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의 월간데모]
김형수 지회장 97일 고공농성 끝
승리한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
‘구미 옵티칼 고용승계’ 박정혜
‘세종호텔 부당해고 철회’ 고진수
아직 못 내려온 노동자들이 있다
위험의 외주화·비정규직화 막아야

19일 오후 2시에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거통고) 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서울 을지로 한화오션 본사 앞 30미터 철탑 위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땅으로 내려왔다. 그 시간에 나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중이라 소식은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다. 경찰이 체포영장을 집행한다고 해서 무척 걱정했는데 도서전에 오신 독자 동지가 경찰 안 온다고 알려주셨다! 김 지회장은 무사히 땅에 내려와 기자회견까지 당당히 마치고 병원에서 건강을 회복하는 중이고, 거통고 조합원들은 저녁에 승리를 축하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김 지회장은 97일에 걸친 고공농성으로 비정규직 조선하청 노동자의 생계를 좌우하는 상여금 문제를 해결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만이 아니라 조선업에 종사하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의 승리다. 그러나 한화오션이 거통고지회의 파업과 김형수 지회장의 고공농성에 대해 걸어놓은 470억 손해배생소송을 즉시 철회하지 않고 “철회 검토”하겠다고 말한 것은 불안하다.
한국 조선업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한화오션은 2024년에 237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실제 부품을 조립하고 용접하고 배를 완성하는 일을 해낸 하청업체들은 도급비를 받지 못해 도산하고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상여금은 고사하고 임금도 못 받아 고생하고 있다. 그래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2022년에 파업을 했고,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한화오션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를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에 김 지회장이 고공농성까지 했던 것이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든 분야에서 계속 죽어간다. 거통고 승리문화제를 잠깐 보고 나는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님 추모제에 갔다. 거통고 동지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포항에서 태안에 가려면 너무 복잡해서 참사가 일어난 걸 알고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 있을 때 추모제가 열려서 꼭 가고 싶었다.
추모제에서 김충현님 산재 사망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선언했다. 한국서부화력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도 올해 말부터 단계적으로 폐쇄를 앞두고 있다. 서부화력이 인력을 계속 줄였고, 그 과정에서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충현님이 혼자 일하다 사고를 당해 사망에 이른 것이다.
서부화력의 첫 반응은 “우리가 시키지 않았다”, “본인이 자기 혼자 일하다 죽었다”였다. 10년 전 김용균님 산재 사망했을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원청은 책임을 회피하고 나아가 피해자가 스스로 잘못해서 죽었다며 망자를 모욕한다. 10년 전 구의역 김군이 사망했을 때 원청인 서울교통공사가 피해자를 모욕하며 발뺌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 같아서 노조 측에서 벌써 3년 전부터 원청인 서부화력에 불법하청을 중단하고 비정규직을 직고용하라고 요구했으나 관철되지 않았다. 결국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떠맡고, 산업재해가 일어나고,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다치고 죽는다.
대선 이후 새 정권에서 김충현님 산재 사망 대책위를 마련하긴 했는데, 이 대책위에는 기획재정부가 참여하지 않는다. 노조는 현재 폐쇄 예정인 발전소에서 일하는 발전산업 인력의 총고용을 유지하지 않으면 발전소들이 계속 인력을 줄일 것을 우려한다. 그러면 결국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또 혼자 일하다 사고를 당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총고용을 유지하려면 비용을 책임지는 기재부가 대책 마련에 참여해야 한다. 화력발전소가 수익이 안 나서 폐쇄하는 게 아니라 정부 정책에 따라 폐쇄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런 산재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니 정부가 책임지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그러려면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화는 이제 위험의 ‘이주화’로 넘어간다. 오는 24일은 아리셀참사 1주기다. 아리셀 화재참사 사망자 23명 중 17명이 여성, 이주민이 18명이었다. 여성, 이주민, 비정규직 노동자, 즉 사회적 약자들이 산업재해 위험을 모두 떠안은 결과가 아리셀 참사다. 이 사건에서도 원청은 불법하청노동 책임을 면피했다.
원청이 업무를 지시하고 관리하고 감독하면 원청이 실질적인 고용주이고 산업재해 책임도 원청이 져야 한다. 외주, 하청의 형태로 고용해 놓고 원청이 업무를 지시하고 관리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니까 직고용하라는 것이다. 직고용은 노동안정성을 보장하는 길일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요구이기도 하다. 추모제에서 발언하신 분들이 한결같이 ‘정규직’이 뭔가 시험에 통과해서 얻는 보상이고 비정규직은 무능에 대한 처벌처럼 취급받는 현실을 규탄했다. 일하다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사람 목숨값을 싸게 치기 위한 비정규직은 사라져야 한다.
김 지회장님이 무사히 고공농성을 해제해서 굉장히 기뻤지만 김충현님 추모제에서 여러 가지 화나는 일들을 알게 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사회자님이 아리셀 참사와 불법 하청 관행,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화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이제 고공에는 고진수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과 박정혜 금속노조 구미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 두 명이 남았다. 고 지부장은 고공에서 130일, 박 수석부지회장은 530일을 버티고 있다.
지난 1일 김진숙 동지의 제안으로 구미역에서 옵티칼 공장까지 작은 희망뚜벅이를 했다. 더운데도 20여 명이 모여서 깃발을 휘날리며 즐겁게 행진했다. 2월 1일 서울로 가는 희망뚜벅이가 출발했을 때는 옵티칼 공장에서 구미역까지 걸었는데, 그때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눈발에 휩싸인 채로 바람을 거슬러 걷느라 힘들었고 길이 미끄러워 위험한 부분도 있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같은 길을 반대 방향으로 걸으니 굉장히 낯설었다. 양지공원에서는 우리가 들어서자 분수가 솟아서 모두 탄성을 질렀다.


7일에는 대전퀴어문화축제에 가서 굴뚝신문을 배포하고 옵티칼 국회청문회 개최를 위한 국회 전자동의 청원을 받았다. 굴뚝신문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시작했을 때 이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5년에 1호와 2호가 발간됐고 2017년 파인텍 해고노동자들이 굴뚝에 올랐을 때 3호가 나왔다. 올해 발간된 4호에 옵티칼, 세종호텔, 거통고 고공농성 소식을 알리며 나도 칼럼을 실었다.
대전퀴어문화축제에서 옵티칼 조합원 두 분, 연대해 주는 동지 여러 명이 여기저기 전략적으로(!) 흩어져서 청원을 받았다. 땡볕인데도 많은 분들이 걸음을 멈추고 국회 게시판에 로그인, 본인인증, 청원동의까지 복잡한 과정을 그 자리에서 완료해 주셨다. 일주일 뒤 서울퀴어문화축제 당일 만 명 넘게 한꺼번에 청원에 동의하더니 바로 다음 날 5만명을 채워 성공했다. 퀴어 동지들 정말 최고다. 나는 도서관 특강이 있어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못 갔는데 고공3사가 행진트럭도 내보내고 전농, 전여농, 언론노조 등도 참여해서 화려하고 멋진 축제였다고 듣고 속으로 약간 (아주 약간) 슬펐다.


김 지회장의 승리를 시작으로 옵티칼 고용승계와 세종호텔 부당해고 철회, 노조탄압 중단도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함께 투쟁해서 내란을 이기고 지난겨울을 버텼다. 이제 함께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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