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특별기획-돌봄딜레마: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라①]
한국·일본 요양보호사 좌담회上
일본, 2019년 요양보호사 3인 돌봄 가치 국가배상청구 소송
한국,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폐지·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

“너무 부끄럽다. 이런 일본의 모습을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은 이런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 8일 여성신문과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가 주최한 ‘한일요양보호사 좌담회’에서 요양보호사 경력 30년이 넘는 후지와라 루카씨가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돌봄의 사회화’를 담당했던 개호보험제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호보험은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격으로, 65세거나, 40~64세의 특정 질환을 앓는 이에게 간호·목욕 같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본의 사회보험이다. 보험료는 연금과 건강보험에서 공제되고, 국가와 지자체에서 재원을 지원한다.

일본, 본인부담금 올리고, 방문 세분화
2000년 일본은 ‘돌봄의 사회화’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이며 우리나라보다 앞서 개호보험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아베 정권 때 돌봄 분야에서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며 시장화가 본격 시작됐다. 3년 주기의 개호보험 개정시기마다 돌봄의 질 향상을 명목으로 방문개호 보수를 낮추고, 영리법인의 참여를 적극 지원하는 방안이 채택됐다.
아베 정권 2차내각(2012~2014년)이 들어서 2012년 개호보험제도가 개정됐는데, 1회당 ‘30분 이상 60분 미만’과 ‘60분 이상’이었던 생활 지원(요리, 청소, 세탁 등)이 ‘20분 이상 45분 미만’, ‘45분 이상’으로 단축되며 보수가 내려갔다. 후지와라 씨는 “정부가 요리, 청소, 세탁을 모두 45분 안에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돌봄을 얼마나 하찮게 보는 것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닛세이 기초연구소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介護の「生産性向上」を巡る論点と今後の展望)에 따르면, 2018년 아베 정권은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을 발표하며, 모든 산업에서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개호보험 역시 또다시 효율위주로 개편됐다. 2019년 후생노동성은 개호 서비스 사업에 있어서 생산성 향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책정해서 개호 서비스 사업소에 배부하고 있다.

정부가 세제 및 융자지원과 임대차 방식 허용 등을 통해 영리법인의 참여를 독려하자 개호 사업장은 소규모 사업자 중심에서 대형 사업자 중심으로 개편됐다. 파나소닉, 세콤, 솜포 홀딩스 등 다른 산업의 대기업이 기존 소규모 요양기업을 인수하면서 대거 진입했다. 솜포케어의 모회사인 솜포홀딩스는 2015년 인수합병으로 관련 업체들을 흡수하며 업계 매출 2위(1500억엔, 약 1조 3354억원), 시설규모 1위(2만8500객실)를 차지했다.
돌봄 산업에 외국인 고용 유치역시 이때 강화됐다. 개호, 건설, 농업 등 산업 전반에서 외국인 고용을 늘리기 위한 ‘특정기능 비자’가 2019년 신설됐고, 개호 분야에서 해당 비자를 취득한 외국인은 지난 6월 현재 3만6719명(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으로 늘었다. 이는 과거에 비해 최대수치이다.
요양보호사들의 노동환경은 악화됐다. 저임금 노동에 더해 서비스 시간이 더욱 세분화됐고, 요양보호사들의 이탈이 잦아졌다. 이에 2019년 방문요양보호사 후지와라 루카(68세), 사토 쇼코(68세), 이토 미도리(71세)씨가 ‘이동-대기-(서비스 이용) 취소 시간’에 대한 급여 미지급과 저임금, 요양보호사 부족 문제의 원인이 개호보험제도에 있다며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원고 측이 자체 조사한 결과(야마네 스미카 짓센여대 교수 협력. 요양보호사 683명 응답)에 따르면, 연간 소득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을 때 연봉이 100만엔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이 47%에 달한다. 310만엔 이상은 전체의 8%밖에 되지 않았다.
이토 미도리 씨는 좌담회에서 “방문 요양보호사는 이용자의 집에 들어가서 일한 시간만 노동시간으로 계산된다. 아무리 이동시간이 길어도, 갑자기 서비스가 취소돼도 보상을 받지 못한다”며 “지방의 소규모 방문 개호 시설에서는 편도 40km를 넘는 방문처를 다녀야 하기도 한다. 고정급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2일 도쿄고등법원은 “불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지만, 판결문을 통해 “임금 수준 개선과 인력 확보가 오랜 정책 과제로 여겨지며 해결되지 않았다”고 개호보험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원고 측은 “돌봄은 사회의 기둥”이라며 상고할 예정이다.

한국,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했으나…장기요양기관 99% 민간 운영
한국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2008년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가족의 부양부담을 완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이거나, 65세 미만이라도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6개월 이상 스스로 생활하기 어려운 이에게 간호·목욕 같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이다.
당시 정부는 보험재정을 기반으로 서비스 공급은 주로 민간에 맡겼다. 시장기제가 도입되면 서비스 질이 담보될 것이라는 의도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공급기관 과잉과 경쟁체계로 민간시설은 이윤추구를 위해 종사자의 임금을 착취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2010년대 노인요양시설에서 노인학대 문제가 연달아 발생했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등 장기요양기관은 이미 99%이상 민간이 운영하는 상황이 됐다.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며 민간이 담당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2019년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을 시작으로 각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사회서비스원이 문을 열었다. 공공이 돌봄을 책임지자, 이용자는 만족했다. 서사원의 ‘2022년 돌봄서비스 만족도’ 조사 결과, 이용자 종합재가센터 만족도는 94.9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공공 돌봄’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년 5월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보장 서비스 자체를 시장화·산업화하고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돌봄 노동을 값싸게 해결하자는 신호탄이었다. 서울시가 제일 빠르게 호응했다. 지난 4월 ‘서사원이 인건비가 많이 들고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이 중심이 돼 서사원 폐지 조례가 가결됐고 지난 7월 말 서사원의 모든 서비스는 종료됐다. 올 9월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는 내년 5천명 규모로 유학생 또는 외국인 노동자의 배우자가 가사 사용인으로 일하는 정책도 내놨다. 이는 사적 고용에 해당해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한국의 돌봄 노동자들은 돌봄 현장을 떠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이 2022년 발간한 ‘요양보호사 근로환경 변화 탐색 연구’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10명 중 8명을 돌봄 현장에서 이탈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강일구 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노동자는 “돌봄 노동을 아무나 할 수 있는 노동이라고 평가한다. 이렇게 계속 돌봄 노동이 저평가되는 상황에서 돌봄 노동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편에서 계속
자문 조승미 『돌봄의 사회학』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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