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 진단 및 대안’ 토론회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에 기업들은 왜 순응하는가?
김수아 “민주주의 외피’ 쓴 기업, 여성 차별 정당화하는 온라인 문화 기여”
손희정 “고어 남성성, 거대 산업화…여성혐오 정치세력화에 이용”
김유리 “특정 산업 내 문제 아닌 ‘페미니즘 백래시’로 접근해야”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집게손가락 억지논란은 여성혐오다: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 진단과 대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집게손가락 억지논란은 여성혐오다: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 진단과 대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

게임업계에서 시작된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운데, 억지 논란을 수용하는 기업들이 ‘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채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온라인 문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 진단과 대안을 위한 토론회’에서  “(기업들이) ‘민원이 들어왔으니 너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그 민원의 내용과 윤리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고, 민원이라는 형식적인 요건만 갖췄다면 문제없는 주장으로 받아들이는 등 민주주의의 외피만을 두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6년 게임업체 넥슨은 자사 게임 ‘클로저스’ 성우가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페미니스트 단체 ‘메갈리아’의 티셔츠 사진을 올린 것을 문제 삼았다. 결국 게임 캐릭터 성우가 교체됐다. 이후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반복돼온 페미니즘 사상 검증 논란은 산업 전방위로 퍼져나갔다. 지난해 11월엔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 속 캐릭터가 취한 ‘집게손가락’ 모양을 둘러싸고 일부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문제 삼기 시작했다. 원화 작업을 한 하청업체 소속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해당 작업을 한 당사자로 지목하고 성적 모욕과 신상 공개 등 온라인 괴롭힘(사이버 불링)을 가했다. 하지만 정적 해당 원화를 그린 이는 40대 남성이었다. 넥슨 측은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에 사실관계 확인 없이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하청업체에 사과를 압박했다.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든 피켓에 ‘집게손이,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적혀있다. ⓒ여성신문
2023년 11월 28일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든 피켓에 ‘집게손이,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적혀있다. ⓒ여성신문

김 교수는 게임업계 등을 비롯해 소비자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업계의 모습을 ‘겉모양 민주주의’(veneer of democracy)라고 표현했다. 

그는 “(페미니즘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민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 알면서 혹은 문제가 없다고 믿으면서, 이런 주장들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수용하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 같은 민주주의의 외피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한 “이용자의 민원이 많다는 맥락에서 주장을 수용하면서 소비자 정체성과 소비자 효능감을 누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상검증을 수행하게 됐다. 그러면서 이를 일종의 소비자 실천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이것이 괴롭힘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문제없는 소비자 행위라고 주장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괴롭힘이라는 범주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손희정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일종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을 뛰어넘어 딥페이크(불법합성물) 성범죄, 사이버렉카(Cyber Wrecker) 등으로 뻗어나가며 거대 산업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한국에서 디지털을 거점으로 존엄을 짓밟고, 상해를 입히고, 신체를 착취하며 돈을 버는 시장이 열렸다”며 “한국 사회에서 디지털을 거점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이를 자본 축적 도구로 삼는 ‘고어(gore) 남성성’이 거대 산업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여성을 짓밟는 데 재미를 느끼고 이를 상품화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결국 이를 소비하는 남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고어 남성성을 실천하는 남성이 소수라 할지라도 이를 소비하는 남성이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또한 “남성이 차별받는 진짜 피해자이자 소수자라고 믿는 이들이 여성들을 짓밟는 과정을 통해 상실감을 해소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며 “이를 자원 삼아서 표를 만드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여성혐오가 표가 된다는 것을 정치 세력화하는데 이용한 사람이 개혁신당의 이준석 대표”라고 지적했다.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집게손 억지 논란’이 불거진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MV 콘티. 스튜디오 뿌리의 남성 감독이 그리고 연출했다. ⓒ스튜디오 뿌리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집게손 억지 논란’이 불거진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MV 콘티. 스튜디오 뿌리의 남성 감독이 그리고 연출했다. ⓒ스튜디오 뿌리

반복되는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를 특정 기업만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한 가해자 언어가 아닌 피해자 혹은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롯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제안도 제기됐다.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은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는 우리 사회 왜곡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낸 괴물”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특정 산업의 문제, 기업 또는 이용자의 문제, 사이버불링 등으로 협소하게 접근한다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한 고객과 회사에 의한 괴롭힘이나 일부 악성 유저들의 사이버 불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며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들은 명백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이자 여성혐오로 읽어야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국장은 또한 “가해자들의 논리와 프레임, 언어로부터 사건이 비롯되기 때문에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나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언어들 (이 필요하다). 당초 ‘집게손가락은 남성혐오’라는 언어가 기사화되고, 알려졌는데 이러한 프레임을 바꾸기 위해 ‘집게손가락은 여성혐오’라고 명시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관련 내용들이 기사화되고 이야기되기 시작했다”며 “언어를 재생산하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성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에 최윤아 한겨레신문 기자는 △국가 기간 통신사 내 젠더 데스크 설치 △수습기자 선발 시 성인지력 평가 항목 추가 △데스크 진급 시 성인지력 관련 필수 교육 실시 등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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