나는 자리를 일단 잡아놓고 번갈아 가며 주변의 천막들을 돌아다녔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천막에서 보라 리본과 스티커를 열심히 얻었고 그 옆의 416연대와 세월호가족협의회 천막에서는 또 노란 리본과 스티커를 열심히 챙겼다. 십 년 전에는 내가 저 천막 안에서 노란 리본을 만들고 스티커 나눠주는 일을 했는데, 받아 가는 입장이 되니 조금 기분이 묘했다.

이날 최고의 성과는 공공운수노조 머리띠를 얻은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고양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여 머리띠 사용법을 귀엽고 재미있게 소개한 만화까지 넣어서 ‘한정판’ 머리띠를 무료 배포하고 있었다. 만화 카드 아랫부분에 깨알같이 “보관요령: 장롱에 넣어 두었다가 나라에 열받는 일이 생기거나 연대가 하고 싶을 때 꺼내 사용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란사태 이후 탄핵촉구 집회에서 민주노총, 특히 금속노조 머리띠가 ‘데모 핫템’으로 인기를 얻는 듯하다. 나는 민주노총 총연맹, 금속노조, 서울본부 무지개 머리띠까지 이 데모 핫템을 세 개나 가지고 있는 부유한 데모꾼이다. 그래서 15일 집회에서 얻은 공공운수노조 머리띠는 다음날 행사에서 만난 다른 친한 작가님에게 선물했다.
발언과 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광화문에서 명동역까지 행진했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동지가 2월 13일 새벽 5시 명동역 앞 지하차로 입구 구조물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종호텔은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경영이 어렵다며 조리, 서빙, 환경관리 업무 등을 하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런데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모두 노조 조합원들이었다. 이 해고노동자들 6명이 지금 4년째 복직투쟁을 이어가다가 고진수 지회장이 고공에 올라간 것이다.
어쩐지 시간이 2015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그때도 통신사 비정규직 노동자들, 파인텍 해고노동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꾸 고공에 오르기만 하고 내려오지 못했다. 파인텍 차광호 동지는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408일의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제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동지와 소현숙 동지가 그 기록을 깼다. 이 글을 쓰는 2025년 2월 24일 현재 박정혜 동지와 소현숙 동지는 고공에서 413일째 고용승계와 노동자 생존권을 외치며 투쟁하는 중이다.

행진 인원이 너무 많아서 나는 고진수 지회장이 올라간 지하차로 구조물이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 서서 발언만 들었다. 고진수 지회장은 “이렇게 많은 동지들이 응원하러 와 줄 줄은 몰랐다”며 감격했다.
그러나 세종호텔 앞에서 집회가 끝나고 나니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차로를 꽉 채웠던 연대 동지들이 모두 흩어지고 다시 고공에 혼자 남았을 때 고진수 동지는 그만큼 더 외롭지 않을까. 세월호 농성장에서 하루의 서명을 마치고 단식하는 유가족 아버님들만 남겨두고 발길을 돌릴 때도, 파인텍 굴뚝 아래에서 지지 집회를 하고 집에 돌아갈 때도, 서울신문 전광판 아래에서, 옛 국가인권위원회 전광판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응원구호를 외치다가 다 끝나고 집에 갈 때도, 그리고 구미 옵티칼 공장에서 집회를 마치고 나올 때도 그 자리에 남아 싸우는 분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동자가 고공에 오르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아무도 참사 피해자가 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내란과 폭동을 걱정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며 신변 안전을 걱정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전국에서 헌법의 원칙과 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집회들이 계속 진행 중이다. 우리는 싸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